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표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에 대하여

by Ding 맬번니언

어쩌면 나는…
행복이를 위해 걱정하는 척하면서도,
실은 내가 믿고 싶은 것만 믿어온 건 아닐까?


오늘은 행복이의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었다. 평소처럼 큰 기대 없이 학교 웹을 열었는데, 그 속에서 익숙함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영어와 산수를 제외한 모든 과목은 '평균'이라는 단어 아래 고르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영어와 산수는 늘 그렇듯 똑같았다. 일 년 반 뒤처져 있다는 평가다.

한순간 마음속에서 작은 질문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내가 그렇게 열심히 도와주는데, 왜 이 두 과목만은 늘 제자리일까?’

나는 숙제를 붙잡고 씨름하던 날들을 떠올렸다. 느릿느릿 이해해 가는 아이에게 다시 천천히 설명해 주던 순간들, 수학 문제를 풀 때 작은 숫자 하나에도 집중력이 흐트러져 금방 다른 곳으로 마음이 향해버리던 모습까지.
하지만 아이가 노력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정말 열심히, 자신만큼의 속도로 최선을 다한 아이였다. 그리고 많이 늘었다. 그러나 성적표는 그 사실을 담아주지 않았다. 성적표는 그저 ‘뒤처짐’이라는 단어로 아이를 설명했다.

우리는 3학년 말에 학교에서 제안하는 정부 지원에 동의했다. 그렇게 행복이는 정부에서 지원을 받고 있다. 나는 처음에 그것을 단순히 ‘도움’이라고 여겼다. 사교육비 없이도 필요한 지점을 보완해 줄 수 있고, 아이에게 맞춤형 지도를 받을 기회가 생긴다는 점에서 감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다른 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부 지원은 ‘공부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에게 제공된다. 그리고 그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성적이 일정 수준 이하로 유지되어야 한다. 평균밑으로 말이다. 이 사실이 나를 멈칫하게 했다.

행복이가 4학년 때부터 지원을 받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행복이 성적표는 놀라울 정도로 변함이 없었다. 문제는 아이가 성장하고 있음에도 점수는 늘 제자리에 머무른다는 것이다. 단 나플랜(NAPLAN) 테스트에서 평균 점수를 받았다. 그런데 학교 성적표는 일 년 반 뒤처짐을 반복해서 적여 있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정부 지원이 아이를 도와주는 것일까, 아니면 아이의 성장을 보이지 않게 묶어두는 것일까?’
‘나는 지금 무엇을 믿어야 할까?’


행복이는 단순히 ‘평균보다 뒤처진 아이’가 아니다. 올해 그는 테니스를 통해 배움을 경험했고, 수영에서는 학교 대표로 뽑힐지도 모르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태권도에서는 몸짓이 서툴러도 꾸준히 단증 검사를 통과했고, 친구에게서 사탕을 잘못 사 온 날에도 스스로 상황을 정리하는 법을 배웠다. 이런 성장들은 성적표 어디에도 적히지 않는다. 성적표만 보면 그냥 부족한 아이로만 보인다.


나는 아직도 지원 제도의 명확한 해답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 지원은 행복이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며, 아이는 그 도움을 충분히 활용할 권리가 있다.


문제는 지원이 아이의 성장을 숫자로만 평가하고 그 숫자가 계속 ‘낮아야’ 한다는 모순을 동시에 요구한다는 점이다. 그 모순 속에서 아이의 실제 능력이 흐려지고, 성적표는 아이의 전부처럼 보이게 된다. 나는 오늘 성적표를 보며 결심했다. 행복이의 성장을 성적표의 문장이나 숫자에만 의존하지 않겠다고.





그리고 나는 다시 나플란(NAPLAN) 결과지를 꺼내어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한 줄 한 줄, 숫자와 그래프를 따라가며 아이의 위치를 다시 확인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아니 어쩌면 당연하게도 아이의 학교 성적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달라지길 바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기대하지 않는 척하면서도, 어딘가에서 ‘이번에는 조금은 나아졌겠지’ 하는 마음을 놓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숫자로, 문장으로, 냉정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어쩌면 나는… 행복이를 위해 걱정하는 척하면서도, 실은 내가 믿고 싶은 것만 믿어온 건 아닐까?

“아이가 ADHD 때문이지, 배우는 속도가 느려서 그렇지, 부족해서가 아니다.”


내가 아무리 도와주어도, 아이가 아무리 노력해도, 표면적으로 보이는 점수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데는 늘 시간이 걸린다. 나는 탓하고 싶은 누군가가 필요했는지 모른다.아이의 속도는 숫자로 보이는 속도와 다를 수 있고, 성장은 기록보다 훨씬 깊은 곳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성적표 한 장 앞에서는 마음이 흔들리곤 한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나는 조용히 성적표를 내려놓으며 스스로에게 다시 말했다.

“괜찮다. 변하지 않는 숫자 사이에서도, 보이지 않는 성장들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 성장을 본 사람이 바로 아빠인 나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멜번니언이 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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