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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섷잠몽 Aug 01. 2022

주제의식과 스토리

(이 매거진에선 소설 쓰기 방법을 얘기해볼까 합니다. 전문가가 쓰는 소설 작법서 같은 내용은 아닙니다. 단지 수련을 계속하면서 제 고민을 적어보는 일기장과 같습니다)


 주제의식과 스토리는 제가 약간 반비례와 같은 관계입니다. 주제 의식에 앞서서 스토리를 설정하면 왠지 주제 의식이 희미해집니다. 소설 쓰면서 즐겁고, 스토리도 괜찮은데 막상 그 스토리 구조 위에 주제의식을 입히려면 안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죠. 반면 주제 의식을 먼저 생각하고 스토리를 쓰면 이땐 또 스토리가 엉성해집니다. 인위적이고 작의적이라고 할까요. 대화에 비유하면 친구와 만나서 나누는 자연스러움은 아닙니다. 그 보단 경찰의 취조를 받는 상황과 같습니다. 저는 잘못한 게 없는데 저를 변호하려는 목적으로 두서없이 말해야 하죠. 


근데 제가 이번에 습작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스토리를 먼저 쓰고 스토리를 쓰는 중간중간 주제 의식을 입히면 되지 않나? 그게 더 현실적이고, 자연스럽지 않나?


생각해보면 우리 삶도 그렇지 않나요? 나는 독립 투사가 되겠어! 나는 뛰어난 과학자가 되겠어!, 라고 미리 정해두고 살기 보단 살다보니까 이렇게 됐어, 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과학자인 최재천 교수를 예로 들어볼까요. 그는 처음엔 문학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가 알아주는 진화생물학자죠. '그래 나는 진화론을 신봉해! 이걸 세상에 널리 알려야겠어.'라는 마음으로 진화생물학자가 된 게 아닙니다.  살아오면서 읽은 책들, 만난 사람들, 경제적 사회적 사건들. 이것들이 겹치면서 우연에 우연을 타고 진화생물학자가 되었죠.


소설이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무언가'를 의식 속에 품고서 그걸 드러내기 위해서 스토리를 쓰면 거기에만 메몰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스토리의 갈래가 더 다양하게 뻗어나가야 함에도 주제의식을 드러낼 장면과 상황만 찾고 있죠. 달달한 음식이 좋아, 라고 해서 올리고당 설탕, 물엿, 과일만 넣어서 음식을 만들 순 없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음식도 똑같습니다. '나는 비빔밥 같은 요리를 만들거야'라는 목적으로 비빔밥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냥 남는 음식 처리하기 어려워서 나온 요리가 비빔밥이죠. 대부분이 사실 우연의 산물입니다.


그렇게 보면 스토리는 우연입니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연결해서 나오는 이야기가 스토리죠. 그 스토리를 끌고 나가다가보면 이런 순간이 찾아옵니다. 이 부분에선 '이런 의미를 드러내면 좋지 않을까.'라고요. 바로 이 지점에서 주제의식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일단 스토리를 써라. 하지만 주제 의식은 염두해둬라. 이야기를 쓰다보면 결국 그 의미를 입힐 옷이 등장한다. 그때를 기다렸다가 망설이지 말고 옷을 입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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