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이라는 이름의 보석을 찾는 눈
사랑하는 딸아, 인생이 막막할 땐 3일만 굶어보렴. 그러면 네가 진짜 무엇을 갈망하는지, 무엇을 사랑했는지 비로소 선명해질 거야. 텅 빈 뱃속이 주는 명료함 끝엔 결국 엄마의 따뜻한 미역국 한 그릇을 떠올리게 될지도 모르겠구나. 결핍은 그렇게, 우리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의 이름을 다시 불러준단다
굶어보면 명료해진단다. 무엇이 중요한지는 그제야 비로소 선명하게 나타나지. 만약 네가 3일을 굶는다면, 내가 어떤 음식을 가장 좋아했는지 비로소 알게 될 거야. 너희는 여전히 젤리며 아이스크림, 과자만 먹고살고 싶다 했지만, 며칠을 굶주리고 나면 결국 엄마의 미역국을 가장 먼저 떠올릴지도 몰라. ‘아, 흰 밥에 미역국 한 그릇만 먹으면 소원이 없겠다’ 하고 말이야.
네가 심심하다고 할 때마다 엄마가 “그건 좋은 거야”라고 했던 것 기억하니? 심심해야 비로소 ‘무엇을 하고 놀아야 내가 재미있어질지’ 스스로 궁리하게 된단다. 계속해서 자극적인 재미가 눈앞을 채우고 있다면 생각이란 걸 할 수 있는 틈이 생기지 않아. 엄마가 너희에게 핸드폰을 멀리하게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단다.
텅 빈 시간이 있어야 나를 즐겁게 만들기 위해 뭔가를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돼. 너희들이 그림을 잘 그리게 된 것도 그 덕분이 아닐까? 심심할 때 너희가 가장 많이 잡았던 것이 연필이었으니까. 린이는 대회에서 입상을 할 정도로 실력이 늘었지. 엄마 역시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 속에서 ‘나’에 대해 가장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어.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무얼 해야 즐겁게 살아갈 수 있을지. 지금 이렇게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도 어쩌면 그때의 심심함이 준 선물일지도 모르겠구나.
“내 친구 엄마 아빠는 사달라는 거 다 사준대요. 진짜 좋겠죠?”
엄마 들으라고 하던 그 말속에 ‘나도 갖고 싶은 게 많으니 좀 사주세요’라는 속마음을 담아 은근슬쩍 친구 이야기를 꺼내곤 했지. 그런데 얘들아, 갖고 싶은 걸 모두 가질 수 있다고 해서 정말 행복할까? 오늘 이것을 샀으니 내일은 더 큰걸 사달라고 조르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산 물건은 금세 쓰레기통으로 향하게 되고, 그 어떤 장난감에도 진정한 소중함은 깃들지 못할 거야.
엄마 아빠도 처음엔 참 힘들었어. 너희가 떼를 쓰며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 할 때, 엄마와 아빠는 아무리 떼를 써도 다 사주지는 말자고 이미 굳게 약속한 뒤였거든. 이런 엄마를 보며 주변 사람들은 참 말이 많았단다. 결핍이 생기면 오히려 성격이 안 좋아진다느니, 남의 물건에 욕심을 낼 수도 있다느니 하는 염려들을 숱하게 들었지. 장난감을 갖고 싶어 하는 건 아이로서 너무나 당연한 마음이니 그냥 좀 사주라는 권유도 많았단다.
그땐 엄마도 솔직히 잠깐 흔들렸어. 원하는 걸 사주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좋아하는 너희 모습을 보면 엄마도 잠깐은 행복해졌으니까. 하지만 갖고 싶은 걸 모두 가질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려줘야만 했어. 그게 부모의 역할이라 믿었단다.
린이가 용돈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언제든 필요한 것을 직접 살 수 있게 되었지. 그런데 자기 돈을 쓴다고 생각하니 아이가 달라지더구나. 엄마가 사줄게 했을 때는 가격표도 보지 않더니, 제 돈으로 사려니 지갑을 선뜻 열지 못하더군. 몇 분을 지갑만 만지작거리며 가격표를 꼼꼼히 살피던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500원이라는 말에도 “이건 너무 비싸서 못 사요”라던 네가, “엄마, 오늘은 아무것도 안 살래요. 이 돈 아껴서 선이 생일 선물 사야 하거든요”라고 말했을 땐 정말 기특했단다.
꼼꼼히 용돈기입장까지 챙기며 스스로를 다스리는 모습 말이야. 그렇게 아낀 돈으로 동생 생일에 다이소에서 통 큰 선물을 사고, 부모님의 기념일까지 챙기던 너희의 마음이 엄마는 참 좋았단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우리 집이 부족해 보일지도 모르겠어. 우리 집엔 정말 물건이 별로 없으니까. 하지만 딱 필요한 것만 두고 사는 엄마는 전혀 불편함이 없단다. 오히려 쓰지 않는 물건들이 쌓여 있는 걸 보는 게 더 힘들단다. 왠지 과소비를 한 것 같고 삶을 낭비하는 기분이 들거든. 냉장고가 늘 비어 보이는 것도 같은 이유야. 유통기한이 지나 버려지는 음식들을 볼 때면 하루 한 끼도 못 먹는 사람들에게 죄를 짓는 기분이 들곤 해.
부족함 속에서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단다. 엄마의 냉장고에는 알뜰하게 남은 무 한 조각까지 한눈에 다 보이니 버려지는 것이 거의 없어. 어제도 엄마는 자칫 잊혀 버려질 뻔했던 무 조각으로 시원한 어묵탕을 끓였지. 가득가득 채워져 있었다면 아마 말라비틀어져 버려졌을 그 작은 무 한 조각으로 말이야. 굶어본 뒤에야 간절해지는 엄마의 미역국처럼, 결핍은 우리에게 '진짜'를 가르쳐준단다.
그러니 얘들아, 결핍을 두려워 말거라. 그 '없음'의 시간 속에 숨겨진 진짜 보석을 찾는 눈을 가지길 엄마는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다. 진짜 네가 원하는 '하나'를 발견할 그날을 엄마가 응원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