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의 춤-1

by 섷잠몽




아이가 춤을 마치자 불 꺼진 방에 노랫소리만 공허히 남게 됐다. 땀을 닦은 아이는 책상에 있던 물병으로 물을 마셨다. 그리고 기도를 시작했다.


“나중에 이와 같이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아이는 눈을 뜨자 바람을 맞이한 커튼이 펄럭였다. 물병에 든 노란물이 어둡게 반짝였다.



엄마와 아이는 집을 나와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한산한 오전이었다. 벤치에 앉은 여자가 분홍 우산을 들고 있었고 엄마는 하늘을 올려봤다. 형태 없는 회색구름이 하늘을 부유했다. 때마침 바람이 습기를 머금고 불었다. 엄마는 가방을 뒤졌지만 우산은 없었다.


버스가 오지 않자 아이는 조용히 정류장 뒷편으로 갔다. 그곳엔 넓직한 공터가 있었다. 엄마는 아이가 무엇을 위해 그곳에 갔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병에 걸린 뒤로 아이는 춤출만한 공간이 있으면 어김없이 춤을 쳤다. 말려보고 소리도 질러봤지만 소용없었다. 엄마는 주위를 살폈다. 그냥 남편의 차로 가는 것이었는데.


“뭐하는 거야.” 엄마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춤 출 거야.”

“그러니까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왜 춤을 추냐고.”

“추고 싶으니까.”


아이는 멈추지 않았다. 춤이 시작되고 박자를 따라 숨이 오르내렸다. 아이는 가상의 선율에 몸을 실은 상태였다. 이제 누구도 아이를 말릴 수 없었다. 선율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하면 멈추는 일은 오직 본인 몫이었다. 엄마는 언제까지 출 것이냐고 물었다. 버스 올 때까지. 안내전광판에 ‘십오 분 후 도착’이란 글자가 떠올랐다.


엄마는 정류장 창에 기댄채 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 않고 자신의 움직임을 공중에 쏟아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아이의 춤이 그들을 감탄시키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부드럽고 유려한 동작에 매료된 사람들은 어떤 음악에 맞춰 아이가 춤을 추는지 알고 있는 듯 보였다. 사람들의 표정에서 엄마는 언젠가 아이에게 해줬던 조언이 떠올랐다. ‘음악과 춤은 하나야. 음악만 들어도 어떤 춤을 출지 떠올려야 돼. 반대로 사람들이 네 춤을 보면 마치 음악을 듣고 있단 착각을 들게 만들어야 돼.’ 기특하게 여기지는 한편으로 그리움이 고개를 들었다. 엄마를 닮고 싶다며 온순하고 순종적이던 아이. 엄마는 당시의 아이가 무척 보고 싶었다.


원래 진료일은 다음주였다. 남편 친구였던 주치의는 남편을 통해 날짜를 변경하자고 알려왔다. 추가 검사가 있다고. 안 좋은 것 같다고 남편이 말하진 않았지만 엄마는 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병원에서 날짜를 정해주는 일은 드물었다. 무슨 일이냐고 아내는 물었지만 남편은 모른다고 했다. 어차피 묻지도 않았을테지만. 직접 전화해보겠다는 아내에게 남편은 바쁜 사람 방해말라며 핀잔을 줬다.


남편은 몰랐다. 검사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암에 걸렸던 아버지를 지켜보면서 알게 됐다. 검사는 비극이었다. 암에 걸리면 왜 걸렸는지, 피가 나면 왜 나는지, 희귀병에 걸리면 어떤 유전자가 문제인지. 결국 검사를 받는다는 건 병에 걸렸단 사실만 알려줬다.


세 달 전 아이가 소아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됐다. 프라하에서 열리는 현대무용콩쿠르에 출전하기 위해 아이는 막바지 작업 중이었고 그날 완성된 춤을 시연할 예정이었다. 아이의 출전곡은 베니타치오의 ‘라 모아르떼 뻬르 라 뻬르페치오네'였다. 무용수이자 안무가였던 엄마는 작업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시연회에 참석하려고 했다. 하지만 감독으로 있던 발레단에서 사정이 생겨 그럴 수 없었다. 들떠있던 아이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못 온다고? 아이가 물었다. 응 미안. 엄마가 대답했다. 정말 못와? 아이가 두 차례 더 물었다. 엄마가 상황을 설명하자 아이는 더 묻지 않았다. 엄마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준비 잘 했잖아. 엄마 없이도 잘 할 거야. 그치? 아이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서류를 정리하던 엄마는 더이상 아이를 달래지 않았다. 아이가 힘없이 말했다. 응 완벽해.


오후가 되어 황코치에게 전화가 왔다. 그 시간에 올 전화가 아니었다. 그저 시연회가 빨리 끝난 것이라고 엄마는 생각했다.


“선생님 지금 병원이에요.” 황코치가 다급하게 말했다.

“병원이요?”

“네. 빨리 오셔야겠어요.”


황코치는 시연회 전부터 아이가 이상했다고 말했다. 오자마자 구토를 하고 계속 화장실에 갔다고. 그러다 시연이 시작한지 채 얼마 지나지 않아 쓰러졌다고 했다. 황코치는 계속 사과했다. 죄송해요, 선생님. 오늘따라 구토가 잦은 걸 알아챘어야 했는데. 엄마는 이해했다. 대회를 준비하면서 아이가 습관적으로 구토한단 걸 알았다. 엄마와 마찬가지로 황코치 역시 긴장 탓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아이는 진통제와 신경안정제를 맞고 잠들어 있었다. 당시의 담당의사가 찾아와 내시경 결과를 말해줬다. 소아암입니다.


남편이 도착하자마자 했던 말은 ‘그게 말이 되느냐'는 거였다. 의사가 내시경 사진을 보여줘도 남편은 막무가내였다. 동네 종합병원은 이래서 안돼. 무슨 위암이냐고. 그러곤 유명 대학병원에 다니는 친구가 있다며 의사를 한껏 깔봤다. 의사와 간호사는 물론 심기가 불편해진 환자들이 남편을 쬐려봤다. 아내는 입구를 가리켜 손짓했다. 밖으로 나갔던 남편이 돌아왔을 때 분위기는 더 심각해졌다. 주변을 살피고 아내에게 말했다.


“할 말 있으니까 나와봐.”


아내는 거부했지만 남편의 요구는 완강했다. 밖으로 나가자 남편은 언성을 높였다. 친구로부터 모든 사실을 들었다고. 스트레스, 불규칙한 식습관. 어디서 많이 들어봤지 않냐?


“그런 적 없어.”

“없어? 콩쿠르 나간다고 하던 날 너 애한테 뭐라고 했어?”

“뭘?”

“애가 자기 전에 그러더라, 왜 난 남자인 거냐고.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뭐라고 그런 줄 알아? 여자가 되고 싶대. 그러면 춤을 더 잘 출 수 있다고.”

“그런 적 없다니까.”

“없어? 엄마가 그런 걸 바란다고 말하는데 그런 적이 없어? 그게 네 입에서 나올 소리냐?”


순간 엄마는 기억이 났다. 황코치에게 했던 말. 여자였다면 좋았을 거에요. 아이가 듣고 있는 줄 몰랐다. 엄마는 변명하지 않았다.


“애도 원했어.”


아이는 엄마처럼 춤추길 원했다. 부드럽고 아름답게. 살랑이는 듯 힘차고 절도 있으나 물 흐르듯. 커 갈수록 아이는 엄마의 몸을 닮고 싶어했다. 엄마는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남자의 몸을 반증하며 여자의 몸을 가르쳤다. 남자가 가진 큰 근육이 어떻게 부드러움을 방해하는지. 각진 몸의 형태는 얼마나 건조하고 딱딱한지.


“어이가 없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이로 갈아버리고 싶다.”


남편은 응급실로 돌아가다가 다시 아내 앞에 섰다.


“네가 춤 가르친 뒤로 저 녀석 속 쓰려했던 건 아냐? 너 출장 갔을 때 배 만지면서 밥 먹더라.”


아내는 그걸 왜 지금 말하냐고 물었다. 남편은 무시했다.


“네가 애 선생이었지 엄마였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