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지금 너는 시드니 공항 바닥을 밟고 서 있겠지. 딱 2006년 오늘 너는 시드니 공항에 도착했어.
겉으로는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다리가 조금 떨리고 있었을 거야. 아무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쉬었지. “이제 시작이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도, 속에서는 “도망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을지도 모른다.
너는 도망친 게 아니었다. 살기 위해 떠난 거였다. 그때의 너는 많이 지쳐 있었다. 한국에서 게이라는 이유로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시간들. 가족의 침묵, 어색한 식탁 공기, 차마 꺼내지 못한 이야기들.
너는 이해받고 싶었지만, 이해를 구걸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떠났지.
사전에서 “게이”라는 단어가 ‘쾌활한, 즐거운’이라는 뜻을 가진다는 걸 알았을 때, 너는 조금 씁쓸했을 거다. 너의 현실은 전혀 쾌활하지 않았으니까. 웃고 있어도 마음은 늘 조심스러웠고, 누군가에게 들킬까 봐, 혹은 또 거절당할까 봐 긴장하고 있었지.
너는 늘 사랑을 갈망했지만, 동시에 사랑이 두려웠다. 혹시 또 상처받을까 봐.
혹시 또 “그건 안 된다”는 말을 들을까 봐.
지금의 내가 말해줄게.
너는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
그의 이름은 스티븐이다. 처음에는 믿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편해도 되나?”
“이렇게 살아도 괜찮나?”
의심부터 했을 거다. 하지만 그 사람은 너에 문제점을 고치려고 하지 않는다. 너에게 설명하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사랑에 조건을 붙이지 도 않는다. 그건 네가 처음 받아보는 사랑의 형태 일거야. 그렇게 그를 만나서 너의 인생은 달라져.
그리고 더 놀라운 일도 일어난다. 너는 아버지가 된다. 너는 늘 스스로를 외딴섬 같다고 느꼈지. 그런 네가 누군가의 중심이 된다.
아이의 손을 잡고 학교에 가고, 아이의 행동 때문에 화를 내고, 그 아이가 웃으면 세상이 괜찮아 보인다.
20년 전의 너는 상상하지 못했을 거다. 네가 가족을 이루고, 게이로서 숨지 않고 살고, 행복이라는 이름의 아이를 키우게 될 줄은.
물론 모든 것이 쉬웠던 건 아니다. 싸움도 있었고, 돈 걱정도 있었고, 아이 문제로 밤잠을 설친 날도 있었다.
그래도 지금의 나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20년 전보다 행복하다. 20년 전 너는 늘 미래를 두려워했지.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 아닐까?”
“이 선택이 잘못이면 어떡하지?”
그 질문들이 밤마다 머리를 눌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너는 잘못되지 않았다.
너의 정체성은 실수가 아니었다.
너의 선택은 도망이 아니라 용기였다.
20년이 지나서야 나는 “게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이해한다.
쾌활함.
즐거움.
그 단어가 이제는 나를 설명한다.
네가 그렇게도 두려워했던 미래는 생각보다 따뜻하다. 그러니 공항에 서 있는 그날의 너에게 말해주고 싶다.
조금만 더 버텨라.
조금만 더 믿어라.
너는 결국 네가 있어야 할 자리에 선다. 그리고 언젠가 너는 이렇게 말하게 된다.
“나는 게이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그리고 나로서 행복하다.”
20년 뒤의 네가 고맙다고 말한다.
살아줘서.
포기하지 않아 줘서.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멜번니언이 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