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일 거란 확신 (독/울고 싶지 않아/지널찾/Second Life)
우리가 정말 언젠가 불행하게도 떨어지게 되면 그땐 어떡하지
물론 그럴 일 없겠지만 -세븐틴 웃음꽃
마음과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 어떤 논리와 수사를 들이밀어도 확신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은 불행한 미래를 걱정한다. 그래도 막연한 불안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붙잡을 수 있는 하나의 실마리가 있다. 바로 행동이다. 행동은 의지와 노력을 물리적으로 확인하고 어렴풋한 실루엣을 그려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연차가 쌓이는 만큼 청량의 대명사 세븐틴의 사운드에도 강렬함이 더해져갔고 조금씩 다양한 변화를 꾀했다. 그중 가장 결이 달랐던 실험인 '독'은 세븐틴 '답지 않은' 시도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고 그들의 태도는 여전히 세븐틴
이다.
보통 독, 악, 어둠 류의 딥한 키워드를 활용할 땐 그에 맞는 이미지를 그려내기 위해 디테일한 감각 중심의 가사를 활용하기 마련이다. 그래야 멋지고 까리뽕삼이니까. 그러나 화려한 이미지 대신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과 감정에 집중하며 써내려간 ‘독’의 가사는 발상부터 이타적인 의지를 담고 있다. 사랑에 딸려온 부정적이고 뒤틀린 마음이 너에게 물들지 않게 하겠다는 의지. 독 자체가 아닌, 독의 전염이 세븐틴의 두려움이다.
바로 턱 밑 닿아 들이쉬는 네 그 숨과 바로 손 끝 닿아 움츠러드는 심장과
독 뱀처럼 다가와 소리 없이 나를 물고 간
깨물고 삼키고 녹이고 뱉고선 다시 날 괴롭히지 -샤이니 Evil
Get out of my mind 못해 감당 나도 내가 겁이 나서
진실이 나를 묶어 놨어 진심도 물들어서 결국 너도 젖어들어 변할까 두려워
겁이 나 깨지 못해 또 거짓말을 해 내 기억마저 물들고 있어
Please baby 넌 내게서 물러서야 해
Someone tell me what should I do -세븐틴 독
샤이니 Evil과 독의 가사를 비교해보면 후자에는 손끝에서 펴져오는 세밀한 감각이나 컨셉츄얼한 아이템이 없다. 대신 감정과 정서가 중심이 되어 머리에서 의미를 퍼트려 나간다. 이들의 초점은 괴로움의 형상보다 행동과 의지에 있다. 상대를 파괴하지 않으려는 몸부림. 우리는 이 움직임에서 이들의 사랑이 진심임을 느끼며 감각어가 자극하는 감각과는 또 다른 감정 그 자체를 읽어낸다.
(다음 앨범 주제가 다시 두려움이라는 소식에 찾아봤다가 대가리를 빡빡 쳤다. I'm not seventeen anymore. 세븐틴은 세븐틴이 아닌 게 가장 두렵다고 한다. 신념이 흔들리는 두려움. 이들은 두려움이 주는 고통엔 관심이 없다. 이들은 분명 다음 앨범에서도 절대 두려움에 매몰되지 않고 미래를 이야기할 것이다.)
사랑해서, 사랑한다는 말이 부족해서, 그 어떤 말을 꺼내봐도
너 하나만 아끼던 날 두고서 어디 간 거니 내가 싫어 어어 져서 멀리 간 거니
널 찾아가야 돼 찾아가야 돼 지금 울면 못 볼지 모르니까 -세븐틴 울고 싶지 않아
'울고 싶지 않아'는 상황에 대한 정보 값이 매우 적다. 사랑하는 사람이 멀리 갔다는 사실 외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우리는 도통 알 수 없다.. 그저 울먹임 속에서 맴돌 뿐이지만 어느 순간 이들이 너를 찾아갈 때, 우리는 해소의 감정을 느낀다. 이들은 절절한 사랑 이야기가 아닌 움직임을 통해 간절함을 증명한다. 불안한 현실이나 감정에 빠져들지 않고 언제나 다시 진심으로 바라는 목표와 행복을 향해 나아가는 세븐틴다운 접근이다. 이들의 달음은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증명해 보이며 함께할 미래에 대한 믿음을 준다. 그래서 이들의 사랑은 간절하고 아플지언정 부정적이거나 비관적이지 않다. 흔들리지 않는 우리라는 근거, 서로 떨어지더라도 우리를 완성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언제나 망설임 없이 '너'를 향해 발걸음을 떼는 이들은 다른 시간 속에서도, 두 번째 삶이 와도, 당신을 찾아갈 것이다.
찾아가면 되지, 조금 멀면 어때
우리 둘이 이어져 있는 선을 따라서 -세븐틴 지금 널 찾아가고 있어
나에게 두 번째 지금과 다른 삶이 와도
딱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건 난 네 옆에 있을 거란 것 -세븐틴 Second Life
세븐틴을 점점 알아가면서 내가 느꼈던 이들의 에너지는 타고난 활동성이 아니라 멈춰있는 장면으로 존재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븐틴은 언제나 움직이고 있다. 연습, 소통, 무대와 다양한 활동. 언제나 서로와 먼 미래를 향한 움직임을 보여주기에 팬들과 멤버들은 함께일 것이라는 확신을 얻는다. 이 세상에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있을까? 행동으로 확신을 주는 이 그룹이 사람들의 눈길을, 아니, 마음을 끄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겉보기엔 직설적이고 감각이 빠진 이들의 가사가 세련되지 않아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음악이 예뻐 보이기 위해 존재하는가? 음악과 자신들의 역할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있는 세븐틴은 음악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을 세련되고 아름답게 디자인해두었다. 이들의 가사는 미술관 벽면을 채운 대형 원화처럼 직접 마주할 때 느껴지고 들여다봐야 몰아치는 음악의 존재 이유, 그 자체이다.
22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