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가 일주일 동안 혼자 집으로 오는 연습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걱정이 더 컸다. 길을 건너는 순간, 낯선 사람이 말을 걸면 어떻게 하나, 혹시 집중하다가 딴생각을 하지는 않을까. 부모의 머릿속에는 항상 최악의 장면이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아이는 그런 걱정을 모른 채, 하루하루 자기 방식대로 길을 익혔다. 그리고 결국 해냈다.
아이를 보면서 문득 생각했다. 성장은 이렇게 조용히 일어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주 거창한 순간이 아니라, 아무도 박수 쳐주지 않는 반복 속에서 조금씩 단단해지는 과정.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기억하는 일, 신호등을 기다리는 일, 가방을 끝까지 챙기는 일. 어른에게는 사소하지만 아이에게는 세계를 넓히는 사건들이다.
그런데 공부는 정말 느리다. 너무 느리다. 오늘 문제집 마지막 장을 푸는데 빵점을 받았다. 마지막 페이지였다. 그동안 쌓아온 시간이 한 장의 종이 앞에서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게 정말 노력의 결과인가 싶었다. 나는 아이에게 화를 내고 싶은 마음과, 참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잠깐 멈춰 서 있었다.
아이의 얼굴을 보니, 이미 알고 있는 표정이었다.
“또 실망시켰지?” 하고 먼저 말하는 얼굴.
그 표정을 보는 순간 화가 방향을 잃는다.
부모의 화는 결국 기대에서 시작되지만, 아이는 이미 그 기대를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아프다. 하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다. 이건 아이를 몰아붙이겠다는 뜻이 아니라, 같이 끝까지 가겠다는 의미다. 느려도 간다. 돌아가도 간다. 남들보다 늦어도 간다.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속도를 재는 것이 아니라, 멈추지 않게 옆에서 걷는 일인지도 모른다.
저녁을 먹고 우리는 테니스 연습을 하러 코트로 갔다. 이상하게도 운동을 할 때의 행복이는 다른 아이 같다. 몸이 먼저 반응하고, 머리가 그 뒤를 따라오는 아이. 라켓을 잡는 순간 집중이 생긴다. 나는 오늘만큼은 꼭 이겨보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른의 자존심 같은 것이 슬쩍 올라왔다.
하지만 또 졌다. 경기가 끝났을 때 아이는 숨을 몰아쉬면서 웃고 있었다. 나는 웃으면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이 아이를 이기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어느 순간 부모는 아이를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따라잡아야 하는 사람이 된다. 그 변화가 서운하면서도 묘하게 기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공부는 느리고, 운동은 빠르고, 감정은 복잡하고, 성장은 조용하다. 아이는 자기 속도로 앞으로 가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더딘 날도 있고, 답답한 날도 있지만, 뒤돌아보면 항상 조금은 멀리 와 있다.
혼자 집에 오는 길을 배우는 아이.
문제집 앞에서 좌절하는 아이.
코트 위에서 부모를 이기는 아이.
이 모든 모습이 같은 아이다.
그리고 그 모든 장면이 모여 성장이라는 한 문장을 만든다.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마 하나뿐이다. 오늘의 빵점과 오늘의 승리를 같은 마음으로 기억하는 것.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멜번니언이 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