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여진다는 것, 그 달콤하고도 무거운 책임에 대하여

-별로 돌아간 어린왕자, 하늘로 떠난 생텍쥐페리

by 주현정

"입마개에 가죽끈을 그리지 않았어!" 어린왕자가 자신의 별로 돌아간 뒤에야 비행사는 뒤늦은 후회를 해. 깜빡 잊고 그려 넣지 못한 그 작은 끈 하나 때문에, 혹시나 양이 어린왕자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장미꽃을 먹어치우지는 않았을까. 밤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가슴 졸이던 비행사의 후회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어린왕자가 있는 별로 인도하는 가장 아름다운 초대장이 되어 주었어. 그리고 하늘의 별들을 보았지. 모든 별이 방울처럼 웃고 있었단다.


"진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엄마는 《어린왕자》를 참 좋아해. 몇 번이나 읽었는지 모르겠구나. 읽을 때마다 매번 다른 감동이 밀려온단다. 엄마는 책을 참 늦게 읽기 시작했어. 책이 이렇게 좋은 것인지 진즉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가도,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에게 딱 맞는 ‘때’라는 것이 있다고들 하니 엄마의 책 읽는 시간은 40대였나 보다 싶기도 해.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땐, 동네 아줌마 친구들에게 꼭 읽어야 할 책이라며 추천하며 다녔단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아이의 시선으로 사물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었거든. 사실 어른이 된다는 건 어린 시절의 시선이 싹 걷혀버리는 일이라, 때로는 너희를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었어. 그런데 어린왕자를 만나고 나서 너희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단다. ‘아이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구나. 아이들의 눈에는 우리가 참 이상한 어른들이겠구나’ 하고 말이야.


어린왕자가 여행을 하며 만나는 다른 행성의 어른들은 하나같이 이상했어. 술 마시는 게 창피해서 그걸 잊으려고 계속 술을 마시는 주정뱅이, 장미꽃처럼 만질 수도 없는 별들이 다 자기 것이라며 숫자를 세는 데만 집착하는 상인, 백성은 한 명도 없는데 권위만 내세우는 왕까지. 그 왕은 오랜만에 생긴 부하가 떠나지 않길 바랐지만, 지혜로운 어린왕자는 "명령이 지켜지길 바란다면 합당한 명령을 내리라"며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지. 일중독자, 지리학자처럼 한 자리에 앉아 지도에만 집중하며 정작 발 앞의 꽃 한 송이에는 관심 없는 어른들. 그런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을 보며 엄마는 우리 딸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단다. 어른인 엄마조차 이해하기 힘든 그들의 삶을 통해서 말이야.


어린왕자가 양을 그려달라고 떼를 쓰던 첫 만남, 여우를 만나 '길들여진다는 것'의 의미와 그에 따르는 '책임'을 배우던 장면들. 그러면서 왕자는 자신의 행성에 두고 온, 가시가 네 개뿐인 연약한 장미꽃을 그리워하게 되지. 결국 지구에 온 지 딱 1년이 되던 날, 어린왕자는 뱀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별로 돌아가게 된단다.

어린왕자가 떠나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비행사는 입마개에 끈을 그려주지 않은 걸 알게 돼. 혹시나 양이 장미를 먹어치웠을까 봐 걱정하다가도, 이내 고개를 젓지. '아닐 거야, 어린왕자는 장미에게 유리 덮개를 잘 씌워줬을 거야'라고 믿으면서.


하늘의 별을 보며 행복하라는 어린왕자의 말을 떠올리며 비행사는 비로소 웃을 수 있게 되었단다. 자신의 별은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겠지만, 그렇기에 어떤 별에서든 자신을 찾을 수 있을 거라던 왕자의 말. 하지만 하늘을 보며 웃는 비행사를 보고 어른들은 미쳤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마지막 농담 같은 진심. 작가이면서 동시에 파일럿이었던 생텍쥐페리는 이 책을 출판하고 이듬해인 1944년, 마지막 출격을 나갔다 실종되었어. 그래서 이 책이 더 오랫동안 사랑받는지도 모르겠구나. 그의 생애 마지막 선물 같은 책이니까.


엄마가 입을 막고 감동에 젖어 있으니 아빠가 그러시더구나. "비행사가 어린왕자에게 갔을지도 몰라. 끈 없는 입마개를 그려준 게 내내 걱정되어서, 왕자가 걱정하지 말라고 데려갔을지도 모르잖아. 생텍쥐페리는 최후까지 어린왕자답게 사라졌네." 책도 읽지 않은 아빠가 엄마보다 더 완벽한 독후감을 들려준 것 같았어.


최후까지 어린왕자처럼 사라진 생텍쥐페리를 엄마는 오랫동안 기억할 것 같아. 그리고 엄마에게도 별에 숨겨둔 소중한 사람이 한 명 있단다. 바로 외할머니야. 외할머니가 떠나실 때 엄마가 그랬거든. "저기 제일 큰 별 옆에 딱 붙어 있어"라고. 그래서 이제 엄마에게 밤하늘은 슬픈 곳이 아니야. 별을 볼 때마다 할머니를 만나는 기분이거든. 할머니도 그곳에서 어린왕자와 친구가 되어 환하게 웃고 계실 거라 믿는단다.

우리는 모두 끈 없는 입마개를 쥔 채, 서로를 길들이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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