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는 ‘한방’이 없을지 모른다.

by Ding 맬번니언

오늘 행복이는 학교 투어를 했다. 내년에 중학교에 가기 때문이다. 벌써 이런 시간이 되었다. 나는 오늘 학교 투어에 나는 함께하지 못했다. 투어가 아침에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투어를 위해 잠시 월차를 쓸까 생각했다. 아이의 미래와 관련된 일인데 하루쯤 쉬는 게 어떨까 싶었다.

하지만 스티븐이 말했다.
“투어 때문에 월차를 쓰는 건 아닌 것 같아.” 나는 그 말에 동의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이 과정이 감정이 아니라 구조라는 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저번 주 토요일을 시작으로 이번 달에만 네 곳의 학교를 둘러보았다. 교정은 모두 훌륭했고, 설명은 친절했고, 시설은 인상적이었다. 각 학교는 저마다의 비전을 이야기했다.


리더십, 창의성, 공동체, 전통.


하지만 어느 학교에서도 “행복이 학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라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사립학교는 학생을 고른다. 그것이 현실이다. 우리가 학교를 고르지만 학교가 학생을 선발하는 그런 구조다.


가장 우선순위는 가족.


이미 그 학교에 다니는 형제자매가 있거나, 동문이거나, 가문이 연결되어 있으면 유리하다. 그리고 돈이 많으면 뭐 그다음이 학생의 역량인 것 같다.


그래서 우리도 나름 준비했다. 행복이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 피아노를 꾸준히 쳤고, 그림도 잘 그린다. 대회에서 우승도 했다. 테니스도 잘한다. 운동신경도 있고, 표현력도 있다. 그런데 나는 오늘 처음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한방이 없다.


눈에 확 들어오는 무언가, 심사위원의 눈을 멈추게 하는 결정적인 무엇.
“이 아이는 꼭 뽑아야겠다”는 확신을 주는 강렬한 카드.


그게 없다. 그래서 고민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정말 한방이 필요한 걸까?
아니면 내가 조급해진 걸까?


행복이는 나름의 속도로 자라고 있다. 피아노를 치며 집중하고, 테니스 코트에서 끝까지 공을 따라가고, 그림을 그릴 때는 누구보다 진지하다.


하지만 이 사회는 종종 아이를 하나의 결과로 압축하려 한다.
점수, 수상 경력, 특별한 재능.

나는 그 틀 안에서 아이를 재고 있는 건 아닐까.

학교를 둘러보는 동안, 나는 자꾸만 비교하고 있었다.
“저 아이는 더 적극적이네.”
“저 아이는 말도 잘하네.”
이런 생각들이 나도 모르게 올라왔다.


부모가 된다는 건 아이를 믿는 일이라고 말하면서도 현실 앞에서는 흔들리는 일인 것 같다. 나는 행복이를 밀어붙이고 싶은 게 아니다.

다만 문이 닫히는 경험을 너무 일찍 하게 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그런데 문이 열리는 방식이 내가 기대한 모양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행복이는 ‘한방’이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꾸준함이 있다. 부드러움이 있고,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행복이는 학교에서 인기인이다. 모르는 학생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과 친하다.


혹시 그게 눈에 띄지 않는 그의 강점은 아닐까. 나는 아직도 고민 중이다. 아이를 더 밀어야 할지, 아니면 그의 속도를 믿어야 할지.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학교가 우리를 선택하지 않는다고 해서 행복이의 가치가 줄어드는 건 아니다. 나는 오늘 그 사실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마음으로는 아직 배우는 중이다. 빨리 행복이 중학교가 결정이 되면 좋겠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멜번니언이 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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