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티븐의 가족들이 참 우애가 좋고, 다정다감하다고 생각해 왔다. 서로를 존중하고, 말투가 부드럽고, 겉으로 보기에 늘 평온해 보였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전형적인 호주 스타일이다. 그런데 이번 일을 겪으며, 그들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에 맞게 대처하는 방식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는데도 세 형제의 태도는 놀라울 만큼 비슷했다. 슬퍼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슬픔을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스티븐은 장남이다. 부모님이 우리 가까이에 계신 덕분에 지금까지 거의 매일 병원을 찾았다. 아들 노릇을 제일 많이 했다. 우리는 행복이 방학도 있고, 이번 주에는 이미 일주일 여행 계획도 잡혀 있다. 그럼에도 그는 분명히 말했다. 아버지가 ‘기다리는 것 같다면’ 내일이라도 여행을 포기하고 멜버른으로 돌아가겠다고.
나는 그 말에 마음이 놓이면서도, 아버지가 정말 그때까지 기다려주셨으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바람을 하게 되었다. 모든 일정을 포기하고 2백만 원을 들여서 비행기를 구입해서 그는 내일 아침에 떠난다.
둘째 크리스는 올해 환갑을 맞았다. 이번 여행이 다 그의 생일 때문이다. 세 형제 중 가장 부유한 사람이다. 개인 비행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위치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않기로 선택했다. 그 선택에 대한 이유는 들을 수 없었다. 그는 피하고 싶은 것 같다.
막내 팀은 퍼스로 돌아간다고 했다. 왜인지, 어떤 마음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갈 것 같은데 나는 아마도 너무 기대를 했던 것 같다. 우애가 좋으니, 이럴 때는 더 함께할 것이라고 나도 모르게 기준을 세워두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전형적인 호주 사람들이었다. 감정은 표현하되, 행동은 각자의 선택으로 남겨두는 사람들.
누군가에게 부담이 되는 것을 극도로 조심하고, ‘원하지 않는 일’을 강요하지 않는다.
한국의 우리 가족은 다르다. 솔직히 말해 스티븐 가족들보다 사이가 좋다고 할 수는 없다. 자주 다투고, 말도 거칠다. 그런데도 만약 아버지의 임종이 가까워진다면, 우리는 모두 아버지 곁에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스티븐처럼 한 달이든 그 이상이든 곁을 지키며 시간을 보낼 것 같다. 그리고 누나들에게도 가능한 한 자주 오라고 말했을 것이다.
이 차이는 사랑의 크기라기보다는 문화의 방향에 가까운 것 같다.
호주는 개인주의가 강한 사회다.
하고 싶으면 하고,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 그 선택에 죄책감을 얹지 않는다. 어쩌면 스티븐의 어머니도 그래서 자식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일지 모른다. 아들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각자의 선택을 존중하기 위해.
나는 지금 그 차이 한가운데 서 있다. 어느 쪽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는 조금 더 분명해졌다.
우애와 책임, 자유와 곁에 있음 사이에서 나는 여전히 질문 중이다. 그리고 호주로 떠나기 전 스티븐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들 충분히 아버지를 뵙고 인사를 나누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힘듦을 알기에 죽음에 대한 스트레스는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들은 불편한 것은 피하는 전형적인 호주인다웠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멜번니언이 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