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걸.
나 솔직히 말하면, 행복이보다 더 많이 연습했다. 그래서 수업시간에 잘할 줄 알았다. 우리는 두 번째 기타 레슨을 받았다. 숙제도 정말 열심히 했다. 손끝이 아플 정도로 반복했고, 코드 전환도 밤에 몰래 연습했다. 아이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노력만큼은 더 하고 싶었다. 어쩌면 따라잡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 깨달았다.
연습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걸.
그것은 리듬이다.
“단~ 단~ 다안, 단~ 단~ 다단 안.”
선생님은 웃으면서 시범을 보였다. 행복이는 금방 따라 했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박자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틀려도 흐름이 있었다. 아마도 피아노를 배워서 그런 것 같다.
나는 안 됐다. 머리로는 이해했다. 박자를 세고, 손을 움직이고, 의식적으로 맞추려고 애썼다. 그런데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당황스러웠다.
그렇게 리듬이 끊겼다. 나는 박자를 계산하고 있었고, 아이는 음악을 타고 있었다.
그 순간 이상하게 씁쓸했다. 나는 더 많이 연습했는데, 왜 나는 안 되고 아이는 되는 걸까.
조금은 질투였고, 조금은 인정하기 싫은 마음이었다. 어른이고 아빠이기에 더 잘하고 싶었다. 하지만 곧 생각이 바뀌었다.
행복이는 나보다 어리다. 몸이 가볍고, 감각이 열려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려움이 적다. 틀려도 웃고, 다시 해보고,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나는 어른이기에 틀릴까 봐 긴장한다. 박자를 놓칠까 봐 머리로 계산한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오히려 나를 굳게 만든다.
어쩌면 내가 못하는 것은 리듬이 아니라, 놓아버리는 용기일지도 모른다. 아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건 조금 아프지만 동시에 묘하게 기쁘다.
이제 나는 아이를 가르치는 사람만은 아니다. 아이에게 배우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떤 영역에서는 이미 아이가 나를 앞서고 있다.
그게 성장이다.
아이의 성장이고, 아마 나의 성장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리듬을 완벽하게 치지 못했다.
하지만 하나는 배웠다.
연습은 노력의 문제이고, 리듬은 마음의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것.
조금 더 힘을 빼고, 조금 더 틀려도 괜찮다고 생각하면 언젠가는 나도 흐름을 탈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배우는 것이 아직 어색하다. 하지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리듬은 따라잡는 것이 아니라 익숙해지는 것일 테니까.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멜번니언이 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