어느 '가짜 산타'의 고백
초등학교 2학년, 이제 세상의 비밀을 하나둘 눈치채기 시작한 딸아이가 툭 던진 질문에 잠시 숨을 고른다. 나는 아이와 눈을 맞추며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거짓말을 건넸다.“네가 믿는 날까지. 네가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산타를 기다린다면 할아버지는 꼭 너를 찾아와 선물을 주실 거야.”
요즘 딸아이의 세계는 산타의 실존 여부를 두고 연일 뜨거운 논쟁 중이다. 학교와 학원 복도마다 “산타는 사실 아빠다”, “학원 선생님이 변장한 거다”라는 날카로운 폭로가 오간다고 한다. 흔들리는 눈동자로 진실을 묻는 아이를 보며, 나는 잠시 나의 유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
사실 나는 단 한 번도 산타를 믿어본 적이 없었다. 하루하루를 살아내기에도 퍽퍽했던 살림에 크리스마스 선물은 가닿지 못할 사치였다. TV 속 동화 같은 이야기는 내 현실엔 존재하지 않는, 그저 다른 세상의 풍경일 뿐이었다.
결핍을 아는 마음은 때로 간절한 보상심리가 된다. 내가 갖지 못했던 그 마법 같은 설렘을 내 아이에게만큼은 온전히 물려주고 싶었다. 산타를 기다리며 설렘에 잠 못 이루는 밤, 머리맡 선물 상자를 열 때의 그 무해한 행복이 아이의 영혼 속에 오래도록 머물러 주기를 바랐다.
그 간절함이 정점에 달했던 건 딸아이가 뽀로로에 푹 빠져 지내던 네 살 무렵이었다. 우리 부부는 아이의 세계관을 지켜주기 위해 무모하지만 거대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름하여 ‘실물 영접 뽀로로 탈 만들기’.
딸의 생일을 한 달 앞둔 날부터 거실은 공방으로 변했다. 남편이 밤 12시가 넘어 퇴근하고 돌아오면 우리의 본격적인 작전이 시작되었다. 사람 머리보다 큰 스펀지를 사고, 속을 파내고, 둥글게 조각을 하고, 그 위에 조심조심 색지를 씌웠다.
뽀로로 사진을 옆에 띄워놓고 핀셋과 글루건으로 씨름하는 밤들. 뜨거운 풀에 손등을 데이기도 하고, 혹여나 아이가 깰까 봐 숨죽여 웃으며 새벽까지 가위질을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부모였기에 가능했던, 내 인생에서 가장 무모하고도 아름다운 도전이었다.
드디어 생일날 아침, 딸은 거실 한복판에서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던 친구를 마주했다. 경이로움으로 가득 찬 아이의 눈동자를 본 순간, 지난 한 달간의 고단함은 모조리 보상받았다. 뽀로로의 손을 잡고 놓지 않던 모습.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가 생일을 축하해주러 직접 방문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 자식의 환한 얼굴을 지켜보는 것, 그것이 부모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축복임을 그때 알았다.
아이가 성장하며 관심사가 ‘시크릿 쥬쥬’로 옮겨가기 전까지, 우리 집 뽀로로는 때때로 산타가 되어 나타나기도 했고 특별한 날의 손님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네 살의 순수함은 '어린이집'이라는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조금씩 세상의 소리에 물들기 시작했다.
“엄마, 정말 산타가 있어요? 애들이 없대요.”
의심은 날카로웠지만, 나의 방어는 필사적이었다. 산타가 선물을 두고 가는 영상을 합성해 보여주기도 하고, 굴뚝 없는 아파트는 어떻게 들어오냐는 질문엔 “요즘 산타는 베란다 창문으로 날아서 들어오신단다”라며 그럴싸한 설정을 덧붙였다.
이제 곧 초등학교 3학년이 되는 딸. 내가 이 마법을 언제까지 지켜줄 수 있을까.
사랑하는 딸아, 만약 주변의 목소리에 네 생각이 바뀌게 되더라도 가끔은 ‘믿는 척’을 해주어도 좋아. 그렇게라도 너의 행복을 지키렴. 네가 진심으로 뽀로로를 만났던 그때 그 마음을 잊지 말기를. 그 행복은 네가 믿기만 한다면 언제든 다시 가질 수 있는 것이란다.
스펀지를 깎아 뽀로로를 만들던 엄마 아빠의 마음은 늘 네 곁에 있단다. 그러니 너는 그저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마음껏 즐기렴.
기적은 언제나, 믿는 사람의 몫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