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이상하리만치 마음을 서늘하게 가라앉히는 것이었다
작년부터 아프기 시작한 무릎은 결국 연골이 반쯤 끊어져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회복하기 어려운 부위이기에 수술도 불가하다는 것이다. 즐겨하던 요가 수련도 무릎 통증으로 더 이상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상태가 악화되지 않도록 그저 조심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의사의 말이었다. 그런데 청개구리 병이 도진 건지, 오히려 이 진단이 내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어 버렸다. 지금 하지 않으면 끝내 이루지 못할 수많은 바람들. 떠오른 것이 알프스 돌로미테 트레킹이었다. 어차피 부서질 무릎이라면 그곳에서 부서진 들 어떠랴. 몹시도 객기 어린 오기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일 년 전부터 예약해야만 겨우 잡을 수 있는 십여 곳 산장의 침대를 하나하나 예약하면서 트레킹 일정을 주도면밀하게 짜나갔다. 집 가까이 있는 산을 오르기는커녕, 동네 편의점에 걸어가기조차 주저하는 나태하고 무기력한 영혼의 소유자인 내게, 그리도 무모하고 도전적인 용기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드디어 올해 여름 남편과 나는 12일, 150km 여정으로 돌로미테 알타비아 1코스의 트레킹을 시작했다.
8월 초순이라지만 알프스 지역 기온이 예상보다 많이 높았다. 건조한 대기에 내리꽂는 듯한 강렬한 태양은 산행 첫날부터 우리를 지치게 했다. 수만 년 동안 바위산에서 부서져 내린 백암석 돌무더기들은 한 걸음 한 걸음을 쉽게 내어주지 않았다. 쉴 만한 그늘을 만들어 줄 나무 하나 없는 고산, 등에는 내 체중의 오분의 일은 됨직한 배낭을 짊어지고 오르는 길은 고행과 다를 바 없었다. 첫날 오전에 우리는 이미 1000m의 고도를 올려 한 산봉우리의 정상에 있었다. 천 길 만 길 낭떠러지를 한쪽 편에 낀 채 오르고 내리며, 크고 작은 산봉우리를 두세 개 넘어서야 그날 숙소인 산장에 도착했다.
내일 코스는 오늘보다 좀 쉬우려나 하는 바람을 비웃듯 날이 갈수록 험난해지는 산길. 하지만 소염진통제로 아픈 무릎을 달래며 오르는 봉우리 정상에서는 사진으로는 가히 담을 수 없는 알프스의 아찔한 절경이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그 위용으로 망막을 압도한다. 날카로운 정으로 깨뜨려 깎아 뼈대를 드러낸 듯한 하얀 암벽질의 산군이 무심한 표정으로 펼쳐져 있고, 내 발 저 아래 치 산봉우리들을 감싸 안고 있는 하얀 구름들은 미동도 않은 채 베일처럼 드리워져 있다. 빙하 호수를 거꾸로 뒤집어 놓은 듯,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파란 하늘과 그 하늘을 물 안에 가두고 있는 듯한 빙하 호수가 서로를 마주 보며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다. 한낱 인간사 따위에는 무심한 거대 자연과 그 극치의 아름다움 앞에서 경외심에 숨이 멎는다. 그저 입에서는 감탄인지, 탄식인지, 알 수 없는 쇳소리만 새어 나올 뿐이다.
산행 초보자 아니, 산행 무지자로서 겁도 없이 뛰어든 터무니없는 이 여정을 가까스로 속행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절박함이었다. 인터넷 연결도 전화 연결도 기대할 수 없는 험준한 산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여정을 따라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 밖에 달리 없었다. 당장 이 산에서 조난을 당해도 우리를 구해 줄 이도 없고 구해 달라는 연락을 할 방도도 없는 것이었다. 처음 경험하는 육체적 고난과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위험 속에서도, 우리의 얼을 빼놓는 자연의 풍광에 미혹되어, 약에 취한 사람처럼 귀신 들린 사람처럼 힘든 줄도 모르고 떠밀리듯, 결국 줄곧 미리 걱정하던 마지막 날의 코스에 접어들게 된 것이었다. 새벽 5시 반부터 오르기 시작해서 오후 3시까지 쉬지 않고 이어진 오르막 코스로 고도를 1200m 올렸을 때 마주한, 이 공포스런 광경에 남편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거울로 볼 수 있었다면 내 얼굴도 다르지 않았으리라.
The knife edge ridge!
우리는 말 그대로 칼날처럼 생긴 해발 2400여 미터 산 능선 위에 앉아 있다. 망연자실한 채로. 앉아 있는 이유는 쉬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댈 곳도 없는 칼날 같은 산등성이에 서 있을 만한 자리가 없어서이다. 왼쪽은 어질어질 깎아지르는 절벽이요, 오른쪽은 자칫 내려다보다가는 공포심에 정신줄을 놓고 무릎 힘이 빠져 스스로 떨어질 형국이다. 부슬부슬 부서지는 삐죽삐죽한 백암석과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능선에서, 위협적으로 펼쳐진 눈앞 풍경에, 순간적인 공황 상태에 빠졌다. 깎아지르듯 가파르게 올라온 길을 다시 내려갈 수도, 서 있기조차 어려운 칼날 같은 능선을 따라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다. 도저히 사람이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이 코스를 따라 산 정상을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 믿을 수 없었다. 그런데 때마침 비를 머금은 검은 구름이 우리가 앉아 있는 능선 위로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똑 똑 빗방울 몇 개가 느껴진다. 높은 산에서 비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위험을 초래하는 지를 경험하게 해 준 몇 년 전의 피레네 트레킹이 떠올랐다.
가끔씩이라도 산에서 마주치는 등산객이 있을까 싶어 눈을 크게 뜨고 둘러보아도 그 큰 산에 개미만 한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아, 여기서 무슨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더라도 아무도 우리를 찾을 수 없겠구나 싶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결국 나의 객기와 무지가 이 멀고 낯선 땅에서 오늘 우리를 죽게 만드는구나 하는 생각까지 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이상하리만치 마음을 서늘하게 가라앉히는 것이었다. 비록 죽을지언정 이 거대한 자연 속에서 마지막을 맞는다면 더 나쁠 것도 없으리라는 생각의 비약에 이르렀을 때, 머리 위를 맴돌던 검은 비구름이 바람에 조금씩 흩어져 사라지는 것이었다.
자기 자신은 그렇다 치더라도, 아내인 나를 위험에서 구할 방법을 찾을 수 없어 한없이 겁먹고 창백해진 남편은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제까지 그렇게 걸어왔듯이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엉거주춤 서서 등산 스틱을 접어 가방에 쑤셔 넣고 우리는 네발로 기어가듯 칼날 능선을 타고야 말았다. 주문을 왼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안 된다. 뒤를 돌아봐서도 안 된다. 그저 내 앞 한 걸음에만 눈을 두어야 한다. 부슬부슬 부서지는 암벽을 손으로 잡고 확인하며 한 발 한 발 올라간다.
마지막 발을 내디뎌 마침내 칼날 능선을 벗어났다. 공포심에 후들거리는 몸을 서로 얼싸안았다. 순간 부끄럽게도 눈물이 핑 도는 것이었다. 두 손을 마주 잡고 이 칼날 능선 끝 정상에서 바라보는 알프스 산군 풍광이 더 이상 우리 가슴에 차오르는 벅찬 감정보다 장엄하지 않았다. 죽음까지 생각한 절체절명의 짧은 순간, 뇌리를 스쳤던 내 살아온 인생의 파노라마가 이 장엄한 거대 자연 속에서, 초파리의 며칠간의 생과 다를 것이 무엇이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순간 한 순간 최선을 다해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의 인생이 영웅담의 서사시 못지않으리라. 북받치는 느꺼움을 삼키고 다시 신발끈을 조인다. 이 여정의 마지막 산장을 향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