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섷잠몽 May 31. 2022

한 명의 독자라도 있어서

 글쓰기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 글쓰기는 야옹이만큼 까탈스럽지만 추억할만한 이야기 하나 정도는 있습니다.


 군인 때였죠. 지루하겠지만 잠깐 군대 얘기를 해볼게요. (이 이야기를 하려면 설명이 필요합니다) 군대엔 여러 가지 훈련이 있어요. 그 가운데 굵직한 건 두 종류죠. 전면전과 국지 도발 훈련. 저는 당시에 국지 도발 훈련 중이었습니다. 소규모의 북한군이 침투했을 때 그걸 막는 게 저의 역할이었어요.

 다들 이 훈련이 예고되면 욕부터 해요. 지독했죠. 상상해봅시다. 한국의 산지 비율이 65.2%, 서울 위쪽 옆쪽으로 다 산지죠. 저는 강원도에 근무해서 적을 상대하려면 반드시 산을 올라야 했어요. 하루 종일 산만 타다 보면 욕이 나오죠.

 다행히도 이 훈련이 나쁘게만 굴진 않았어요. 적이 침투했을 때 모든 군인이 우르르 쫓는 건 비효율적이니까요. 그래서 구역을 나눠서 진지를 지키며 대기합니다. 적이 가까워지면 출동할 수 있도록.

 육공이란 군용 차량이 있어요. 지붕은 뚫려있고 대략 20명 정도의 인원을 실어 나르죠. 저는 소대원들과 육공에 탑승한 채 대기 중이었어요. 군인들이 어디서 대기한다 그러면 담배나 피면서 시시덕거릴 것 같지만 당시 기억으론 좀 살벌했어요. 저는 일병이었고 제가 근무했던 곳은 나름 군기가 잘 잡혔죠. 그래서 훈련 중에 떠들면 선임들이 가만두지 않았어요. 상당히 무서웠죠.


 사실 저는 이 대기 시간이 즐거웠습니다. 이상하게 제가 글을 쓰는 건 뭐라 하지 않았죠. 혼자 뭘 자꾸 쓰는데 다들 관심이 없어요.

 저는 군복 건빵 주머니에 항상 수첩을 가지고 다녔어요. 양지사에서 나오는 PD수첩이었죠. 스프링엔 파커 볼펜을 보관했습니다.

 언제나 글을 썼습니다. 훈련에서든 산에서든 진지 안에서든. 틈만 나면 썼죠. 잠든 훈련병을 보며 불침번의 밤에 대해 썼고, 인제의 산과 언덕을 보며 저 푸른 초원 위에는 무엇을 표현하는지 쓰기도 했죠. 첫사랑, 이별, 만남, 삶. 군대에 속박당해서 생각이 많았습니다. 당시 꽤 서정적인 글들을 많이 썼어요. 20대 초반에만 쓸 수 있는 그런 글이었죠.




 그날에도 저는 육공에 대기한 채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햇빛이 그늘에 걸려 말랑하고 바람은 시원했죠. 어떤 글을 썼는지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알베르 카뮈나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제 생각을 적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  .”


 대기가 길어질 무렵 옆에 있던 선임이 물었습니다. 경상도에서 올라와 사투리로 물었죠.

 처음으로 제 글쓰기에 관심을 가져준 이였어요. 하지만 달갑지 않았습니다. 당시엔 ‘독자’가 어색하고 불편한 시기였습니다. 독자를 만나본 적은 없었고, 그래서 독자를 만나기가 쑥스러웠죠. 미숙한 실력이라 제 글에 자신이 없었던 것도 이유였습니다.

 이 선임은 순박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편견이 있었죠. 이런 사람은 소설이든 수필이든 글에 대해 무지하다. 그래서 그냥 얼버부리며 ‘뭐 좀 써요.’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했어요.


 “무슨 글 쓰는데.”


 그런데 다시 묻는 겁니다. 아 부담스러웠죠. 하지만 어쩌겠습니다. 선임인데 두 번씩이나 물으니 보여줘야죠. 군대에서 대답하는 자만이 있을진저, 침묵하는 자는 없습니다.

 수필, 철학적인 글, 소설을 쓴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전역하면 먹고 싶은 음식, 하고 싶은 일을 적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어쨌든 그 선임이 다음에 한 말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봐도 되나?”


 봐도 되나? 봐도 되나라니! 지금 생각하면 고마운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죠.


 ‘흥, 네가 봐서 뭘 알겠어.’


 단순한 호기심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호기심으로 접근하기엔 제 글은 좀 난해했거든요. 주기 싫었습니다. 그래도 수첩을 건넬 수밖에 없었죠. 군대에는 요구하는 자와 들어주는 자만이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갑니다. 꽤 초조하죠. 처음엔 보여준 게 잘한 짓인지 후회했습니다. 어떤 말이 돌아올까. 이게 글이냐. 그래도 선임이니 노골적이기보단 ‘잘 썼군’ 정도로 넘어갈 줄 알았어요.


 “와 놀랐다.”


 음··· 놀랐다고?


 “이게 네가 쓴 게 맞지?”


 사투리였죠. 이 반응은 뭐죠. 놀랐다고? 놀랐다고! 그 선임은 진심이었습니다.

 네 맞아요. 이 사람이 제 모든 글의 첫 독자입니다.

 처음 받는 인정이었어요. 사뭇 진지한. 대화는 계속됐고 진지해졌죠. 그 선임은 제 글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어냈고, 어딘지 고전 소설과 닮아있는 수많은 끄적임을 이해했어요. 짧게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 선임의 공력을 알 수 있었죠.

 그 선임은 미술을 전공했어요. 모든 예술이 비슷하진 않지만 통하는 면이 있죠. 우리는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고전 소설을 두고 얘기도 나눴죠. 저는 고전 소설에서 느껴지는 투박함과 예측하기 어려운 전개, 묵직한 주제의식을 좋아하는데 선임도 그랬습니다. 호밀밭 파수꾼으로 대화가 이어졌을 때 선임은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의 내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좋았다’고 말했고 저는 ‘중2병 걸린 질풍노도의 소년이 철학자가 되었다.’라고 말했죠. 선임이 웃더군요.

 그 대화의 끝은 최고참에게 혼나는 걸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즐거운 나머지 목소리가 높아졌거든요.



 글쓰기에 대해 물으셨던가요? 글쓰기를 떠올리면 독자를 생각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내 글을 읽어줄까. 또 좋아할까. 이런 생각을 하면 불안해집니다. 사실 불안하기 때문에 묻는 질문이죠.

 그럴 때면 단 한 명의 독자만을 생각해봅니다. 당시를 떠올리면서. 단 한 명이라도 있어서 즐거운 게 글쓰기다. 이렇게 되뇌어봅니다.

 ‘당신이라도 읽어줘서 글을 쓸 수 있는 거야.’ 이런 생각을 하면서 글을 씁니다. 그러면 ‘그 한 명조차 안 읽어주면 어쩔 건데.’ 그런 몹쓸 불안이 찾아오죠. 다행히 단 한 명의 독자조차 사라지는 일은 아직 없네요.

 불안해하지 맙시다. 어떤 글도 봐줄 만은 할 테니.


 *바로 끝내면 조금은 아쉽잖아 - 블랙윙 연필은 한글 쓰기엔 좀 불편하군요. 그래도 허영심에 쓰고 있습니다. 2800원짜리 연필이라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