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울지 않을 줄 알았다. 적어도, 휴가를 보내는 이 순간은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스티븐이 멜버른으로 떠나기 직전, 그가 아주 담담하게 한마디를 꺼내는 순간 나는 그만 무너지고 말았다.
“아버지가… 힘들지만 나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 같아.”
그 말은 설명도, 감정도 없이 조용히 떨어졌는데 내 마음 어딘가를 정확히 찔렀다. 떠나는 사람 앞에서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아이처럼 펑펑 울어버렸다. 눈물이 내 눈에서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스티븐은 휴가 일정보다 훨씬 일찍 돌아가기 위해 이백만 원이 넘는 돈을 쓰며 비행기표를 다시 구입했다. 우리가 함께 타기로 했던 수요일 비행기표를 포기하고, 혼자 먼저 멜버른으로 향했다.
아무 말 없이, 망설임 없이. 그리고 자식으로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음을 이번 일로 배웠다. 두 동생은 끝까지 아버지의 마지막을 함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우리는 이미 지쳐 있었다. 입원하시고 지난 두 달 아니 정확히 말해서 5일은 하루하루가 장난이 아니었다. 매일 병원에서 전화가 왔고,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우리는 매일 긴장 속에서 살았다. 그래서 나는 이 휴가를 더 휴가답게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서 말이다.
그리고 스티븐이 떠나는 오늘 아침, 병원에서는 더 이상 장담할 수 없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듣고 몇 시간만 기다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들기도 스티븐 아버지에게 죄송한 생각이 들기도 복잡한 마음이 우리를 힘들게 했다. 우리의 사정이랑 상관없이 아버지는 ‘마지막을 준비하는 병실’로 옮겨지셨다.
가족 중 한 명이 병실에 함께 머물 수 있는 곳. 그 이유는 밤중에라도 돌아가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든 상황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끝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다행이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버지는 끝까지 스티븐을 기다려주셨다. 스티븐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집에 가서 짐도 제대로 풀지 않고 병원으로 향했고, 마침내 두 사람은 다시 만났다.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하느님에게 감사했다.
그리고 오늘,
스티븐은 병원에서
아버지의 곁을 지키고 있다.
마지막 인사를 건네기 위해,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머물기 위해.
나는 이번 일을 겪으며 그를 더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호주 사람이고, 개인주의 문화 속에서 자랐지만 그는 휴가를 포기하고, 여행을 내려놓고, 아버지를 선택했다. 그 두 형제는 스티븐과 또 다른 선택을 했다. 선택은 정말 각자의 몫이다.
지금 그 병실에서 스티븐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말을 건네고 있을까, 아니면 그저 손을 잡고 숨소리를 듣고 있을까.
나는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그 장면을 상상하며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안다. 사람은 이렇게 사랑을 증명한다는 것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멜번니언이 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