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개월은 스티븐 아버지의 병세로 인해 계속해서 긴장 속에 놓여 살아온 시간이었다. 그저 힘든 시기라고 생각하며 버텼지만, 새해에 들어서면서 나는 조금 더 분명하게 느끼게 되었다. 죽음이 아주 가까운 곳까지 와 있다는 사실을.
수술 부위는 끝내 회복되지 않았고, 감염은 무릎까지 내려왔다. 염증으로 다리는 심하게 부어 있었고, 의사들은 다시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의 아버님 몸 상태였다. 수술을 하면 위험하고, 하지 않아도 위험한 상태이기에 의사들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상태만 지켜보는 중이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안전하지 않은 갈림길에서, 스티븐의 아버지는 매일을 견디고 계신다. 그 사실이 나를 자주 숙연하게 만든다. 아무 말 없이 하루를 넘기고, 또 하루를 살아내는 그 시간들이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지, 나는 감히 가늠할 수 없다.
그저 대단하다는 말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어젯밤, 나는 자다가 깼다. 무릎에 갑작스러운 통증이 왔기 때문이다. 크지 않은 통증이었다. 잠시 욱신거리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 작은 통증조차도 견디기가 쉽지 않았다.
몸을 뒤척이며 통증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작은 통증도 이렇게 힘든데, 매일 이유를 알 수 없는 통증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감정일까.
통증은 단순히 아픈 것을 넘어,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사실, 나아질지 알 수 없다는 불안,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말없이 감당해야 한다는 고독이다.
죽음은 어쩌면 그 통증의 끝에 있는 것이 아니라, 통증과 함께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과정 속에 이미 스며들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대 부분 사람들은 통증이 있어도 일상을 살고, 잠에서 깨고, 다시 잠들 수 있다.
하지만 그날 밤, 무릎의 통증을 느끼며 나는 처음으로 죽음이 아니라 통증 그 자체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아픔을 견디는 삶, 그리고 그 끝을 알 수 없는 기다림.
그 시간을 묵묵히 살아내고 있는 스티븐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나는 오늘도 조심스럽게 하루를 보낸다.
아프지 않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연약한 균형 위에 놓여 있는지를, 조금은 더 깊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통 속에서도 긍정적으로 삶을 살도록 노력 할 생각이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멜번니언이 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