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내 핏줄이다. 나는 한국의 부모님을 통해 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행복이는 내가 원해서, 이 험한 세상에 태어난 아이다. 그래서 이 아이를 지키는 일은 단순한 의무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사랑의 결과다.
그런데 요즘 나는 자주 흔들린다. ADHD로 감정 기복이 심한 아이를 다루다 보면 마음이 닳고, 때로는 버겁다. 그럴 때마다 문득 생각한다.
“내 부모도 나를 이렇게 버겁게 느꼈을까?”
어쩌면 그렇다. 그들도 나를 ‘자신이 만든 아이’가 아니라 ‘세상이 맡긴 책임’으로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제는 내가 한국의 부모님을 그렇게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나는 부모님께 효도를 다하면서도 동시에 내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고 싶었다. 책에서 나오는 말처럼 말이다. 그 두 역할 사이에서 점점 깨달았다. 사랑이란 누군가의 기대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우선순위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는 것을.
부모님 시대의 좋은 부모란 아이랑 식구들 배 안 고프게 잘 돌보기만 하면 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요즘시대의 부모는 마치 슈퍼맨, 혹은 슈퍼우먼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슈퍼맨이 아니다.
그저 지극히 평범한 ‘평범 맨’이다. 그래서 모든 걸 완벽하게 해주는 대신, 우선순위를 정해 보기로 했다. 행복이가 ADHD를 가지고 태어난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행복이가 ‘자신의 약점’으로 느끼지 않게 해주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첫 번째 우선순위이다. 그것을 나는 한국의 식구들에게 받지 못했다. 내가 게이로 태어난 것도 비슷한데 말이다. 나는 게이로 태어난 것을 잘못된 것, 창피한 것으로 느끼면 성장했다. 그것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말이다.
그리고 부모라면 아이의 부족한 부분은 꾸짖는 대신, 함께 채워가면 된다. 아이들은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도 행복이가 성장하면서 알았다. 2주간의 방학 동안 피아노를 꾸준히 연습한 행복이는 강습에 돌아가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다. 그리고 행복이는 엄청 좋아했다. 테니스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나 다 아는 노력 하면 실력은 는다. 이 단순한 진리를 아이와 함께 다시 배운다. 그래서 한때는 모든 걸 다 시켜야 한다고 무리하게 아이의 상태를 생각하지 않고 밀어붙이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아이의 삶은 아이의 것이고, 나는 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행복이는 방과 후 친구 집에 놀러 가고, 나는 내 하루를 이어간다. 내가 삶의 우선순위가 있는 것처럼 행복이도 자신의 우선순위가 있는 것이다. 그것을 존중해 주는 것도 부모에 역할이다. 그렇게 행복이는 점점 독립성을 키워갔다.
나는 내 우선순위를 이렇게 정한다. 한국 부모를 위해 희생하는 대신, 현재의 가족을 지키며, 미래의 아이에게 올바른 사랑의 형태를 물려주는 일.
그리고 그 시작은 언제나 ‘나 자신’이다. 내가 무너지면 아무도 지킬 수 없다. 그래서 자식과 나 사이의 우선순위를 정할 때, 나는 주저 없이 ‘나’를 먼저 둔다.
한국 부모님들에게는 불가능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제 나는 안다. 그건 이기심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사랑의 방식이라는 것을. 자신이 무너지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나는 행복이에게 이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먼저 가르치고 싶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기대나 시선에 짓눌려 불필요한 부담을 안고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 역시, 내 아이에게 부담이 되지 않기 위해 나 나름대로의 노후를 준비하고 있다.
그것이 결국, 내가 행복이에게 남길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이 될 테니까.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멜번니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