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부자가 아니다. 화려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니고 통장에 돈이 많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하고 싶은 것, 경험하고 싶은 것 대부분을 해낼 수 있을 만큼은 가진 삶을 누리고 있다. 그리고 그 정도의 여유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나는 아이를 키우며 더 깊이 깨닫고 있다.
행복이가 우연히 참가한 수영 대회에서 좋은 반응을 들었을 때, 나는 망설임 없이 5번의 개인 수영 강습을 신청했다. 다음 주 학교에서 열리는 5·6학년 수영 카니발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정이었지만, 오히려 절묘한 타이밍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강사에게 부탁했다.
“대회에서 조금이라도 더 빨라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출발 자세부터 물속에서 가속하는 팁, 자유형에서 손 모양까지 행복이는 하루아침에 천재가 되진 않겠지만, ‘준비된 아이’가 될 수는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문득 오래 묵혀둔 감정 하나가 조용히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도와줄 수 있는 건, 부모가 해줄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 순간, 아주 어린 시절의 나와 마주했다.
나는 어릴 때 예술에 소질이 있었다. 그림도 잘 그렸고, 노래도 좋아했다. 누군가 옆에서 조금만 잡아주었다면, 조금만 밀어주었다면, 내가 가진 재능은 어딘가에서 더 자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 집엔 그런 여력이 없었다.
학원비는 꿈처럼 느껴졌고, 개인 레슨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사치였다.
어떤 재능이 있어도 ‘기회’가 없으면 그대로 사라진다는 사실을 나는 너무 일찍 배웠다. 그래서 나는 늘 ‘완성되지 못한 가능성’으로 남아 있었다.
행복이가 피아노를 하기 싫어해도, 기타를 배우고 싶다고 해도, 테니스를 하고 싶다고 해도 나는 가능하면 기회를 열어주고 싶다. 왜냐하면 내 경험으로 해보지 않으면 모르기 때문이다. 기회가 없어서 못하는 것과, 해보고도 안 맞아서 그만두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의 나는 해보지도 못한 채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나 스스로 능력을 자기비하 했다. 하지만 행복이는 어떤 것이든 ‘해본 경험’을 가진 아이로 자랐으면 한다. 물론 우리가 아주 부자는 아니지만,
아이에게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내 삶의 목표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가장 감사하는 현재의 삶이다.
수영 카니발에서 상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테니스에서 1등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부모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결과가 아니라 아이가 성장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다.
행복이가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순간, 그 순간마다 아이는 성장하고, 스스로를 믿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나는 그때마다 ‘아빠’라는 역할을 조금 더 배워간다.
나는 더 큰 욕심이 없다. 죽어라 돈을 모아 부자가 될 생각도 없다. 다만 아이가 흔들리는 순간,
“아빠가 여기 있어”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아이가 어떤 재능을 갖든, 무엇을 꿈꾸든, 그 꿈을 지켜볼 수 있는 정도의 여유와 마음을 가진 아빠로 살고 싶다. 가난 때문에 내 재능이 자라지 못했던 과거와 달리, 행복이의 재능은 최소한 ‘기회조차 갖지 못해 사라지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그것이 내가 살아온 길보다, 행복이가 걸어갈 길이 조금 더 따뜻하고 넓기를 바라는 한 아버지의 마음이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멜번니언이 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