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남은 고작 16년의 시간

인생이 35년 남았다고요? 아뇨, 진짜 시간은 16년뿐입니다

by 주현정

“딸아, 네게 앞으로 살날이 16년밖에 남지 않았다면 무얼 하고 싶니?”

엄마에게 남은 진짜 자유 시간이 고작 16년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더 이상 사소한 것에 목숨 걸 이유가 사라졌단다. 2026년 1월 18일. 엄마가 요즘 스스로에게 가장 자주 들려주는 말이야. 소중한 인생을 사소한 감정에 허비하지 말라는 것.


얼마 전까지 엄마가 윗집 때문에 아주 예민했었지. 밤 10시쯤만 되면 꼭 들려오는 ‘드르륵, 드르륵’ 청소기 소리. 너희도 알다시피 그 시간은 엄마에게 황금 같은 시간이야. 너희 둘을 겨우 재우고, 낮부터 읽고 싶어 아껴두었던 책을 드디어 펼치는 평화로운 순간이니까.


그런데 꼭 그때 위층에서 청소기를 돌리는 거야. 소리가 얼마나 큰지, 마치 엄마 귀에 대고 일부러 들려주는 것만 같았지. 엄마는 속으로 수없이 투덜거렸어. ‘왜 하필 이 시간이야? 조금만 일찍 좀 하지.’ 어느 토요일이었을 거야. 밤 11시가 넘었는데도 그 집 아이들은 잘 기색 없이 뛰어다니더구나. 거기에 엄마가 질색하는 청소기 소리까지 더해지니, 정말 참지 못하고 올라가 초인종을 누를 뻔했었단다.


하지만 그 순간, 엄마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 생각을 뒤집어보기로 했어. 화가 치밀어 올랐을 때 했던 그 어떤 행동도 결코 좋은 기억으로 남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야.

‘왜 이 시간에 꼭 청소를 할까? 어쩌면 이 시간밖에 짬이 나지 않는 건 아닐까? 퇴근해서 아이들 밥 챙기고, 씻기고, 숙제까지 봐주고 나면 결국 청소기는 이 시간에야 잡을 수 있는 어느 고단한 워킹맘의 사정일지도 모르겠다….’


정말 신기한 일이지. 종잇장 한 장 뒤집듯 생각을 ‘탁’ 하고 바꿨을 뿐인데, 귀에 날카롭게 박히던 소음이 ‘하루를 치열하게 정리하는 어느 엄마의 삶의 소리’로 들리기 시작하더라. 그 엄마를 이해해 보려 노력한 사소한 시도가 엄마에게 큰 평화를 가져다주었고, 덕분에 엄마는 다시 평온하게 책 속으로 빠져들 수 있었어. 결국 그 찰나의 생각은 엄마를 위한 것이었더구나.


주말에 아빠가 그 소리를 듣고 투덜거릴 때도 엄마는 웃으며 말할 수 있었지. “윗집은 이 시간밖에 없나 봐. 워킹맘이라 퇴근하고 집안일 하느라 힘들 텐데도 저렇게 집을 돌볼 수도 있는 거잖아. 우리도 아래층에 늘 미안한 입장인데, 윗집을 탓할 처지는 아닌 것 같아.” 어느새 엄마는 윗집 엄마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었단다.

언젠가 아빠가 그러더구나. 이 유구한 지구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점처럼 잠깐 머물다 가는 존재라고. 그러니 너무 아등바등 살지 말자고 말이야. 언제 어떻게 마지막을 맞이할지 모르는데, 작은 것에 목숨 걸며 살기엔 우리 인생이 너무 귀하잖아. 엄마는 그 말이 참 좋았어. 찰나 같은 인생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 끝에 얻은 답은 의외로 단순했어.


“그저 많이 웃자.”


많이 웃는 사람이 결국 승자가 아닐까? 설령 울적하더라도 억지로 웃어 보이면, 눈치 없는 뇌는 ‘아, 우리 주인이 지금 행복하구나!’ 하고 착각한다잖니. 그렇게 내 뇌를 속여서라도 소중한 행복을 지켜내는 거지.

실제로 계산해 보면 우리가 누릴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아. 80세를 기준으로 인생 80년 중 잠자는 데 26년, 씻고 화장실 가는 데 1.5년, 먹는 데 5년을 쓴대. 이 필수적인 시간만 합쳐도 벌써 32.5년이지. 여기에 일하고, 이동하고, 가사 노동하는 시간까지 더하면 인생의 절반 이상이 사라져.


엄마 나이 마흔다섯. 남은 시간 중 필수적인 소모 시간을 빼고 나면, 엄마에게 온전히 남은 자유 시간은 고작 16년 정도더구나. 누군가를 사랑하고, 글을 쓰고, 아빠와 너희와 웃으며 자연을 만끽할 시간이 16년뿐이라니. 이 숫자 앞에서 엄마는 정신이 번쩍 들었어.


사실 엄마도 여전히 사소한 일에 발끈하고 걱정하며 머리를 싸맬 때가 많아. 하지만 이제는 놓아주는 연습을 하려고 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걸 이제야 배우는 중이지.


부디 우리 딸들은 이 짧은 인생을 마음껏 웃으며 살았으면 좋겠어. 누구도 거대한 산에 걸려 넘어지지는 않아. 우리를 넘어뜨리는 건 언제나 발밑의 보이지 않는 작은 돌부리들이지. 그 작디작은 돌부리에 소중한 인생을 다 쏟아붓지 마렴. “아, 아프네!” 하고 한 번 웃고 툭툭 털어버릴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렇게 살아보니 정말로, 조금씩 더 행복해지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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