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풍 편지】 – ‘어찌 되겠지…’

by 박대영

‘잘 사나?’

오랜 직장생활을 마무리하고 쉼의 시간을 누리고(?) 있는 나에게 오랜 벗이 묻는다. 비록 말은 짧지만, 이 세 글자 안에 친구의 걱정과 응원이 담겨 있음을 마음으로 느낀다. 짜식! 걱정하고 있구나, 하는…


‘잘 산다.’

달리 할 말이 없다. 무슨 특별한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또 다른 시작 앞에서 멍하니 서서 앞만 쳐다보고 있는 처지다 보니, 달리 할 말이 있을 리가 없고. 그래서 한 마디 보탠다.

‘그래, 머, 어찌 되겠지…’.


아무리 용을 써도 어쩌지 못하는 것이 세상살이고, 또 그것이 살아가는 일이라면 그냥 삶에 순응하며 사는 것도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이제는 하게 되는 것이다. 노력은 하되, 결과에 대해 애면글면하지 말아야 한다는 나름의 다짐까지도 더해서 말이다.


더러는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고들 하지만, 아쉽게도 이팔청춘을 넘긴 지는 너무 오래고, 지천명(知天命)마저 아득한 지금에 와서는 간절히 바랄 어떤 목표도, 대상도, 이유도 희미해져 가고 있으니, 낙관과 포기의 절묘한 경계인 ‘어찌 되겠지’는 참으로 유용한 처세술이면서, 나름 삶의 철학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원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어찌 되겠지’는 책임을 방기하는 말이 아니라, ‘죽으라는 법은 없다’라는 생존의 주문이었다. 정해진 결말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길을 찾겠다는 한국적 유연성까지 포함하는 말이 ‘어찌 되겠지’다. 힘든 친구의 어깨를 두드리며 건네는 ‘어찌 되겠지’가 위로이면서 생존의 주문인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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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 말에만 이런 뜻을 가진 말이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 스페인어에는 ‘케세라세라(Que Sera, Sera)’가 있다. ‘될 대로 되라’, ‘일어날 일은 일어날 것이다’라는 의미를 지닌 말이다.


외국의 어느 가수(Doris Day)가 부른 노래로 유명해진 말로, ‘미래는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노래 가사처럼,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 있음을 인정하고, 내가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 현재에 집중하라는 말이다. 여기서 ‘Carpe Diem’이 생각났다고? 통찰력 굿!


그리고 몇몇 아프리카 나라의 공용어인 스와힐리어에도 비슷한 의미로 ‘하쿠나 마타타(Hakuna Matata)’가 있다. 애니메이션 영화 <라이온 킹>에서 OST로 불리어 유명해진 말이기도 하다. 그 뜻은 ‘다 잘될 거야. 걱정하지 마라'이다. 과거의 실수나 미래에 대한 불안에 얽매이지 말고, "모든 것은 결국 잘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 태도를 강조한다.


"나쁜 일이 생기면, 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그렇지? 그럴 땐 그냥... '과거는 상관없어(Put your past behind you)'라고 하는 거야!"
- <라이온 킹>에서...


<라이온 킹>에서 무리에서 쫓겨난 숫사자 심바에게 미어캣인 티몬과 멧돼지인 품바가 ‘현재를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한 말이다. 여기서 ‘현재를 살아라’는 과거가 현재의 발목을 잡지 못하게 차단해야 오늘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로, 나름의 생존 전략이었던 것이다. 바꿀 수 없는 과거에 매몰되어 현재를 낭비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정언명령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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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말들이 공통으로 의미하는 바는 ’될 일은 되게 돼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긍정과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반대로 ’안될 건 안 된다.‘는 엄혹한 삶의 진리도 포함하고 있으니, 남용하진 마시라~ 어찌 어찌 살아도 되겠지, 하는 막연하고, 무책임한 태도까지 포용하는 맹목적인 메시지는 아니라는 말이다. 노력하는 자세는 늘 삶의 기본인 거, 그 정도는 아시죠?


그러니 이 순간,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사람은 그저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는 하늘의 뜻을 따르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말이다. 살다 보면, 열심히 해서 되는 일도 있고, 안 되는 일도 있는 것이 당연지사이니 두말하면 잔소리일 뿐이다. 그럼에도, 할 수 있는 건 다 한 다음에 기다려야 한다는 거. 이거는 잊지 말자.


그럼에도, 간혹 ’어찌 되겠지‘를 말하면 무책임한 사람이 아닌가 하고 가자미눈(?)을 뜨고 삐딱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더러 있기는 한데, 이 말에는 누가 뭐라 하든 나이를 먹어가면서 결과보다는 과정을 즐기고 싶어 하는 누군가의 마음도 담겨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시길~


이제는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자만의 낭만이랄까, 아니면 그 과정의 즐거움에 흠뻑 취해 보고 싶은 철없는 로망일 수도 있겠으나, 그마저도 백수의 자뻑(?)적인 놀이이자 즐거움이니,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하시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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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연장선에서 곁들이면 좋은 삶의 자세가 ’~ 되고‘의 태도가 아닐까 싶다. 사랑받고 싶으면 내가 먼저 사랑하면 되고, 행복하고 싶으면 그게 뭐든 만족하면 되고, 여유가 필요하면 멈춰 서면 되고, 궁금한 게 있거든 묻거나 공부하면 되고, 떠나고 싶으면 배낭 하나 메고 문을 나서면 되고,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좋아한다고 말하면 되고, 건강하고 싶으면 운동하면 되고, 졸리면 자면 되고… 또 뭐가 있을라나?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 ’어찌 되겠지‘의 전제는 ’어찌 해보는 것‘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뭘 ’어찌 해보는‘ 시도가 무조건 선행되어야만, ’어찌 되는‘ 결과로 이어지니 말이다. 아무리 멋진 돼지꿈을 꾸어도 일단은 먼저 복권을 사야 하고, 그래야 당첨이 되든 말든 한다는 사실을 늘 주지하시라~


하고 싶은 일이나 로망, 바라는 무엇이 있으면? 그럴 땐 먼저 그냥 ’어찌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했는데도 안 된다? 그럴 땐 뭐 어쩔 수 없는 거고. 운명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좀 편해지려나. 좋아한다고 말했는데도 상대가 내 마음을 몰라준다면? 그건 뭐 인연이 아닌 거고. 그러니 마음 아파할 이유도 없다. 그래도 아프다? 그러면 조금만 아파한 다음에 툴툴 털어버리시길….


그런 다음에 또 시도하고, 들이대고…. 그렇게 또 다른 대상이나 일, 그리고 목표를 찾아 ’~되고‘를 실천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들이대면, 어찌 해보면, 또 어찌 되지 않을까 싶으니 말이다. 마음대로 다 되면? 그건 좀 아니지 않을까? 그런 일은 세상사에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니 너무 기대는 마시고...


실패의 미덕은 또 어찌 해보라는 부추김 내지 꼬드김에 넘어갈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를 가지는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래서 귀가 얇아 어떤 유혹에 넘어갔다면? 자책은 조금만 하시고, 또 뭔가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라 믿고, 뭘 하고 있으니 그만하면 잘 살고 있는 거겠거니, 하고 믿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 다 어찌 될 것이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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