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표를 받은 이후부터 머릿속이 멈추질 않았다.

by Ding 맬번니언

나는 어제 한숨도 자지 못했다. 날씨가 유난히 더워서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아들 걱정 때문이었다. 성적표를 받은 이후부터 머릿속이 멈추질 않았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결국 세컨데리 스쿨(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함께 다니게 될 학교)을 본격적으로 고민하는 단계까지 와 있었다.

행복이의 5학년 성적표를 다시 펼쳐보면, 현실은 냉정하다. 영어와 산수만 놓고 보면 ‘최악’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 그 두 과목만 본다면, 어느 사립학교도 굳이 행복이를 선택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 사실이 밤새 나를 붙잡았다. 현실은 냉혹하다.


“이 아이를 어디로 보내야 할까?”
“아니, 비싼 학교에 보내긴 해야 하는 걸까?”


질문은 점점 더 깊어졌다. 그런데 성적표를 몇 번이고 다시 들여다보던 중, 의외의 지점에서 숨이 조금 트였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행복이는 음악과 예술에서 분명한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1학년 때 피아노를 배우며 쌓은 경험 덕분에 음악 과목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았고, 2학년 때는 체육과 그림으로 대회에 나가 우승 상장까지 받은 기록이 있었다. 그 상장들은 그동안 한쪽 서랍에 고이 넣어둔 채, ‘추억’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 종이들이, 그동안 숫자에 눌려 있던 아이의 다른 얼굴을 조용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않았던 이름 하나가 입에 올랐다.
St Michael’s Grammar이다. 우리 집에서 조금 먼, Windsor Train Station 근처에 있는 사립학교다.
이 학교는 학업 성적보다는 음악과 미술, 예술적 감수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곳으로 알려진 학교였다.


St Michael’s는 흔히 말하는 “입시 최상위권 명문 사립”보다는 예술·음악·체육·웰빙을 중시하는 균형형 학교로 평가됩니다.

학업 성취도도 중요하게 보지만

아이의 개성, 창의성, 감정·사회적 성장을 매우 중시

비교적 경쟁 압박이 덜한 분위기

“공부만 잘하는 아이”보다 자기표현이 있는 아이에게 잘 맞는 학교



멜버른 Secondary School 진학 비율

국립학교 (Public / Government) 약 75–80% 대부분 학생이 이 경로로 진학

사립학교 (Private / Independent) 약 20–25% 선택적으로 진학

기타 (가톨릭/홈스쿨링 등) 약 5–10%

즉, 멜버른 학생 4명 중 약 3명은 국립학교로 진학하고, 1명 정도는 사립학교 또는 기타 선택을 한다는 체감 분포입니다.



그 학교를 떠올리는 순간, 마음 한편에서 묘한 감정이 일었다. 희망이라기엔 조심스럽고, 포기라기엔 아직 너무 이른 그 중간 어디쯤의 감정이다. 나는 그제야 인정하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아이를 ‘부족한 기준’으로만 바라보고 있었던 건 아닐까. 영어와 수학이라는 좁은 문으로만 아이를 세상에 내보내려 했던 건 아닐까.


행복이는 숫자에는 약하지만, 소리와 색, 몸으로 표현하는 데에는 분명한 언어를 가진 아이다. 그리고 그 언어를 알아보는 공간도, 어쩌면 이 세상 어딘가에는 존재할지 모른다.

잠들지 못한 밤은 여전히 길었지만, 적어도 그 밤은 절망만으로 채워지지는 않았다. 나는 아직 확신하지 못한다. 그 학교가 맞는 선택인지, 사립학교라는 길이 옳은지. 아니면 대부분 아이들처럼 동네 국립 학교에 가야 할지 일 년 안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행복이를 ‘못하는 아이’로만 정의하는 순간, 나는 이미 아이의 가능성 하나를 지워버리고 있다는 것이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또 다른 질문을 안고 하루를 시작한다. 이 아이를 어디에 맞추려 할 것인가가 아니라, 이 아이가 숨 쉬며 자랄 수 있는 공간은 어디인가를 묻는 질문을.


아마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 내가 아버지로서 앞으로 가야 할 길일 것이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멜번니언이 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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