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 2

삶으로의 초대장

by 지니

불어오는 미풍이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밀밭을 쏴아 어루만지며 스쳐 간다. 물감을 풀어놓은 듯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그림처럼 떠 있다. 청명한 햇살과 따뜻한 공기는 내 온몸을 축복하고 지저귀는 들새들은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에 송가를 보내준다. 나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산티아고 순례 여행의 일정은 아주 단순하다. 걷고 먹고 자는 것이 전부다. 기상해서 아침을 먹고 두어 시간을 걸으면 작은 산골 마을이 나타난다. 마을 카페에서 생맥주 한잔을 시원하게 들이켜고 나서 그 취기에 힘입어 두어 시간을 구름에 떠가듯 걸으면 점심 먹을 시간이 된다. 식당에서는 포도주가 테이블마다 나온다. 산골 마을 투박한 가정식과 함께 든 포도주 몇 잔을 연료 삼아 다시 길을 나선다. 서너 시간 더 걸으면 마침내 그날 숙박할 마을에 도착한다. 저녁 식사를 하고 잠자리에 들면 그것이 하루의 일정이다. 놀라운 것은, 오랫동안 괴롭히던 불면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잠자리에 누웠다 했는데 눈을 떠보면 아침이 되는, 시간 증발의 경험을 하게 된다.


대단한 볼거리 하나 없는 이 고단한 순례길에는 느긋한 휴식도, 관광이나 유흥, 오락도 없다. 나처럼 종교적인 동기가 없는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목적”이 없는 여행이다. 혹자는 도보 순례 여행을 하면서 긴 시간을 걷다 보면 저절로 깊은 묵상을 하게 되며 꼬여있던 인생의 문제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고, 그것이야말로 순례 여행의 목적이라고 말한다. 내 개인적 경험으로는 동의할 수 없는 의견이다.


하루 25km 이상의 거리를 며칠도 아니고 한 달을 걷는다는 것은 육체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걷기에 급급해서 생각에 잠길 여지가 없다. 뿐만 아니라, 걸으면서 혹시라도 생각에 잠겨서는 안 된다. 생각에 잠겨 이토록 풍요로운 이국땅의 하늘과 대지와 공기가 선사하는 축복을 놓친다면 이 여행의 진수를 놓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생각에 잠길 수가 없다. 한참을 걸은 후 들이키는 산골 마을 카페의 시원한 생맥주는 거부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도수가 제법 된다. 그 취기는 무거워진 발걸음을 중력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뿐 아니라, 머릿속도 텅 비게 만들어 버린다. 이 여행의 진정한 목적은 오히려 생각을 멈추고 머리를 비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규칙적으로 들리는 자신의 거친 숨소리와 내딛는 발걸음 소리가 무념무상의 명상으로 우리를 이끈다. 이 무념무상 속에서 지극한 평온함과 충만감을 경험할 수 있었다.


지난 시간에 대한 회한, 앞으로 다가올 일에 대한 근심의 단단한 사슬에 묶여 진정으로 살아보지 못한 현재가 지금 나에게 삶으로의 초대장을 보내고 있다. 유칼립투스 숲길을 걸으면, 비강을 가득 채운 진한 나무 향에, 안개에 갇힌 듯 뿌옇던 머릿속이 명징하게 맑아진다.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에, 과부하된 회로 속 전류처럼 마음을 괴롭히던 번뇌가 촉촉하고 부드러운 흙길 속으로 사라진다. 산골을 따라 흐르는 수정처럼 맑은 시냇물의 노랫소리가 귀를 간지럽히면서 나를 부르면, 잠시 신발을 벗고 그 속에 고단한 발을 담근다. 산 둔덕길을 따라 붉은 개양귀비꽃들이 미풍에 한가로이 흔들리고, 끝없이 펼쳐진 유채꽃밭, 밀밭 위 파아란 하늘을 종달새들 구애 노래가 이리저리 가로지른다.


순례길 일정 막바지쯤 멜리데의 마을 작은 성당에서 한쪽 팔을 십자가 못에서 빼어 아래로 늘어뜨린 예수님상*을 만났다. 그 늘어뜨린 오른손 아래에 내 이마를 갖다 대며 나의 죄를 고해했다. 햇살과 바람과 꽃과 구름을 즐기지 못하며 살아왔던 죄인을 가엾이 여기소서. 인생의 가치는 목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정에 있다는 것을 몰랐던 죄를 용서하소서. 삶을 살지 않고, 살아내려 했던 이 죄인을 용서하소서.







*멜리데의 한쪽 팔을 늘어뜨린 예수상 :

죄를 짓고 사함 받기를 반복하는 고해성사자를 괘씸히 여긴 사제가 죄를 사해주지 못하겠다고 하자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이 한쪽 팔을 십자가 못에서 빼더니 그 죄인의 이마에 직접 십자를 그으며 죄를 사해주었다는 유래가 있는 예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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