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무게를 이제야 봅니다.

구안와사 극복기

by 주현정

15평, 작은 쓰리룸에서 둘째가 태어났다. 밤낮없이 우는 신생아 덕에 잠은 사치였던 시기, 남편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나는 젖몸살로 온몸에 열이 펄펄 났다.


작은 방엔 옷들과 첫째가, 큰 방엔 신생아와 우리 부부가 함께 지냈다. 자정까지 일하고 새벽에야 잠드는 남편은 늘 지쳐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공황장애 증상을 보였고, 결국 구안와사까지 겪었다.

나는 서른여섯, 늦깎이 신부였다. 작은 집에서 시작한 신혼. 시작과 동시에 첫째를 임신했다. 노산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내 몸은 임신에 잘 맞는 체질이었다. 다이어트 걱정 없이, 행복한 10개월을 보냈다. 그로부터 3년 뒤, 계획에 없던 둘째를 임신했다.


작은 집이었지만, 우리의 시작은 그렇게 어둡지 않았다. 미래에 대한 부푼 희망으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학원을 운영하던 남편은 자정이 넘어 퇴근했지만 항상 육아와 살림을 도왔다. 번갈아가며 아이를 재웠고, 모유 수유를 빼고는 모든 것을 함께 했다.


모유를 고집했던 나는 자주 아팠다. 젖이 차오르면 통증이 심했고, 수유 타이밍을 놓치면 통곡 마사지를 받거나 양배추 잎까지 붙여야 했다. 내가 몸져누울 때면 남편이 육아와 집안일을 도맡았다. 그렇게 고단한 몸으로 다시 학원에 나가는 남편을 보며 고마움과 미안함이 교차했다.


남편은 학원을 키워가며 새로운 선생님과 호흡을 맞췄다. 순조로운 시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믿었던 선생님이 갑작스럽게 퇴사 의사를 밝혔다. 선생님의 빈자리를 채우기위해 고군분투하던 시기. 남편은 혼자 차량기사를, 원장 업무을, 구멍난 선생님의 자리까지, 그야말로 카오스 상태였다.


그즈음부터 였다. 남편은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게 공황장애의 신호라는 걸, 그땐 몰랐다. 나도 육아에 지쳐 있었기에.


하나만 키울 땐 몰랐던 고됨이었다. 밤새 아기를 달래고 젖을 먹이며, “차라리 해가 빨리 떠주길” 바라던 날들의 연속. 그 와중에 남편을 챙긴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첫째는 손이 많이가는 네 살이었고 , 나는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이를 닦다 말했다. “입에 물이 머금어지지 않아.” 얼굴 한쪽이 마비된 것이었다. 그는 그런 와중에도 “운동하면 괜찮아질 것 같아”라며 운동화를 신었다. 그땐 짐작조차 어려웠다. 그가 짊어진 무게를, 그 고통을. 내 코가 석 자, 아니 열 자였기에 돌아볼 겨를조차 없었다.


순간 간호사 친구가 떠올랐다. 전화를 걸자 그녀는 다급하게 말했다.

“빨리 병원 가. 구안와사야.”


조깅을 하러 간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두 아이 앞에서 목 놓아 울었다. 둘째를 수유쿠션에 올려 놓고, 영문도 모르는 첫째 옆에서…

“제발, 지금 당장 병원에 가자. 빨리 들어와” 그날, 내 우주가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병원에서 구안와사 진단을 받았지만, 남편은 학원으로 출근해야 했다. 그제야 나는 조금씩 깨달을 수 있었다. 남편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겨왔다는 것. 나의 고단함에 매몰되어 그의 헌신을 보지 못했다는 것을.


후회할 시간이 없었다. 무언가 해야 했다. 서둘러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냈다. 둘째를 아기띠에 업고 집을 나섰다. 뭔가에 홀린 듯 복덕방으로 향했다. 하늘이 도왔는지, 학원 근처에 1년 계약의 작은 방이 있었다. 나는 앞뒤 재지않고 도장을 찍었다. 내 인생 첫 단독 계약이었다.


그리고 남편에게 통보했다.

“오늘부터 집에 오지 마. 잠방 구했어. 이불도 준비해뒀으니 거기서 자. 애들 보고 싶으면 잠깐 들러.”

남편은 완강히 거부했지만, 내 결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내 우주를 지켜야 했다.


그렇게 남편의 두 집 살림이 시작되었다. 자정이 넘으면 학원에서 나와 잠방에서 푹 쉬었고, 짬이 나면 아이들을 만나러 집에 들렀다. 그 시절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떻게 두 아이를 혼자 돌봤는지,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뎠는지. 다만 분명한 건, 남편이 점점 나아졌다는 것. 그리고 결국, 예전처럼 유쾌하고 자상하고 다정한 남편으로 돌아왔다는 것.


결혼 10년 차. 남편은 가끔 그 시절을 떠올리며 말한다. “당신은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었어. 그런 시간을 줘서 정말 고마웠어.”


남자들은 결혼과 동시에 어깨 위에 곰을 얹는다.

나는 남편의 첫 번째 곰이었다.

첫째가 태어나며 두 번째 곰이,

둘째가 태어나며 세 번째 곰이 그의 어깨에 올라탔다.


그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을까.

나는 그걸 이해하려 노력했을까.

이제라도 더 사랑하고, 더 이해하고 싶다.

모든 가장의 어깨 위 곰을 이해하며,

더 단단한 부부가 되어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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