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할 수 없지만, 무언가 이미 정해져 있는 듯한 날

by Ding 맬번니언

가끔 그런 날이 있다. 설명할 수 없지만, 무언가 이미 정해져 있는 듯한 날 말이다. 오늘이 나에게 그런 날이었다. 어젯밤, 나는 오랜만에 악몽을 꾸었다. 트램을 운전하고 있는데, 잘못된 선로로 들어가 버렸고, 나름 실수를 고쳐 보려다 더 엉뚱한 길로 빠져나가는 꿈이었다. 선로를 이탈한 순간의 공포가 너무 생생해서 잠결에 숨이 턱 막혀 깼다. 트램 운전사가 되고 이런 꿈이 나에게는 악몽이 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그 꿈이 찜찜하게 남아 있었다. 그래서인지 출근해서도 계속 긴장했다. 멜버른의 선로 위에서, 나는 평소보다 두 번, 세 번 더 확인하며 조심조심 트램을 몰았다. 마치 꿈속의 경고를 현실에서 상쇄시키기라도 하듯이 조심 또 조심했다. 하지만 일이 끝나고 회사로 돌아가는 길, 결국 꿈의 그림자가 현실로 떨어졌다. 내 앞길을 한 트램이 막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엔 ‘신호 문제인가?’ 싶었지만, 기다림은 길어졌다. 무려 한 시간을 넘도록 길이 열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유를 들었을 때, 온몸이 서늘해졌다. 앞을 막고 있던 트램이 탈선을 한 것이었다. 꿈에서 내가 겪었던 악몽이, 오늘 현실에서는 다른 운전사에게 일어나 있었다. 그 운전사에게 내 악몽이 현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누군가의 하루가 꿈처럼 뒤틀려 버린 순간… 그 무게가 나에게도 스며들었다. 긴 대기 끝에 사무실로 돌아왔고, 약속했던 희성이를 만나러 시티로 향했다. 아침부터 이어진 긴장감 때문에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만큼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희성이는 중학생 때 가족과 함께 이민을 온 친구다. 지금 35살, 그는 더 나은 삶을 위해 다시 도전하고 있다. 그것은 편하게 살고 싶어 하는 대부분의 호주인들과 다른 선택이다.

물리치료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실습을 하고, 하루하루를 버티며 자신의 또 다른 길을 개척 중이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진심으로 응원했다. 이야기 도중 희성이의 동생은 올해 26살인데 이미 집을 샀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희성이네 부모님은 얼마나 든든할까’ 하는 생각도 스쳤다.

그리고 동시에, 나도 예지몽처럼 미래를 미리 보고 싶었다. 행복이가 저 둘처럼 건강하게 성장하고 스스로의 길을 찾아가며 안정된 삶을 살아갈 거라는, 그런 확실한 미래를 말이다. 꿈처럼 정확히 보이지는 않더라도, 오늘의 예지몽이 남긴 묘한 깨달음이 있었다.


삶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길로 빠져버리기도 하고, 우리가 아닌 누군가에게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누군가의 탈선이 나에게 경고가 되기도 하고, 내가 꾸는 꿈이 현실의 방향을 조심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오늘 나는 꿈 덕분에 더 조심했고, 누군가는 그 덕분에 나 대신 악몽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예지몽은 미래를 맞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하루를 조금 더 바르게 살아가게 만드는 기능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희성이와 늦은 점심을 먹으며 나는 속으로 조용히 바랐다. 내 아들도 언젠가 자기 길을 찾아 나서며, 오늘 내가 느꼈던 이런 무서움이나 흔들림을 단단히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그리고 언젠가, 꿈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행복이가 건강하게 자라는 미래를 선명하게 보고 싶다는 바람이 마음 밑바닥에서 잔잔히 올라왔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멜번니언이 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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