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파리 세느강에는 서른일곱 개의 다리가 있다.
나는 숙소가 있는 바스코 드 가마 길에서 멀지 않은 미라보 다리(Le Pont Mirabeau)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언제 처음 접했는지는 흐릿하지만, 아폴리네르의 시 〈미라보 다리〉 첫 구절은 살아오면서 별다른 이유 없이도 마음속에 자주 떠오르곤 했다. 아마 많은 사람들에게도 낯설지 않을 그 구절을 생각하며, 십 분 남짓 걸어서 버스 30번을 타고 자벨(Javel)에서 내렸다.
한때 나는 이 다리에서 멀지 않은 파리 16구의 샤흐동 라가슈 길(Rue Chardon Lagache)에 살았다. 그 시절 집에서 소르본을 오갈 때마다, 지하철 10호선을 타고 미라보 다리가 놓인 세느강 밑 지하터널을 수없이 지나쳤다. 그러나 정작 아폴리네르가 바라보았을 이 다리에 서서, 그 시와 나 자신의 시간을 마음 깊이 느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때의 나는 마음이 늘 바빴고, 내일은 오늘보다 길 것만 같았으며, 시간은 언제나 끝없이 이어질 줄 만 알았다. 나는 이 미라보 다리를 '언젠가 천천히 걸어보리라' 생각했지만, 그 '언젠가'는 오지 않았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다시 파리에 서게 되니, 미라보 다리는 오래된 기억의 문을 살며시 두드리며 조용히 나를 불러냈다.
다리 위로 오르니, 강 위 저만치 시뉴섬(L’Île aux Cygnes)이 떠받치고 있는 그르넬 다리와 자유의 여신상 그리고 먼 곳의 에펠탑까지 한눈에 이어져 보였다. 순간 오래 전의 파리가 숨결처럼 되살아났다.
미라보 다리는 결코 화려한 다리는 아니다. 파리의 다리 중에서 특별히 아름답다고 손꼽히지도 않는다. 멀리서 보면 그저 평범한 금속 재질의 초록빛 아치형 모습이 수수한 교량으로 눈에 비친다. 그래서 이곳을 기대하며 찾는 이들 중 적잖은 사람은 그 단출함에 다소 실망을 느낄지도 모른다.
'미라보'라는 이름 역시 시적 이미지와는 달리, 프랑스 혁명기의 정치가 미라보 백작(Comte de Mirabeau)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 이름 자체에 특별한 낭만이나 문학적 상징이 담겨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리 아래 두 개의 교각 양쪽으로 파리, 항해, 상업, 풍요라는 추상적 개념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한 네 개의 알레고리(allegory) 청동 조각상이 배치되어 있다. 그러나 그 조각들은 굳이 눈길을 끌기 위해 나서지 않으며, 그 누구도 붙잡지 않는다. 사람들의 시선은 오히려 다리 위에서 언제나 늘 강물의 흐름을 따라가거나, 강 저편으로 보이는 시뉴섬에 서 있는 자유의 여신상과 멀리 에펠탑의 그림자를 쫓게 된다.
하지만 어떻게 이런 평범한 다리가 세계인의 마음속에 특별한 장소로 남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단 하나,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1880~1918)의 시 때문이다. 그의 시를 거치며, 비로소 미라보 다리는 단순하고 평범한 다리를 넘어 기억과 감정의 장소가 되었고, 사랑과 이별 그리고 시간과 상실의 정서가 깃든 상징이 되었다. 시 한 편이 한 장소의 운명을 바꾸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다. 수수한 동네 다리는 시인의 언어를 통해 '의미의 영원성'을 얻고, 세월 속에서 하나의 상징이 되어 우리를 맞이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미라보 다리에는 아폴리네르의 시구 몇 줄을 새긴 작은 명판이 붙어 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사람들은 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강물과 시구를 번갈아 바라본다. 그 순간, 그들은 모두 자신의 시간과 세월을 떠올리며, 마음속에 '자신만의 미라보 다리'를 갖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시가 쉼표나 마침표 같은 구두점 하나 없이 흘러가듯 쓰여 있어, 호흡도 의미도 여운도 온전히 읽는 이에게 맡겨져 있다. 그리고 그 여백이야말로, 이 평범한 다리가 누군가의 내면으로 깊이 스며드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Le Pont Mirabeau (미라보 다리)
Sous le pont Mirabeau coule la Seine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른다)
Et nos amours (그리고 우리의 사랑)
Faut-il qu’il m’en souvienne (나는 그것을 기억해야 하는가)
La joie venait toujours après la peine (기쁨은 언제나 아픔 뒤에 왔었지)
Vienne la nuit sonne l’heure (밤이 오고 시간이 울리고)
Les jours s’en vont je demeure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 미라보 다리에 설치된 시 명판에 새겨진 구절 -
아폴리네르의 가장 유명한 시로 꼽히는 〈미라보 다리〉는 당시 그의 연인이었던 프랑스 화가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 1883~1956)과 이별하던 1912년 무렵에 쓰였다. 두 사람은 1907년쯤 파리 예술계에서 화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소개로 처음 만났다고 전해지며, 약 다섯 해 동안 각별한 연인으로 지내다 헤어졌다.
두 사람의 결별 이유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1911년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Mona Lisa) 그림 도난사건에 아폴리네르가 휘말려 약 일주일간 구금 조사를 받은 것이 두 사람 사이를 흔들어 놓은 중요한 계기로 보기도 한다. 결국 아폴리네르는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지만, 그의 사랑은 균열을 피하지 못했다. 예술적 교감과 함께 시작된 두 사람의 사랑은 열렬했지만, 서로 다른 성격과 삶의 속도가 결국 그들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다.
아폴리네르는 초현실주의의 선구자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기존에 없던 예술의 언어를 만들어 사유하려 했던 인물로, ‘쉬르레알리즘’(surréalisme, 초현실주의)과 색채의 리듬을 강조한 추상 회화를 가리키는 ‘오르피즘’(orphisme)이라는 신조어를 도입해 동시대의 예술 경향을 설명하려 했다. 그는 시는 물론 회화와 평론을 넘나들며 새로운 예술 언어의 세계를 열었다. 또 문자와 이미지가 결합된 ‘캘리그램’(Calligram)이라는 형식을 창안한 그는, 시집 《칼리그람》(Calligrammes, 1918)까지 내놓으며 시의 지평을 한층 넓혀 놓았다. 아폴리네르는 단순히 시인이라기보다, 여러 예술적 언어의 문을 넘나든 다채로운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짧았다. 아폴리네르는 마리 로랑생과의 이별 이후 1914년 말경 제1차 세계대전에 자원해서 참전하였다. 1916년, 그는 포탄 파편을 맞아 머리를 심하게 다쳤다. 이탈리아 출신이었던 그가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 것도, 바로 그 무렵의 일로 전해진다. 전쟁에서 얻은 머리부상의 후유증이 그를 늘 괴롭히며 몸을 쇠약하게 하는 가운데, 당시 유럽을 휩쓴 스페인독감을 이기지 못하고 정전을 불과 이틀 앞둔 1918년 11월 9일, 38세의 이른 나이에 삶을 마쳤다. 그의 묘소는 파리 20구에 있는 뻬흐라셰즈(Père-Lachaise) 공동묘지에 있다.
따뜻한 기쁨으로 채워졌던 사랑의 시간, 그 행복했던 나날들은 이제 강물처럼 저만치 멀어져 간다. 흘러가 버린 시간은 과거 속에 잠기고 말지만, 지난날의 추억과 상실의 아픔이 고스란히 아폴리네르의 가슴에 남았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 상실을 노래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그 너머의 '희망'을 묻는다.
아픔과 상실을 노래하면서도 "기쁨은 언제나 아픔 뒤에 왔었지"라고 말한 아폴리네르는, 허무 대신 기억에 남는 조용한 긍정을 택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 반대였을까. 그의 진심은 알 길 없지만, 그 의미와 해석은 이제 읽는 이 각자의 몫이라 여겨진다.
남겨진 자만이 건너야 하는 고요한 슬픔과 회복의 시간, 그는 그것을 시 속에 숨겨 두었을까. 강물처럼 흘러가 버린 지난날들, 그 사라짐의 감정은 한 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미라보 다리 위에서 나에게 닿는다.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를 되뇌다 보면, 한국 모더니즘 시인 박인환(1926~1956)의 〈목마와 숙녀〉와 〈세월이 가면〉이 자연스레 마음속에서 울린다. 그의 시에 가수 박인희의 청아한 음성이 더해지면, 강물을 바라보는 마음은 하염없이 어딘가로 젖어 들어간다. 서로 다른 언어와 시대의 시들이지만, 그 정서는 한 지점에서 만난다.
박인환은 1945년 광복 이후 그해 말부터 1948년 초까지, 서울 종로 3가 2번지 낙원동 입구에서 약 3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서점 마리서사(茉莉書舍)를 열었다. 이곳은 당시 한국 모더니즘 문인과 예술가들이 드나들며 사유와 언어를 나누던 공간으로 기억된다.
서점 이름인 '마리'가 아폴리네르와 사랑하고 이별했던 연인 프랑스 여류 화가 '마리 로랑생'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 이름 하나에 깃든, 시간과 공간을 건너온 겹겹한 감정의 잔향은 오래 남는다.
마리 로랑생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사랑과 이별 이후에도 예술로 자신을 지켜내려 했던 한 여성의 시간이 보인다. 아폴리네르와의 이별 이후, 그녀는 1914년 여름 독일 출신의 화가와 결혼해 독일 국적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결혼 직후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은 그녀의 삶을 단숨에 뒤흔들었다.
프랑스와 독일이 적국이 되면서, 그녀는 더 이상 파리에 머물 수 없었고 스페인으로 망명길에 오른다. 전쟁이 끝난 뒤 결혼은 결국 이혼으로 막을 내렸고, 그렇게 굴곡진 시간을 돌아 나온 마리는 1921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프랑스로 완전히 돌아와, 다시 자신의 예술을 이어갈 터전을 되찾는다.
그 시간은 어쩌면 박인환의 시 속의 시간과 닮아있다. 흘러간 것은 세월이지만,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은 기억과 자기 자신, 그리고 예술이었다. 박인환은 자신의 시 〈목마와 숙녀〉에서 "세월은 가고 오는 것"으로, 그의 마지막 시로 알려진 〈세월이 가면〉에서는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이라고 노래한다. 이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미련이라기보다, 흘러간 시간 위에 남아 있는 자아의 고백이었을지도 모른다.
미라보 다리에서 아폴리네르가 남긴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던 속삭임과, 박인환이 남긴 시구는 그렇게 서로 다른 시대와 장소에서 같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시간의 부피가 몸과 마음에 스민 나이가 된 지금, 다리 난간에 손을 얹고 강물을 바라보니, 내 삶의 궤적이 지난 세월에 투영되어 물빛으로 비쳐온다. 젊은 날의 나와 지금의 내가 한 자리에 포개지는 순간을, 나는 가만히 느낀다. 흘러간 것은 강물이고, 남아 있는 것은 결국 '나'라는 것을.
세느강은 멈추지 않고 흐른다. 이 흐름은 생의 관성처럼, 우리를 붙잡지 않은 채 스쳐 지나가는 시간의 강을 닮았다. 그러나 그 위에 놓인 미라보 다리는 따라 흐르지 않는다. 강물은 흘러가지만, 다리는 머문다.
이 단순한 대비 속에서 아폴리네르는 “날들은 가고, 나는 머문다(Les jours s’en vont je demeure)”라는 문장으로 자아가 머무는 자리를 남겼다.
물결 아래서는 사랑도 지나가고 젊음도 갔지만, 다리 위에 서 있는 ‘나’라는 존재는 그 흐름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다. 지나간 시간은 더 이상 손에 잡히지 않지만, 그 시간 속에 담겨있던 감정과 마음은 내 안 어딘가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었다.
미라보 다리 위에서 나는 새삼 그 사실을 깨닫는다. 시간은 흘러가고 나이는 더해지지만, 지난날의 마음만큼은 여전히 내 가슴 깊은 곳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세월이 흐르며 많은 것들이 멀어졌다.
그때의 나는 이제 시간 속에 사라진 존재이지만,
그 모든 기억과 감정은 여전히 내 안에서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다.
과거는 손에 닿지 않는 부재(不在)이지만,
그 부재를 기억하는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미라보 다리 아래로는 아폴리네르의 세느강이 여전히 흐르고 있다.
그 강물처럼 시간은 쉼 없이 흘러가지만, 나는 그 흐름을 잠시 멀찌감치 놓아둔 채 그 위에 조용히 서 본다.
그리고 그 비켜난 자리에서, 흘러간 시간이 남긴 결을 따라 지금의 나를 가만히 바라본다.
시간의 강은 흘러가고, 나는 내 안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