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ing 맬번니언 Dec 08. 2024

“이 공 필요하면 너희 엄마한테 와서 받아 가라.”

오랜만에 친구 톰 가족을 방문했습니다. 시간이 참 빨리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서로 바쁘게 지내다 보면 얼굴 한 번 보기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부모가 되고 나서는 이런 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그래서 그런지 톰과 가족을 다시 만난 이 날이 더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저희는 오랜만에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그동안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대화를 나누던 중, 톰이 흥분된 얼굴로 지난주에 알렉스 학교에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그의 표정에서 분노와 걱정이 교차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의 아들 알렉스, 행복이와 동갑인 친구인데요, 학교에서 6학년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한두 번 있었던 일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저는 깜짝 놀라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물어보았습니다.


알고 보니 흔히 있을 법한 상황에서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학교 운동장에서 농구를 하던 중, 아이들 수보다 농구대가 적어 서로 공유해서 써야 하는 상황이었답니다. 그런데 알렉스는 덩치도 크고 키도 커서 6학년 아이들보다 농구를 훨씬 잘했나 봅니다. 그게 문제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6학년 아이들이 알렉스를 질투하며 괴롭히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농구공을 빼앗거나 비꼬는 수준을 넘어, 그들의 행동과 말은 점점 더 악질적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톰이 들려준 이야기는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알렉스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이 공 필요하면 너희 엄마한테 와서 받아 가라해
그리고는 비웃으며 이렇게 덧붙였다고 합니다.
“아, 미안. 너는 엄마가 없지.”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너는 아빠가 둘이라며? 그래서 너도 게이가 될 거야.”


저는 그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도저히 어린아이들이 입에 담을 수 있는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무심코 내뱉은 말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안에는 명백한 악의와 차별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런 말을 들은 알렉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한참 민감한 나이에 이런 말을 듣고 얼마나 상처받았을지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톰은 이 이야기를 하며 참을 수 없는 분노와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아이를 보호하고 싶은 부모로서, 그리고 그의 행복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고민이 많다고 했습니다. 알렉스가 그런 말을 듣고도 집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며 더 마음이 아팠다고 합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단순히 친구의 일로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 아이 행복이도 또래들과 부딪히며 살아가고 있는데, 알렉스가 겪은 이런 일이 다른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분명히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가정에서든 학교에서든, 다양성을 존중하고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저 "어린아이들이니까"라는 이유로 이런 언행을 방치한다면, 그들은 자라서도 누군가를 비하하거나 차별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사실을 배우지 못할 것입니다. 아이들이 내뱉은 말이지만, 그 말속에는 어른들의 편견이 투영된 것 같아 더 가슴이 아팠습니다.


톰과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함께 고민했습니다. 학교 측에 이 문제를 알리고, 가해 학생들과 그 부모들에게도 이 상황의 심각성을 전달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또한, 알렉스가 스스로의 가치를 잃지 않도록 끊임없이 지지하고 격려하는 것도 중요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스스로를 사랑하고 존중할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것이 가장 필요하니까요. 이날 톰과 나눈 대화는 단순히 알렉스의 이야기를 넘어, 나 자신과 우리 가족,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만든 시간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따뜻한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더 고민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조심스럽게 행복이에게 물었습니다.
“행복아, 혹시 학교에서 누가 너를 괴롭힌 적 있니? 특히…  아빠가 둘이라는 이유로 말이야.”

행복이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차창 밖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요, 그런 일은 없었어요.

“행복아, 혹시라도 학교에서 누가 그런 말을 하거나 너를 괴롭힌다면, 꼭 아빠한테 말해줘. 그건 네 잘못이 아니고, 절대 그냥 참아야 하는 일이 아니야. 알겠지?”

행복이는 내 말을 곰곰이 생각하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응, 알겠어요. "

혹시 몰라서 저희는 행복이 세컨터리(중학교,고등학교) 신중히 알아보고 있습니다. 공부보다 열린 마음으로 학생들을 바라보는 그런 학교로 말이죠.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멜번니언이 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