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특별한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by Ding 맬번니언

오늘 행복이는 테니스 대회에 참석했다. 행복이가 다니는 클럽에서 열린 대회였다. 경기를 지켜보면서 아이는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했다. 한 경기에서는 집중력이 좋아 보였고, 또 다른 경기에서는 흐름을 놓쳤다. 그 모습을 보며 하나를 알게 되었다.

행복이는 분명 중간 이상이다.

못하는 아이는 아니다. 기본이 있고, 감각도 있다. 공을 따라가는 움직임도 나쁘지 않고, 경기 안에서 자기 방식대로 버티는 힘도 있다.


그런데 동시에 또 다른 것도 보였다. 행복이보다 확실히 더 잘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클럽에서 이미 따로 선발되어 별도의 훈련을 받고 있었다. 그 사실이 내 눈에는 바로 들어왔다.


아마 내가 이런 분위기를 빨리 읽는 편이라서일 것이다. 누가 중심에 있는지, 누가 이미 다음 단계로 올라가 있는지, 어떤 아이가 코치의 시선 안에 들어 있는지 나는 금방 느꼈다.


하지만 불행히도 스티븐도, 행복이도 그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내 안에서 복잡한 감정이 올라왔다. 실망이라고 말하기에는 조심스럽고, 답답함이라고 하기에는 미안한 감정.


아마 부모가 된다는 것은 이런 순간을 계속 배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내가 바라는 방향과 아이의 실제 위치 사이의 거리를 계속 받아들이는 일.


부모는 마음속으로 늘 기대를 만든다.

혹시 조금 더 잘하지 않을까,
이번에는 눈에 띄지 않을까,
어쩌면 특별한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오늘 문득 우리 부모님 생각도 났다. 나 역시 그들의 기대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어쩌면 부모님도 자식이 특별히 무엇인가 잘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적어도 평범한 길을 걷기를 원했을지도 모른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키우고 그런데 나는 그들이 예상하지 못한 삶을 살았다.


게이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 세대 부모에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은 조금 이해가 된다. 자식이 부모가 상상한 모습대로 자라지 않을 때 부모는 당황하고, 때로는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생각한다. 부모의 입장에서만 모든 것을 설명해서는 안 된다. 자식은 부모의 기대를 채우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행복이는 지금도 어른이 되면 테니스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 잠시 현실을 생각하게 된다. 솔직히 지금 내 눈에 보이는 행복이는 전문 선수를 꿈꾸기에는 아직 거리가 있다.


학교 안에서는 조금 잘 치는 편이고, 일반적인 또래보다 감각이 있는 편이다. 하지만 경쟁이 높아질수록 그 차이는 분명해진다.


그래도 아이는 아직 꿈을 말할 나이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 중요한 것은 꿈의 정확성이 아니라 꿈을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도 배우는 중이다. 아이의 가능성을 냉정하게 보는 것과 아이의 꿈을 꺾지 않는 것 사이에서 어디까지가 부모의 역할인지.


오늘 대회는 행복이보다 오히려 내가 더 많은 생각을 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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