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머무르는 시간

by Ding 맬번니언

오늘은 시작부터 정신없는 일요일이었다. 아침은 스티븐 아버지의 병문안으로 시작됐다. 스티븐 어머니는 얼마 전 다리 수술을 받아 오래 걷지 못하는 상태라, 나와 함께 휠체어를 빌리러 갔고 스티븐은 주차를 하러 갔다. 병원 직원이 누구를 만나러 왔느냐고 물었을 때, 어머니는 “아들을 보러 왔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런 스티븐 어머니 옆에서 “남편을 보러 왔다”라고 정정했다. 스티븐 어머니의 기억은 요즘 자주 왔다 갔다 한다. 그 짧은 순간이 마음을 조금 무겁게 했다. 나이가 들어가면 도움이 필요하는 것 같다.


스티븐 아버지를 만나 우리는 한 시간 정도 함께 머물렀다. 그 이상은 함께할 수 없었다. 행복이의 수영 강습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행복이에게 몇 번이나 전화를 걸었다. 미리 준비하라고, 늦지 않게 움직이게 하려고. 하지만 아무리 전화해도 받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행복이는 말했다.

“오늘 수영 안 갈래.”

이럴 때는 말이 길어질수록 시간이 흘러간다. 설명도, 설득도 필요 없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아이의 손을 잡고 차로 데려갔다. 그렇게 문제는 해결되었고, 아이는 결국 수영장으로 향했다. 수영장에 아이를 내려주고 돌아오는 길에, 병문안에서 느꼈던 감정이 다시 떠올랐다. 문득 한국에 있는 내 아버지가 생각났다.


한국에서의 병문안은 유난히 짧다. 10분, 솔직히 말하면 5분도 채 되지 않는다. 병실 문을 열고 안부를 묻고, 과일 바구니를 내려놓고, “몸조리 잘하세요”라는 말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처음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달랐다. 우리 가족은 한 시간, 때로는 그 이상도 병실에 머물렀다. 물을 떠주고, 침대를 정리하고, 목욕도 우리 가족들이 직접 해 드렸다. 그리고 정말 별것 아닌 이야기로 시간을 채웠다. 그때는 ‘곁에 있음’이 당연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오랜만에 병원에서 마주쳐도, 우리는 10분 만에 떠나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그 변화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아마도 시간과 거리, 그리고 익숙해짐이 만든 결과였을 것이다.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함께 머무는 방식이 달라진 것일지도 모른다.


행복이가 수영장에서 강습을 받는 모습을 보며, 나는 다시 가족을 떠올렸다. 지금은 내가 아이의 손을 잡고 차에 태운다. 하지만 언젠가는 누군가, 어쩌면 행복이가 내 손을 잡아줘야 할 시간이 올 것이다. 그때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있느냐가 아니라, 그 시간에 얼마나 온전히 머물 수 있느냐일지도 모른다.


오늘의 일요일은 바빴고 정신없었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 나는 배웠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은 늘 넉넉하지 않기에 더 소중하고, 짧을수록 더 진하게 머물러야 한다는 것을.


오늘은 아침부터 정신없었지만, 그래서 더 많은 생각이 남은 하루였다. 가족은 늘 함께 있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있으려 애써야만 유지되는 관계라는 사실을 오늘 나는 다시 배웠다.


오늘 경험으로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언젠가 그런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행복이는 어떤 쪽을 선택할까.
짧게 다녀가는 쪽일까, 아니면 불편하고 힘들어도 곁에 머무는 쪽일까.

정답은 없다.
어쩌면 그 선택은 사랑의 크기가 아니라, 각자가 감당할 수 있는 방식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다만 나는 바란다.
행복이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이 도망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이해한 끝의 결정이기를.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멜번니언이 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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