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by Ding 맬번니언

어린아이들에게 종종 묻는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우리는 자라면서 수도 없이 그런 질문을 받아왔다. 그 질문은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은 누군가를 선택하라는 요구에 가깝다. 아직 관계를 이해하기도 전에, 마음의 방향을 하나로 정하라고 말하는 질문들을 받으면서 우리는 성장한다.

오늘은 스티븐의 아이들이 우리 집을 방문했다.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아이들이 일정이 있어 함께하지 못했고, 그렇게 크리스마스는 조용히 지나갔다. 그들은 아빠보다 엄마를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오늘, 우리는 조금 늦은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냈다. 나는 별로 상관없지만 스티븐의 마음이 궁금한 하루였다.


그 시간을 보내며 나는 한 가지를 배웠다. 중요한 건 ‘언제’가 아니라, ‘누구와’ 보내느냐는 것이라는 것을 배웠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는 사람들과 아주 잘 지내는 편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애써 노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함부로 하거나, 무례하게 대하는 사람은 아니다. 다만 나는 관계에 있어서 ‘적당한 거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스티븐의 아이들과도, 한국에 있는 누나들의 가족과도 자주 연락하지 않는다. 그것은 싫어서도, 마음이 없어서도 아니다. 그저 모든 관계가 밀착되어야만 건강하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상처 주기도 상처받기도 싫은 것도 있다.


나는 스티븐의 아이들에게, 그리고 누나들의 가족에게서 무언가를 바라지 않는다. 대신, 서로가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간격 속에서 존중받기를 원한다. 그 거리가 나에게는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지만 바라지 않는다.


오늘의 만남은 어색하지도, 지나치게 가깝지도 않았다. 적당히 웃고, 적당히 이야기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그 균형이 꽤 마음에 들었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 “누가 더 좋아?”라는 질문에서 벗어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선택하지 않아도 되고, 모두에게 같은 방식으로 다가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힘들면 일부로 누군가에게 다가가려고 하지 말자. 오늘 나는 관계의 크기가 아니라, 관계의 온도와 거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배웠다. 그리고 그 배움은, 이 크리스마스를 조용히 지나 보낸 이유가 되기에 충분했다.


매년 명절이면 누구의 집에 가야 할지 갈등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비슷한 그런 상황이 조금 불편하기 때문이다. 나는 행복이가 어른이 되면 그와도 적당한 거리를 둘 생각이다. 그래야지 서로 상처받지도 상처 주지도 않을 것 같다. 인간관계가 세상에서 제일 힘들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멜번니언이 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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