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치 회고 #20-1
이태리에 도착해 가장 먼저 마주한 장벽은 언어였다. 영어와 같은 라틴 알파벳을 쓰기에 어느 정도 익숙하리라 믿었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발음도, 단어의 쓰임도 생경한 그 글자들을 보며 나는 묘하고 복잡한 기분에 휩싸였다. 공항에 내려 숙소로 가는 버스 편을 알아보는 지극히 일상적인 행위조차, 내게는 모든 것이 새로움인 동시에 나를 자꾸만 주눅 들게 만드는 낯선 과제였다.
거주를 위한 서류 작업은 그 어색함을 정점으로 몰아넣었다. 행정 처리가 주로 경찰서에서 진행되었는데, 칙칙하고 엄숙한 건물 분위기에 압도되어 마치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러 잡혀온 것 같은 위축감을 느꼈다. 한국에서 감사하게도 주변의 도움을 받아 관련 매뉴얼을 완벽히 암기해 갔지만, 실전의 언어 앞에서 그 준비들은 무용지물이 되기 일쑤였다. 익숙한 정답이 통하지 않는 공간에서, 나는 철저히 혼자가 된 듯한 어색함을 견뎌야 했다.
가장 적응하기 어색했던 곳은 삶의 밀착된 공간인 마트였다. 요리를 전혀 해본 적 없던 나에게 낯선 식재료들로 가득 찬 이태리의 마트는 대단한 고난이라기보다,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라 뒷걸음질 치게 만드는 생소한 장소였다. 한참을 서성이다 결국 손에 집어 드는 건 소시지, 햄, 버거용 고기처럼 그나마 눈에 익고 만만한 것들뿐이었다. 나의 식탁은 단출해졌고 선택지는 좁아졌지만, 한편으로는 그 신비로운 식재료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묘한 흥미를 느끼곤 했다.
이태리에서의 시작은 나를 자꾸만 작아지게 만들었다. 목표에 대한 중압감이 어깨를 눌렀고, 낯선 환경은 시시때때로 나를 주눅 들게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어색함 속에서도 나만의 흥미로움을 발견하려 애썼다. 억지로라도 시선을 돌려 이곳의 좋은 점들을 찾아보고자 했던 사소한 노력들이, 이방인으로서 느꼈던 위축감을 상쇄하고 나를 버티게 한 힘이 되었다.
당시의 나는 낯선 환경이 주는 어색함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부단히 시선을 돌려야 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묻고 싶다. 당신을 주눅 들게 만드는 낯선 환경이나 높은 목표 앞에서, 혹시 당신은 자신의 위축된 모습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지는 않은가? 가끔은 고개를 돌려 그 어색함 속에 숨겨진 작은 흥미로움을 찾아보는 여유가, 당신을 다시 나아가게 할 진짜 정답이 되어줄지도 모른다.
우선은 이태리 생활의 문을 열며 느꼈던 나의 어색하고 서툴렀던 조각들을 먼저 기록해 본다. 모든 시작이 그렇듯 삐걱거리는 순간들이 있었지만, 이곳에서의 시간이 늘 무겁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제 이 기록의 다음 장에서는 이 낯선 땅에서 나를 진심으로 웃게 했던, 반짝이는 재미와 즐거움의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