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에 붙은 살가죽, 희미해진 눈동자, 코에 낀 녹색 호스, 말도 할 수 없는, 오직 들을 수만 있는, 듣고 눈물까지는 흘릴 수 있는 그 상태였다.
치매에 걸리신 할머니는 진즉, 요양원신세를 지고 계셨다. 면회를 갈 때마다, 요양보호사를 향해 욕설을 내뱉으셨는데, 이러는 이유가 치매에 걸리면 나오는 증상인 건지, 아님, 할머니의 삶이 얼마나 어두웠는지를 보여주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할머니는 연거푸 나에게 밥 먹었냐는 확인을 하셨고, 내가 챙겨간 두유를 계속 권하셨다. 할머니 눈앞에서 열심히 두유 4팩 정도를 연속으로 먹어 치운 후, 할머니가 또 한 번 밥 먹었냐는 말을 하기 전에 화제를 돌려야 했다.
할머니는 먼저 돌아가신 당신의 둘째 아들인 외삼촌의 안부를 묻기 시작했다. 돌아가신 사실을 우리는 알리지 않았다. 밥은 먹고 다니는지, 건강은 어떤 지 등을 물으셨고, 나는 잘 지내고 계신다고 말할 뿐이었다.
나는 맏손녀로 외할머니의 관심과 사랑을 많이 받아왔다. 할머니가 떠준 스웨터, 목도리 등 디자인을 신경 쓰기보다는 있는 실을 이어 붙여 완성해 주시곤 하셨는데, 할머니가 나를 위해 떠주는 그 자체가 사랑이었다. 할머니가 해 주신 양념 꼬막이 특히 맛있었는데, 그 솜씨와 맛은 사실 기억 속에 자리할 뿐, 친정 엄마가 해주시는 맛과 동일한 지, 내가 조금이라도 흉내를 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저 지금은 먹을 수 없는 꼬막일 뿐이다.
할머니는 리어카에 과일을 실어 시장 지정된 자리에서 장사를 하셨는데, 할머니 댁에 갈 때마다 할머니가 장사를 마치는 시간에 맞춰 물건 정리하는 것을 도와드리거나, 할머니가 장사하실 때 옆에 앉아 사 주신 풀빵 먹는 것을 좋아하곤 했다. 가끔 주변 상인 할머니, 할아버지께 인사하고 관심받는 걸 즐기기도 했던 것 같다.
나는 할머니 품에 안겨 잠들곤 했었다. 쿰쿰하고 퉁퉁한 할머니 품이 좋았다. 할머니가 사주시는 풀빵이 좋았고, 실장갑이 좋았고, 꼬막이 좋았다. 할머니 옆에서 할머니가 장사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았다. 할머니가 데워 두신 구들목 한편을 차지하고 앉아, 멍든 사과를 집어 좋은 부분만 베어 내어 주시는 것을 얻어먹고는 행복해하기도 했다.
할머니에 대한 내 기억은 상당 부분, 어렸을 때에 멈춰 있다. 자아가 강하게 형성되기 전이어서 일 수 있고, 할머니가 나에게 매우 큰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때 강하게 형성된 할머니와의 유대감은 학창 시절에도, 성인이 되어서도, 결혼을 하고 나서도,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순간에도, 돌아가시고 나서도 한참이나 끊어지지 않았다.
큰 외삼촌인 할머니의 첫째 아들은 대학까지 나와서는 사업을 잘못해 할머니의 논과 밭과 집까지 다 처분하게 만들고 빚쟁이가 되어 떠도는 신세였다. 바로 밑에 태어난 둘째이자 장녀인 엄마는 국민학교 시절 할머니께서 그림 도구인 화판 하나를 안 사주시고, 나무판자 하나 갖다가 던져 주셨다는 일화를 60이 넘은 지금까지도 한 맺힌 듯 얘기하신다. 장녀로 태어나 국민학교도 다 못 마치고, 빵공장일을 다닌 엄마로서는 충분히 한이 맺히셨을 듯하다. 엄마 밑으로도 동생이 3명이나 더 있었으니, 엄마는 그렇게 산고개를 넘어 행복하게 다니던 학교도 너무 이른 나이에 그만두셔야 했다.
다들 장성하고 나서도 문제는 계속되었다. 빚쟁이 첫째 아들, 알코올 중독인 넷째와 막내아들까지, 삼촌들은 결혼을 하고 나서도 계속 문제를 일으켰고, 할머니는 홀로 그 뒷바라지를 다 하셨다.
말로는 알코올중독으로 빼빼 마른 넷째 아들과 너무 늙고 연로해 아무것도 찾아 먹기도 해 먹기도 힘든 할머니, 그리고 넷째 아들의 아들인 귀한 손자, 이렇게 셋이 장녀인 우리 엄마가 얻어 준 집에 남겨졌다. 그러다 할머니는 치매로 요양원에 입원하시게 되고, 남겨진 외삼촌은 알코올성 당뇨로 돌아가시게 되었다.
치매라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심해지는 것이기에, 할머니의 기억 속에 잠깐이라도 내가 존재한다는 것에, 그 순간에 감사했으며, 내 끼니와 내 옆에 앉은 내 남편의 안색까지 챙기는 할머니가 대견했다.
점점 날 알아보는 순간은 잦아들었고, 온종일 욕과 넷째 아들에 대한 걱정으로 할머니의 하루가 채워졌다.
그렇게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날, 난 운이 좋게도 할머니를 찾아뵐 수 있었다. 하마터면 미루고 가지 않을 뻔한 것을 가게 된 것이다. 뼈만 앙상하게 남아있던 할머니는 희미해진 눈동자로도 나를 알아보셨다. 치매에 걸리셨을 때 독기 가득했던 그 눈빛이 아니었다. 어렸을 적 나를 바라보던 따뜻한 눈빛이었다. 나를 한 번에 알아보시고는 눈물을 흘리셨다.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 듯 보였다. 하시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내 예쁜 손녀…”
“할머니가 먼저 가서 미안해…”
한 번은 두드러기로 고생한 적이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할머니는 들에 있는 모든 민들레를 꺾어 말리셔서 포대 크기로 10 봉지를 주신 적이 있다. 민들레가 피부에 좋다는 이유였다. 그걸… 차로 먹으면 됐던가? 너무 많아서, 먹다 안 먹다, 안 먹고 냉동실에 보관하다 냉장고 정리할 때마다 한 봉지씩 버렸었다.
그리고 아직 버리지 못한 한 봉지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