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서 좋은 점이 있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씩 넓어지고 깊어진다는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이유를 찾고, 아쉬워하고, 괜히 마음을 상하게 했을 일들 앞에서 이제는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나는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 오늘 스티븐은 크리켓 경기를 보러 갈 예정이었고, 나와 행복이는 톰의 집에 방문할 계획이었다. 각자의 하루가 나름대로 잘 짜여 있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겼다. 오늘까지 이어질 줄 알았던 크리켓 경기가 하루 일찍 끝나 버린 것이다. 그래서 스티븐의 일정은 갑자기 취소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런 스티븐을 내 일정에 맞추자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게 받아들였다. 세상은 원래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스티븐은 나와 톰집에 가는 대신 친구 마이클을 만났고, 나와 행복이는 예정대로 톰의 집으로 갔다.
톰은 우리뿐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초대해 두었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작은 수영 파티가 되었다. 사람들은 스티븐의 안부를 물었다.
나는 “바빠서 못 왔어”라고 가볍게 넘겼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완전히 편하지만은 않았다. 조금 무리를 하면, 스티븐도 충분히 함께할 수 있었을 일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톰집에서 우리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스티븐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그는 지금 아버지가 계신 병원에 있었다. 갑자기 상태가 좋지 않아 급히 병원으로 가야 했다는 것이다. 병원이 우리집에서는 10분거리에 있다.
그 순간 모든 생각이 정리되었다. 만약 스티븐이 우리를 따라 차로 한 시간이나 떨어진 톰의 집에 있었다면, 아버지에게 바로 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 그의 마음이 어땠을까.
오늘 하루의 선택들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가장 필요한 자리에 사람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알았다. 오늘 취소된 일정은 잘못된 것이 아니었고, 어긋난 계획도 아니었다는 것을.
살다 보면 이유를 알 수 없는 일들이 생기고, 그때는 불편하고 서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그 일들이 오히려 누군가를 지켜주고 있었음을 알게 되는 순간이 온다.
나이가 든다는 건, 모든 일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지 못해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않게 되는 것이다.
오늘 나는 다시 한번 배웠다.
세상은 늘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움직이지는 않지만, 가끔은 가장 필요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그래서 이제는, 조금 덜 따지고 조금 더 믿어보려 한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멜번니언이 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