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정말 빠르게 흐르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청춘의 활력으로 밤새도록 클럽에서 즐기고 다음날 아무렇지도 않게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그런 무한한 에너지와 회복력이 있을 때는 몸의 한계를 느끼지 못했는데, 세월이 흘러가면서 그 변화를 체감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제 행복이가 몸이 안 좋아서 걱정이 돼서 한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벽에 일어나 트램을 운전하는 일은 저에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겠되었습니다. 새벽의 고요함 속에서 시작하는 하루와, 사람들의 새로운 시작을 돕는 일이 저에게는 작은 만족과 재미를 느끼게 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트램 운전도 점점 적응 단계를 넘어 재미 단계까지 은 도달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후의 일상은 저를 다시 현실로 끌어당기기 시작합니다. 특히 학교에서 '행복이'를 픽업하는 책임이 저를 기다리고 있을 때는 몸의 피로감이 더해졌습니다. 하지만 피곤함 몸을 이끌고 오랜만에 행복이 학교에서 행복이 반 앞에서 아이를 기다리는 기분에 그런 피곤함이 사라져 가는 것 같았습니다. '행복이'의 웃는 얼굴을 생각하며, 그 순간을 상상하면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그렇게 학교에 도착하면, 다른 아이들 사이에서 빛나는 '행복이'의 모습을 찾게 됩니다. 그 아이의 눈에 반짝이는 희망과 기쁨을 보면, 그동안의 피곤과 스트레스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곤 합니다. 행복이도 제가 오랜만에 픽업을 하니 좋아하는 모습입니다.
학교의 큰 문을 통과할 때마다, '행복이'의 밝은 표정과 함께 저를 반겨주는 다른 아이들의 환한 웃음소리가 저에게 힘을 주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지친 날이라도 그 순간만은 모든 걱정이 사라지고, 순수한 행복만이 가슴을 채워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행복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리고 그곳에서 펼쳐지는 작은 일상의 순간들은 저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아무리 바쁘고 지친 하루가 되어도, 그런 순간들이 저에게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게 됩니다.
저에게 '행복이'는 그저 아들이 아닙니다. 그는 제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나침반, 힘들 때 힘을 주는 에너지원,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 삶의 중심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힘든 날이 있어도, '행복이'와 보내는 시간은 언제나 저에게 힘이 되어줍니다.
보통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피곤함이 몰려오면, 그것이 우리의 판단력이나 의지력에도 영향을 미치곤 합니다. 오늘 하루가 저에게 그런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행복이'와의 소중한 시간은 그러한 피로와 의기소침을 한 순간에 날려버리곤 했습니다. 아이의 미소, 그리고 그의 따스한 손길은 저에게 새로운 힘을 주었습니다. 사실, 그런 작은 순간들이 우리의 삶에서 가장 큰 행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일상의 무게와 책임감, 그리고 끊임없이 닥쳐오는 도전들 사이에서도 '행복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저에게 언제나 힐링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런 순간들은 저에게 삶의 가치를 다시금 깨닫게 해 주고, 어려움 속에서도 작은 행복을 찾게 해 줍니다. 그리고 그 힘으로 저는 또 다른 도전을 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작은 순간의 행복이 큰 행복으로 이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행복이'와의 시간이 저에게 주는 가장 큰 깨달음이었습니다. 때로는 세상 모든 것을 잊고, 행복이와 함께하는 순간만을 간직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행복의 시작이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그와 함께 시간이 흘러가면서 인생의 다양한 단계와 역할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릴 때는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부모의 위치에 서게 되면서 부모님의 마음과 감정, 그리고 그 무게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한 세월에서 행복했던 시간이 많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 자식 행복이가 중요한 만큼 부모님도 함께 할 수 있을 때 좋은 시간을 같이 보낼 생각입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부모님에게 더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그들의 희생과 사랑을 기억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한국에 가서 부모님과 행복한 시간도 많이 만들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