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풍 편지】 - ’나잇값‘에 대하여…

by 박대영

“나잇값 좀 해라”


참 무겁고 어려운 말이다. 누군가 이 말을 들었다면, 뒤통수가 서늘해지고, 얼굴은 화끈거리다 못해 울그락불그락해질 것이고, 가슴 한 켠은 와르르 무너지는 절망감에 꽤나 아팠을 것이니, 그 말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가 않다.


도대체 그놈의 나잇값이 무엇이길래 이리도 아프단 말인가?


나잇값을 하라는 말의 속내는 허투루 살았다는 비난이면서, 나이에 비해 부적절하고 미숙하다는 평가일지니, 아무리 뻔뻔한 가슴인들 무너지지 않고 버틸 재간이 없는 것이다.

나잇값은 나이+값이다. 여기서 나이란 살아온 시간의 총합이면서, 그 살아온 시간 동안 쌓아온 경험과 사회적 위치까지를 포함한다. 그리고 값은 그 나이에 걸맞게 갖추어야 할 지혜나 책임감, 그리고 분별력, 자제력 등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니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지혜는 고사하고, 행동이 경박하고, 말은 경솔하며, 태도는 감정적이며, 게다가 사회적 책임을 도외시할 때 우리는 그 값 좀 하라는 비난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이를 먹었다고 삶의 지혜니, 책임감이니, 분별력이니 하는 것들이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게다가 요즘의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나잇값 속에는 경제력도 무시하지 못할 요소라, 갈 길은 더욱 더 멀게만 느껴지고, 애먼 느린 걸음만 탓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사회의 변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나이에 대한 외부의 기대와 개인이 처한 현실 사이의 괴리는 자꾸만 커져 간다. 그래서 나잇값의 의미도 변화와 충돌이 불가피한지도 모를 일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하면서도 중년의 그들에게 ’서울 자가(自家)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같은 사회적 기준을 들이대니 나잇값을 하기가 더욱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성공이라는 사회적 요구를 달성하기 위해서, 또는 그도 아니면 최소한 호구지책이라도 제대로 하기 위해서 열심히 달려왔다. 아쉬운 점은 그 와중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성찰할 기회와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잇값이 어렵고 버겁다.



우리는 어쩌면 외형의 삶에 매진하느라 내면의 성숙이라는 요소를 간과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외화내빈의 삶~ 사회적 성공이라는, 주머니만 두둑하면 된다는, 그렇게 외적인 성취를 성공한 인생이라고 동일시하는 착각, 내지 무지, 그리고 오만도 그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나이듦을 거부하는 세태 역시 나잇값을 하기 어렵게 하는 요소다. 다들 젊어지려고만 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영포티'(Young Forty)‘를 넘어 ’영식스티'(Young Sixty)‘까지 거론되는 실정이다. 이러한 외면을 중시하는 시회적 풍조는 내면의 성숙을 등한시하는 세태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들의 시선이 내면의 성숙보다는 외면의 비주얼을 더 중시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나잇값이라는 사회적, 개인적 책무는 무시해서도, 무시할 수도 없는, 살아가는 이유이면서 존재론적 가치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인다. ‘나잇값을 하라’는 것은 ‘시간이 준 경험과 성찰을 삶의 태도로 드러내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나잇값 = 성숙한 태도라는 말이고, 성숙한 태도야말로, 또 다른 풍요로운 삶의 이유가 되니 어찌 모른 척할 수 있을 것인가.


나잇값을 하는 성숙한 태도란 구체적으로 책임감 있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것은 타인에 대한 배려 깊은 품위 있는 태도이며, 나보다 어린 세대에 대해 관용과 이해로 감싸는 행동의 표현이면서, 스스로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배울 줄 아는 겸손함을 지니는 것이다. 나아가 세상과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고,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주체적인 자립을 이루는 것 등을 의미한다.



《어른으로 산다는 것》의 저자인 김혜남은 '나잇값'을 단순히 사회적 지위나 연장자로서의 권위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의 짐을 스스로 지고 가는 사람'으로 정의했었다. 나잇값은 단순히 ‘연륜의 무게’가 아닌 ‘내가 살아온 시간에 진심으로 책임지는 모습’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나잇값은 나이만큼의 깊이를 가지는 것이며, 자신의 삶에 다가온 자유와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온전히 감당하는 주체적인 자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나잇값은 자신이 살아온 시간만큼 인생의 경험과 지혜가 축적되었음을 세상에 드러내고 증명하는 성숙하고 책임감 있는 태도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잇값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후회와 미련으로 가득 찬 '절망'이나 ‘우울’ 상태로 방치하지 않고, 자기 수용을 통해 내면의 '평화'를 이루는 정신적 성숙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자신의 삶을 후회 없이 의미 있는 것으로 수용하고, 죽음까지도 평온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제대로 된 나잇값을 하는 것이란 말이다. 그래서 그놈의 나잇값을 하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잇값은 ‘단순히 숫자가 아닌, 시간이 흐르며 얻은 지혜를 타인과 사회에 긍정적인 방식으로 환원하는 성숙한 삶의 태도’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써놓고 보니, 안 그래도 살기 힘든 세상에 주저리 주저리 말만 많아진다. 말이 많다는 것은 스스로에게도 할 말이 많다는 뜻일 게다. 그 많은 말들 중 으뜸은 멋과 품위가 있는 ‘로맨스 그레이’가 되자는 다짐이다. 그래서 나이듦이 두렵기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잇값이라는 것은 자신의 삶의 성숙도의 좌표이자 저울이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어렵더라도 가야 할 길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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