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풍 편지】 - ‘시간으로부터의 해방’

by 박대영

2026. 그리고 한 달…

그 시간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내 몸속, 내 마음속, 내 머릿속 어딘가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을 것만 같은데, 돌아보면 아슴푸레한 것이 아득하다. 그 시간은 정녕 실재하기는 했던 것일까.


그래서인지 시간들이 나도 모르게 뭉텅뭉텅 잘리어 어디론가 흘러가 버리는 느낌이 든다. 새로운 날에 새로운 꿈을 안고 조바심을 내며, 그 시간 안에 머물고자 했던 한 인간의 절절한(?) 바람조차도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시간은 저만의 일정과 속도에 따라 아무런 표정도 없이, 그렇게 시크(?)하게 흘러가 버리고 말았으니, 오호, 애재(哀哉)라.


어느새, 벌써! 비명처럼 쏟아내는 인간들의 조바심 정도는 그저 우습고, 그래서 뭐? 질책은 당연하고, 우두망찰하는 모습에는 조소를 보내기도 한다. 시간은 원래 그런 거야. 콧방귀는 덤이다. 째깍째깍... 벽에 걸린 시계는 저도 제 갈 길이 바쁘다고 아우성을 치고 설레발을 떠니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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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시간을 쫓아가는 인간들만 안달을 한다.


떠도는 시간과 시간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어떤 축제를, 어떤 길을, 어떤 꽃을 꿈꾸며 달려왔길래 이리도 아쉬워하는가? 그 시간 안에서 우리가 찾고자 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무수한 들판을 바람처럼 헤매며 삶의 저 먼 곳에서 나부끼는, 어떤 희망을 붙잡기 위해 우리는 그토록 방황하고, 조바심을 냈더란 말인가?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결국 시간 안에서, 그 시간을 뒤쫓으며 우리가 붙잡고자 했던 것은, 어쩌면 그저 그런, 다만 돌아보아 웃을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이 전부가 아니었을까. 그 일상이 켜켜이 쌓여서 만들어낸 작지만, 단단한 자신만의 삶…. 고작 그것뿐인데, 무슨 대단한 것을 욕심낸 것도 아닌데, 나는, 우리는 왜 시간 앞에서 그토록 조바심을 냈더란 말인가.


결국, 각자의 시간이 열심히 달려 도달하는 소멸이라는 마지막과 지금 내 발걸음이 놓이는 현재라는 순간 사이에 놓여 있는 각자의 삶, 그 삶을 가로지르는 시간들의 더미가 문제인 것이다. 아무런 확신도, 낙관도 허락지 않는 외줄타기 같은 그 시간들 말이다. 어떻게 해보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삶이 고독한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마구 흘러가 버리고, 어느 순간엔 아무것도 곁에 남지도, 머물지도 않을 것이니 어찌 고독하지 않을 것인가. 그런데 그것은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무엇이라도 결국엔 붙잡아둘 수도 없고, 잃어버린 걸 찾으러 다시 되돌아갈 수도 없으니 말이다. 다만 각자 지금이라는 스스로의 삶을 살아갈 뿐….


턴테이블 위에 놓인 LP판처럼 돌고 도는 반복의 일상...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새로운 시간들이 스크래치를 내며 LP판 안에 숨어있는 소리들을 끄집어내듯, 돌고 도는 우리 역시 새로울 것도 없는 지나온 삶을 소환하며, 오늘을 소일한다. 더러는 신나게, 더러는 처량하게….


그렇듯 시간은 늘 매 순간 새롭게 다가서고, 잠시 멈춘 듯 아닌 듯 머무르다 이내 사라져간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시간도, 우리도, 그렇게 흘러가는 중이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것조차도 흘러가는 시간의 결과이듯, 살은 날 만큼의 쳇바퀴는 그렇게 무한반복의 맴을 돌고 돈다. 그 와중에 우리의 얼굴에는 어느새, 벌써, 아무도 모르게 낙엽이 지고, 고랑이 파인다.


우리는 결국, 새로운 것과 사라지는 것 사이에서 잠시 머무르다 사라질 운명이다.


낡아가는 스스로를 깨달으며, 쌓여가는 기억들의 더미에서 허우적거리며, 아파하고 뿌듯해하며 흐르다 멎는 시간을 깨달으면서, 그렇게 우리는 시간 안에서 살다가 간다. 다행인 것은 소멸의 그 순간까지 유한하지만 무한한 새로운 시간들이 또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년(소녀)이 어른이 되고, 그 어른이 또 얼마의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만의 자유를 얻고, 겨울을 난 나무에 꽃이 피고 잎이 돋고,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새로운 시간 안에서 ‘창조‘하고 '발견'해야 할 덕목이다. 행복하고 싶다고, 사랑하고 싶다고, 누군가를 위해서라도 잘 살고 싶다고 외치면서 맞이해야 할 새로운 시간 말이다.

그 시간들은 자주 살펴보고, 자주 만져주고, 자주 느끼면서, 그렇게 자주 쓰다듬으면서 모난 돌이 물살의 너그러운 만짐에 결국 동그랗고 매끄러운 조약돌이 되듯, 우리의 시간 역시 편안하고 너그럽게 맞이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니 조바심을 낼 필요도, 안달할 필요도 없다. 그래봤자 소용없더라는 거 이제는 알 것도 같으니, 빠듯하게 굴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길 위를 서성거리는 여행자다. 서성거림은 여유고 자유다. 시간의 물살 위에서 뒹굴며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러니 걱정 말고 너도 가고, 나도 가면 되는 것이다.

왜 떠나느냐고 묻기 전에 우리는 이미 길 위로 던져진 여행자가 아니던가. 그러니 나와 내 시간을, 타인과 타인의 시간을 다정하고 사려 깊게 바라볼 수만 있다면 우리는 시간과의 쟁투를 멈추고 자신만의 ‘해방일지’를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 여명을 뚫고 햇살이 비치는 현재의 순간만이 우리가 감당할 수 있고, 또 누릴 수 있는, 우리의 시간이면서 삶의 전부다. 그 시간이 우리 자신들의 해방공간이다.

존재하지 않는 과거와 결별하고, 타인의 욕망을 내 욕망으로 착각하지도 말고, 할 수 없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구별하며, 잘~ 보다는 열심히~를 모토로 삼고 살아가다 보면 아마도 그곳에, 그 시간 안에 자유와 해방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일단은 뭐, 그렇다고 믿어보자. 어떻게 살아왔든, 내 삶은 또, 지금부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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