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오직 당사자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죽음 이후의 시간이 오히려 더 복잡하고 길게 이어진다. 그리고 해야 할 일들도 정말 많다.
스티븐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장례 절차가 하나씩 시작되었다. 장례식은 2월 6일 금요일 오후 2시로 정해졌다. 한국이라면 보통 3일, 길어야 4일 안에 급하게 장례를 치른다. 슬픔을 충분히 가다듬을 시간도 없이, 절차가 먼저 사람을 밀어붙인다. 하지만 호주는 다르다. 가족들의 상황과 준비 시간을 고려해 장례 날짜를 정한다. 기다림이 허락되는 문화, 애도를 정리할 수 있는 여백이 있는 방식이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장례식은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치러진다. 매일 산책을 나가면 자연스럽게 지나치던 곳이다. 10년 동안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는 그곳을 올해 들어간다. 매일 길을 걷다가 장례식장을 마주할 때마다, 이제는 그냥 ‘건물’이 아니라 삶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장소로 보인다. 익숙했던 풍경이 이번 일로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비용도 생각보다 크다. 관, 병원에서 장례식장까지의 고인 이동, 예식 진행, 행정 절차까지 포함하면 적지 않은 금액이 든다. 죽음은 무료가 아니고, 이별조차 계산 속에서 정리된다. 사람은 죽고 나서도 여전히 사회 속에 묶여 있다. 서류로, 비용으로, 절차로.
이 모든 과정을 겪으며 깨닫게 된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역할의 이동이라는 것을. 떠난 사람은 모든 것을 내려놓지만, 남은 사람들은 그 자리를 대신 짊어진다. 슬픔뿐 아니라 결정해야 할 것들, 책임져야 할 것들, 정리해야 할 현실까지.
그래서 나는 이제 “죽으면 끝이다”라는 말을 쉽게 믿지 않는다. 죽음 이후에도 삶은 계속되고, 오히려 그때부터 다른 종류의 무게가 시작된다. 애도의 무게, 선택의 무게, 남겨진 사람으로 살아가는 무게. 그리고 나도 죽기 전에 죽음에 대한 준비를 미리 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이번일을 통해서 배웠다.
아마 우리가 누군가에 장례식을 치르는 이유도, 그 무게를 혼자 들지 않기 위해서일 것이다. 함께 모여, 같은 시간을 지나며, 누군가의 삶이 분명히 여기 있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그렇게 우리는 또 한 사람을 보내고, 남은 삶을 조금 다른 눈으로 살아가게 된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멜번니언이 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reel/DUM3uW4AXqk/?igsh=MWRqeTJyYjZqNGp1e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