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연속, 불안과 걱정 그리고 새로운 시작

10년 치 회고 #20

by 아르베

빗자루질 한 번으로 시작된 이태리행. 그렇게 엉겁결에 스무 살의 나는 이태리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남들이 보기엔 '패션 유학'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이었겠지만, 내 속내는 그리 낭만적이지 않았다. 설렘보다는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이게 맞는 길일까' 하는 복잡한 마음이 더 컸다. 그 무거운 마음을 안고 낯선 땅 이태리에 발을 디뎠다.


도착해서는 살기 위해 해야 하는 당연한 절차들을 밟았다. 체류 허가를 받고, 집을 구하고, 어학원에 등록했다. 다행히 어학원은 꽤 재미있었다. 하지만 교실 밖으로 나오면 모든 게 낯설었다. 언어도, 사람들도, 공기마저도 달랐다. 나는 그들 틈에서 물과 기름처럼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섞이려 노력했지만, 섞이지 않는 이방인. 그게 당시의 내 모습이었다.


적응하려 애쓰던 와중에, 스무 살 한국 남자라면 누구나 마주하게 되는 현실적인 고민이 찾아왔다. 군대였다.


'공부를 마치고 갈까, 아니면 지금 다녀올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어차피 가야 할 길이라면, 매를 먼저 맞고 홀가분하게 다시 시작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군대를 먼저 해결하고 학업을 이어가기로 결론을 내렸다.


역설적이게도 군 입대를 결정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당장 언어를 완벽하게 마스터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자, 비로소 이태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책상 앞에서의 공부보다 몸으로 부딪치는 경험을 택했다. 기차를 타고 여행을 다니고, 그토록 유명하다는 축구 경기도 보러 다녔다. 내가 할 수 있는 문화생활은 다 즐겨보려 했다.


그렇게 그들의 문화를 온몸으로 겪고 나니, 둥둥 떠다니던 내가 조금은 그들의 삶에 스며든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여전히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 같은 존재였을지라도, 적어도 그 물의 온도가 어떤지는 알게 된 셈이다.


약 7개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누군가는 고작 7개월 다녀온 게 무슨 유학이냐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 그 시간은 실패나 도피가 아니었다. 훗날 내가 다시 이태리로 돌아가기 위해 딛고 설 단단한 반석. 스무 살의 7개월은 내게 그런 시간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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