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부모님은 문구 도매업을 했습니다. 수원에는 팔부자거리라고 있어요. 문구거리라고도 불리죠. 문구 완구 식품을 유통하는 일종의 단지였어요. 맞벌이셨기 때문에 어린 저는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그 시간 중에 제육볶음이 기억 한 켠에 머물고 있죠.
저는 고기 중에 돼지고기를 좋아해요. 그 중 삼겹살을 제일 좋아하죠. 그 식당 메뉴 중 제육볶음은 피할 수 없는 유혹이었습니다.
매일 먹고 싶었어요. 하지만 어머니가 말리셨죠. 그때는 살이 좀 쪘거든요. 식당에 가기 전 어머니의 전화가 먼저 도착했어요.
"걔 제육볶음 주지 마세요."
저는 뭔가 실망하고 분해서 눈물을 질질 짰어요.
약간 나쁜 마음인데 ‘엄마 나이 들면 내가 제육볶음 안 해줄 거야’ 그랬던 거 같네요(물론 저는 자라서 효자가 되었답니다)
그때마다 식당 아줌마는 제게 말했죠. 호탕하게 웃으면서.
"야 너 어떻게 하냐. 엄마가 제육은 안된대. 딴 거 먹어. 맛있게 해줄게."
그때는 말을 잘 듣는 아이여서 결국 다른 음식을 먹었죠. 비빔밥 오므라이스 된장찌개를 돌려먹었어요. 10번 중 1번 정도 제육볶음을 먹었죠.
그게 한이 됐는지 성인이 되어 한 달 넘게 그 집 제육볶음만 먹은 적이 있어요. 아이의 한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식당 아줌마에겐 가끔 인사를 드리러 가요. 가게가 재개발로 이사했거든요. 저는 엄마 엄마, 하고 불러요. 어렸을 때 아줌마가 '너 내 아들이야. 엄마라고 불러봐.' 하시며 놀렸거든요. 그때는 정말 싫었는데 다 크고 나니 이젠 제가 아줌마를 놀리고 있네요.
아줌마와 대화할 때 단골 메뉴는 역시 제육볶음입니다. 그 얘기를 꺼내면 아줌마는 이렇게 웃죠.
"야 진짜 그때 너희 엄마가 제육볶음 주지 말라고 얼마나 전화를 하는지. 가끔 몰래 주기도 했다."
아 이제 안 사실이네요. 제가 먹었던 제육볶음의 일부는 몰래 먹었던 겁니다.
한 날은 제육볶음 일화가 끝날 무렵이었어요. 아줌마가 묻더군요.
"글은 잘 쓰냐."
저는 좀 놀랐어요. 왜냐하면 이렇게 질문하는 분들은 거의 없거든요. 제가 글을 쓴다는 걸 알아도 잘 안 물어요. 그래서 글에 대한 질문은 언제나 고맙죠. 워낙 외로운 일이니까요.
저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일하는 틈틈이 쓰고 있어요."
"글 쓰는 데 집중이 돼?"
"네. 오히려 몸 움직이다 쉴 때 쓰니 더 잘 써져요."
아줌마는 흐뭇해했죠. 처음엔 그 웃음이 이해가 안 됐어요. 하지만 곧 그 의미를 알 수 있었죠.
"나도 그렇게 글을 써봤다. 요리하다가 쉴 때, 배달 갈 때 머리에 생각이 떠오르면 막 수첩에 적었지. 뭉탱이로 모여서 꽤 많았어."
아줌마는 글을 썼던 거예요. 저처럼 글을 업으로 삼은 건 아니지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적은 거죠.
대화가 재밌어지기 시작했어요. 아줌마는 글쓰기를 전문적으로 배우진 않았죠. 그래도 글쓰기의 본질은 알고 계셨죠.
'메모를 통해서 글감을 뽑아내고, 그것들을 짜집기해 글을 쓴다.'
그 말을 들을 때 공력 30년은 되어 보이는 작가를 본 듯했죠. 제육볶음 비법으로 3일간의 숙성을 말씀하시곤 했는데 어딘지 아줌마의 요리와 닮은 면도 있네요.
글쓰기와 삶은 연결된다고 하죠. 30년 넘게 식당을 운영했던 내공이 글쓰기로 옮겨간 게 아닐까요.
아줌마는 만화와 소설을 좋아했다고 해요. 옛날 국어책은 지금보다 컸는데 만화책 숨겨보기 좋다고 했죠.
소설 얘기할 땐 그 독서 내공이 보였어요.
'소설 이야기가 그림처럼 그려졌다.'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계속 흐르다 보면 나만의 결말은 만들곤 했다.'
'그리고 그 결말이 소설과 일치했다.'
소설이 뻔해져서 아줌마는 더 이상 소설을 읽지 않았다고 해요. 가장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멀리하게 되지 않았을까, 그렇게 추측해봐요.
대화가 끝날 무렵 저는 이렇게 말했어요.
"대한민국이 훌륭한 작가 한 명 잃었네요. 그래도 꼭 한 번 다시 써보세요. 보고 싶어요.
아줌마는 이 말을 듣고 쑥스럽게 웃으셨죠. 안타깝게도 그동안 모았던 글들을 버렸다고 해요. 정말 아쉽죠.
아줌마는 유쾌한 분이에요. 육체노동이 대부분인 그곳에서 거친 남자를 상대하면서도 품위와 웃음을 잃지 않으셨죠.
글은 사람을 닮는다 하니 한바탕 웃게 하는 글이 나왔을지도 모르겠네요.
아줌마와 대화를 나누고 이 글을 쓰면서 이런 생각이 들어요. 글쓰기는 대단치 않구나. 평범한 일이구나. 일상이다.
글쓰기는 숭고하다고 생각해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죠. 정말 많이 읽고 쓰고 생각해야 해요. 그런데 돈이 되지 않죠. 돈이 되지 않는 일에 자기 생활을 내던지며 쓰는 분들을 보면 존경스럽기도 해요. 어쩌면 저는 그렇게 존경받길 바라면서 숭고하다는 말을 갖다 붙이는지 몰라요. 나는 특별해. 나는 달라. 나는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야 해.
사실 글쓰기는 단순해요. 메모를 끄적이고 그걸 모아서 이어 붙이고 말이 되게 만들면 글이죠. 물론 이건 글쓰기 방법 중 하나예요. 형식, 방법론부터 주제의식까지 깊게 들어가면 머리 아프죠. 그래도 연필 들고 쓴다는 건, 키보드를 두드린다는 건 매우 단순해요.
아줌마의 글쓰기는 그 일상만큼이나 단순했어요. 식당으로 출근하고 손님을 맞이하고 배달을 나가죠. 그 틈틈이 메모하고 짜집기해 글을 만들어요. 작은 순간과 일상이 모여 삶이 되듯 글도 그렇죠.
이 글을 쓰면서 느끼지만 그 울림은 커요.
'특별하지 않아도 된다. 단순해도 좋다.'
'제육볶음 먹다가 생각나는 글이라면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
돈이 되는 글쓰기는 따로 있어요. 그건 분명 배우고 익혀야죠. 진짜 잘 써야 합니다.
하지만 꼭 잘 쓰지 않아도, 돈이 되지 않아도, 제육볶음 같은 글이라도, 가치가 있겠죠?
제가 아줌마의 글을 읽어보고 싶듯이.
바로 끝내면 아쉽잖아 - 메모는 3년을 숙성해도 괜찮지만 제육볶음은 3일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요. 빨리 먹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