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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의 생각 Jul 11. 2022

세븐틴 가사-2: 난 너라면 다 괜찮으니까

너라는 포지티브와 우리라는 근거 (박수/Left&Right/어쩌나 외)


   여기 무인도에 갑작스럽게 떨어진 사람이 있다. 두렵고 막막할 그 사람에게 우리는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힘내' '괜찮아' '내가 있잖아' '파이팅!'. 이런 한마디로 힘을 얻기에 우리는 너무 철들었다. 고마운 마음과는 별개로 근거 없는 응원은 상황을 바꿀 힘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언어로 힘을 줄 수 있을까?


빡수쿱스
흰 티에 뭐 묻을 때 교통카드 잔고가 없을 때
Yeah, 꼭 이런 날에만 집 가기 전에 비 맞지

어차피 해도 해도 안돼 쟤도 걔도 얘도
안 되면은 아무 말도 되지 않는 주문이라도 -세븐틴 박수


   흔히들 이야기 하는 세븐틴의 밝은 에너지는 단순한 청량함이 아니다. 흰 티에 뭐 묻고, 교통카드 잔고가 없어서 짜증나는데 옆에서 다같이 박수나 치자는 눈치없는 아이들 같지만, 자세히 듣다보면 이들이 상황을 꽤나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어차피 해도해도 안 되니까, 얘도 쟤도 걔도 안되니까 해결의 실마리가 없으니 잊어버리자는 근거있는 외면이다. 이들의 에너지는 낙관이 아닌 긍정이다. 상황에 대한 인정을 바탕에 두고 쌓아올린 힘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들을 따라 신나게 박수칠 수 있다.



10시 10분
9회말 2아웃이어도 두 손엔 배트 들고 있어
뒤로 물러서지 말고 아무 말도 듣지 말고 그냥 내가 끌리는 대로만 하면 돼 -세븐틴 홈런
잊지 말아야 해 출발선에 설 때 두 눈 부릅뜨고 고갤 들어 Come on!
무릎 꿇고서 추진력을 얻고 나면 제일 먼저 baby 앞서 갈래 come on! -세븐틴 Left&Right


  노력의 여지가 있는 상황이라면 이들의 응원은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지금 우리가 물러서지 말아야 할 이유는 두 손에 든 배트이고, 출발선 앞에선 준비된 자세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다짐. 이들은 마주한 어려움을 헤쳐나갈 근거를 일깨워준 뒤, 불안한 마음을 달랜다. 실패하더라도 내일이 있다는 사실까지 꼭 상기시켜주면서. mbti F와 T를 모두 만족시키는 완전한 위로. 그렇게 이들의 말을 따라 눈 앞의 기회에 집중하다보면 우리는 마음의 무게를 덜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상황을 직면하고 최선을 다하는 긍정적인 태도, 두 땅에 발 붙인 채 건네는 웃음은 공기 속에 흩어지지 않고 우리의 마음에 와 박힌다.


나의 밤은 deep deep 켜져 있는 TV 시끄럽지 내 맘처럼
너는 대체 어떠한 이유로 내 맘을 껐다 켰다 네 멋대론지
그게 싫다는 게 아니고 혹시 네가 너무 피곤할까 봐 걱정돼서 그렇지 내맘이 그래 -세븐틴 어쩌나
난 너라면 다 괜찮으니까 나에게로 와 -세븐틴 나에게로 와


    만약 마주한 상황이 사랑이라면?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결국 '너'다. 세븐틴은 나의 밤을 돌아다니며 횡포를 부리는 너에게 싫다는 불평도 투정도 없이 그저 네가 피곤할까봐 걱정인, 너라면 다 괜찮다며 '너'라는 상황을 인정한다. 상대가 만들어내는 변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상대를 긍정하는 순간, 사랑은 우리라는 근거를 갖는다. 매일 나를 부정하려는 것들과 싸우는 우리는 그렇게 세븐틴의 음악 속에서 모든 행동을 이해받고 존재 자체가 인정 받는 경험을 한다.


호랑이
익숙함 속 동반되어가는 지루함으로
점점 우리는 걷고 있는 긴 터널의 끝 부정하려 하진 않지
(중략) 빠른 걸음으로 걷는 너를 맞춰줄 수 없는 내가
너처럼 빨리 걷는다고 뭘 어쩌겠어  -세븐틴 빠른 걸음
또 떠내려가고 다음이 다가와 자연스레 현재에 나를 맞추겠지
어떤 기억 속엔 아픔 또는 후회가 또 다른 곳엔 아쉬움 속에 핑계가
(중략) 모든 게 돌아와 주길 바라는 건 잘못된 일인 걸까
우린 떠내려가 떠내려가 이 시간 속에 떠내려가 -세븐틴 떠내려가


    그러나 사랑에도 고난은 온다. 이별, 원치 않는다면 막고 싶고, 후회된다면 돌리고 싶고, 당연했다면 누군가를 탓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세븐틴은 이별의 아픔을 온전히 느끼면서도 억지를 부리지 않는다. 변해버린 상대의 빠른 걸음을 잡아 돌리려 하지 않고, 돌아와 주길 바라는 마음에는 허락을 구한다. 세븐틴 이별 노래 특유의 담담함은 인정에서 시작된다. 상대를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존재로 보거나 부정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온전히 상대를 긍정하며 존중하는 진정한 사랑을 했기에 서로를 일그러트리지 않고 끝낼 수 있다. 세븐틴은 이별마저 우리라는 근거를 갖고 가상의 이야기 속에서 현실에서조차 찾지 못한 진짜 사랑을 경험하게 한다. 근거가 있는 세븐틴의 사랑은 '소용돌이치는 하루 속에서도 맞잡고 있는 손'처럼 실체있는 힘이 되어준다.



   어쩌면 우리는 무인도보다 막막한 세상에 떨어져있다. 각자의 좁은 자리에서 선뜻 나누어줄 수 있는 물리적인 것은 별로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무한히 있는 언어. 우리는 언어로 다양한 상황과 감정을 꾸려 건넬 수 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또 다른 경험을 하고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세븐틴은 섬세한 단어와 음악으로 우리에게 언제나 응원과 사랑을 보낸다. 근거 있게, 유효하게. 적어도 나의 세상에서 세븐틴의 응원과 사랑은 너무나 유효했다.


혼자가 아니라 우리 우리라서 겁낼 필요 없어 yeh yeh
혼자가 아니라 우리 우리라서 또 걱정 없이 달리지 yeh yeh -세븐틴 Left&Right


22년 4월


https://brunch.co.kr/@eaca218ff84d4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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