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효자이고 싶었던 나

by Ding 맬번니언

나는 효자이고 싶었다. 한국에서 게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나는 끝까지 가족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게이이면서 여자친구를 사귀고 또 여자친구에게 미안해서 나는 늘 고민했다. 그렇게 남을 생각하고 살았다. 한국 식구들의 기대 속에서 나를 숨기며 살았고, 그게 사랑의 또 다른 형태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런데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선택이었다. 그것을 깨닫고 호주로 떠나다.

지금은 호주에 살지만, 마음 한편엔 여전히 ‘효자’로 남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 마음이 결국 지금에 나를 또 괴롭힌다. 그런데 얼마 전, 한 브런치를 읽고 삶의 우선순위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나보다 늘 남의 기대를 앞세워 살았다.


‘좋은 아들’, ‘좋은 아빠’, ‘실망시키지 않는 존재’. 하지만 이제는 순서를 바꿔보려 한다. 누군가의 기대보다, 먼저 나 자신을 돌보는 삶을 살기로 말이다.


결정적으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사업 실패로 부모님을 돕고 싶어서 엄마를 위해 연금보험을 들어드렸다. 그것이 내 방식의 효도였다. 보험을 전부 다 넣고 나면 경제적인 부담을 덜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이제 그 보험금을 받을 나이가 되신 엄마는 그 돈을 스스로의 노후보다 작은누나의 사치와 빚을 막는 데 쓰려하신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딜레마에 빠졌다.
‘이제라도 효자 노릇을 끝내야 할까? 아니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할까?’

사실 나는 그 보험을 통해 엄마가 매달 작은 용돈이라도 받으며 조금은 자식들에게 덜 의존적으로 살기를 바랐다. 나 또한 매달 한국으로 보내는 돈을 줄이고, 그렇게 조금은 여유를 갖길 바랐다. 하지만 인생은 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2018년, 아버지는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 그래서 지금도 매달 병원비를 보낸다. 나는 쓰러진 아버지를 위해, 한 번도 “이제 그만하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누가 시킨 일도, 누가 알아주는 일도 아니지만 그건 내 안의 ‘효자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식으로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선의는 쉽게 왜곡되고, 도움은 때로 부담으로 변한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여전히 효자이고 싶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진짜 효도는 자신을 잃지 않는 데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돈이 효자라는 것을 버릴 생각이다.


누군가의 인정을 얻기 위해 나를 희생하는 건 결국 아무도 구하지 못하는 길이었다. 이제는 나를 먼저 세우고, 그 위에서 진심으로 가족을 돕고 싶다. 효자가 아닌, ‘나로서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그게 지금의 나에게 주어진 새로운 숙제다.


그렇게 엄마에게 추석 선물로 영양제를 보냈다. 몇십 년 만에, 처음으로 용돈이 아닌 선물을 보낸 명절이다. 남들은 “이제는 마음이 더 중요하지 않냐”라고 쉽게 말하지만, 그 말을 믿으려 할수록 속으로는 더 미묘한 죄책감이 고개를 든다. 엄마 사정을 알기 때문이다.


한국집에 대소사가 다가오면 은행 앱을 켜서 송금 버튼을 누르는 게 하나의 의식이었다. ‘그래, 호주에 살지만 나도 자식으로서 할 건 했다.’ 그렇게 숫자 몇 개로 마음의 빚을 덜 어내며 스스로 안도하곤 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나에게 용돈 받는 것이 엄마에게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돈이 곧 책임이었고, 책임이 곧 사랑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고 싶다. 사랑이란, 누군가를 위해 쓰는 시간과 마음의 무게라고 믿는다. 하지만 요즘은 생각이 달라졌다.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기에 결국 우선순위의 문제라는 걸 깨닫고 있다. 누군가의 기대에 맞추느라 정작 나 자신과 내 가족을 뒤로 미루는 일 그건 사랑이 아니라, 자기 소모였다. 나는 이제 효도의 순서를 바꾸기로 했다.

먼저 나 자신, 그리고 내가 만든 가족, 그다음에 부모님으로 이 순서가 이기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지금의 나는 이 순서가 가장 건강하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내가 무너지면 누구도 지킬 수 없으니까.

돈이 다가 아니고 마음이 먼저라는 것 아는데 왜 불효자가 된 기분이 드는 것일까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멜번니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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