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광장, 소르본 광장

말 없는 오귀스트 콩트

by 나름펜

유럽을 다니다 보면 크고 작은 다양한 모습의 광장(廣場)을 자주 만나게 된다. 광장은 사람들이 모여 말하고, 논의하고, 행동하는 사회적 행위가 이루어지는 열린 공공의 자리이다. 이 광장이라는 개념은 역사적으로 유럽에서 발전해, 유럽인들의 문화적 성향을 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자어 그대로 풀이하면 '넓은 공간'으로 이해될 수 있어, 광장을 그저 널따란 곳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광장은 물리적인 크기에서 나온 개념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활동하는 기능적 공간에서 유래한다. 그래서 실제로 광장을 찾아가 보면, 예상과 달리 크지 않은 규모의 경우도 적지 않다. 프랑스어에서는 광장을 '장소'보다는, 사람이 차지하는 '자리'에 가까운 의미의 쁠라스(place)라는 말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파리에도 광장이라는 이름을 가진 크고 작은 장소들이 여럿 있다. 그중에는 파리에서 가장 규모가 큰 콩코르드 광장, 개선문이 자리한 샤를 드 골 광장, 그리고 프랑스혁명과 깊이 연관된 바스티유 광장처럼 크고 잘 알려진 명소들도 있다. 그러나 내 마음의 광장은 소르본 대학 건물 앞에 자리한 크지 않은 공간인 소르본 광장(Place de la Sorbonne)이다.

파리 대표 광장: 콩코르드 광장·샤를 드 골 광장·바스티유 광장(왼쪽부터)


소르본 광장과의 만남


파리 5구의 소르본 대학 건물 앞에 자리한 소르본 광장은 분수와 동상 하나, 그리고 몇몇 카페와 호텔, 상점들이 둘러선 크지 않은 평범한 공간이다. 이 광장은 생미셸 큰길(Boulevard Saint-Michel)과 맞닿아 열려 있다. 이 큰길은 센강 좌안 방향으로는 생미셸 광장으로 이어져 있고, 그 반대편인 남쪽으로는 도심 속 최대공원으로 파리 시민들이 사랑하는 뤽상부르 공원(Jardin du Luxembourg)과 만난다.


이곳 소르본 광장은 내게 애환과 상념의 시간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내 마음의 광장이다. 그래서 파리에 올 때면 나는 이곳을 적어도 한 번은 들른다. 아내에게도 이곳은 나와 함께 여러 번 찾으며 익숙해진 장소이고, 무엇보다 나를 만나기 전 나의 시간을 받아주던 학교 앞 공간이라는 이유로 유달리 마음에 들어 한다.

소르본 광장

하지만 내게 이 광장과의 첫 만남은 굉장히 낯설었, 불안한 기운이 머물던 장소였다. 후일에 내 지도교수가 된 '무슈 R'(Monsieur R)과 어렵사리 인터뷰하던 날이, 내 인생 처음 이 광장을 만난 날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와 이 광장의 한 카페에 앉아 진한 에스프레소에 각설탕을 넣고 저어 마시며, 짙은 긴장감을 풀어헤쳤던 기억이 다시 솟아난다. 그날의 다른 기억들은 연기처럼 흩어져, 이제는 남아 있지 않다.




오귀스트 콩트 동상을 앞에 두고


여행객들은 소르본 광장의 분수에서 소르본 대학 건물의 일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그런데 이 광장을 아무 말 없이 내려다보며 지키는 이가 있다. 프랑스 실증주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오귀스트 콩트(Auguste Comte, 1798~1857)다. 1902년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그의 상반신 흉상은 지금도 같은 자리에서 이 광장을 묵묵히 바라보고 서 있다.

소르본 광장 분수와 함께 보이는 대학 건물 모습(좌) · 소르본 광장의 오귀스트 콩트 동상(우)

프랑스에서의 대학은 학년도 단위로 1년씩 학교 등록을 하게 된다. 나는 당시 매년 9월 중하순쯤 새로운 학년도의 학교 등록을 마치고 나면, 이곳 소르본 대학 건물 내 박사 논문 과정 행정 사무실에 들르곤 했다. 그리고 건물을 나서면 어김없이 소르본 광장의 노천카페에 앉아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셨다. 그렇게 가을에 접어들 때마다, 일 년에 번쯤은 거의 연례행사처럼 그 자리에 앉아 나름의 상념에 잠기곤 했다.

9월 중순의 소르본 광장과 카페 풍경

나를 둘러싼 질문들은 어김없이 앞에 마주한 광장의 오귀스트 콩트 동상에게로 향했다.

새로운 학년도 1년을 잘 버틸 수 있을까?
언제 이곳에서의 학업이 전부 끝날까?
이번 신학년도에는 논문을 어디까지 써낼 수 있을까?
언제쯤 완전히 귀국하는 날이 올까?
그날은 정말 오기는 할까?
나는 이곳에서 무엇을 해내고 있는 걸까?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이 길을 잘 가고 있는 걸까?
소르본 광장에 있는 오귀스트 콩트 동상

개인적인 답답함이나 당시 목전에 놓인 일들이 하나의 축이었고, 삶의 존재론적 의미와 방향에 대한 질문들이 또 다른 축이었다. 이런 내면의 소리는 결국 내 커피잔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동상, 철학자 오귀스트 콩트에게로 향하곤 했다. 그러나 그는 매년 같은 자리에서 같은 물음에 언제나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나는 귀국했고, 내 손엔 박사학위증이 들려 있었다.




시간이 남긴 변화


그리고 어느새 한참의 시간이 흘렀고, 이젠 나에게 제법 긴 그림자가 생겨버렸다.

내 지난날들을 함께하는 이번 파리에서의 머묾에서도, 소르본 광장과 오귀스트 콩트 동상 앞에 다시 섰다. "겹겹한 시간은 이제 나에게 무엇일까"라고 묻지만, 오늘도 그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어쩌면 그것이 현자의 대답인지도 모르겠다.


그 옛날처럼 에스프레소 한 잔을 앞에 두고 노천카페에 앉았다. 다만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아내와 둘이 함께 앉아 있다는 것이다. 아직 학교는 방학 중이고, 여름휴가로 문을 닫은 카페도 보이며 휴가철 끝자락이라 관광객도 많지 않아 광장 주변은 다소 한산한 편이다.

8월 하순, 소르본 광장의 카페 풍경

소르본 광장 앞 생미셸 큰길은 여전히 변함이 없지만, 길가에 들어선 가게들은 예전과 달리 제법 부침을 겪은 듯하다. 광장 이쪽 편 모퉁이에, 박사학위논문을 제본했던 복사 가게는 예전 그대로다. 반가움이 앞선다. 반면 광장에서 가까운 생 미셸 큰 길가에서는, K-푸드 열풍 탓인지 한국식 쌀핫도그 가게가 눈에 들어온다. 예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변화가 이곳에도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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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르본 광장의 복사 가게 · 생미셸 큰길 풍경 · 한국식 핫도그 가게(왼쪽부터)


파리 팡테옹과 그 곁의 도서관


이곳에 오면 지척에 있어 오가며 자주 마주쳤던 파리의 팡테옹(Panthéon)과 생트 즈느비에브 도서관(Bibliothèque Sainte-Geneviève)이 떠오른다. 팡테옹은 프랑스 위인들의 묘지 역할을 하는 장소로, 넓은 팡테옹 광장(Place du Panthéon)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입구 위쪽 삼각형 부조 아래 새겨진 "위대한 사람들에게 조국은 감사를 표한다"라는 문구는 프랑스를 빛낸 선조에 대한 국가의 경의를 선명하게 전한다.

팡테옹 풍경(좌) _ 입구 상부의 헌사 문구(우): AUX GRANDS HOMMES LA PATIRE RECONNAISSANTE(위대한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조국)

이 팡테옹 광장 10번지에는 1851년 공공도서관으로 문을 연, 생트 즈느비에브 도서관(Bibliothèque Sainte-Geneviève)이 있다. 방학 중이라 도서관 앞은 한산하지만, 학기 중에는 입장을 기다리며 대기줄을 섰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내가 이 도서관을 드나들던 무렵, 이곳은 프랑스 배우 소피 마르소(Sophie Marceau)가 주연한 영화 《레뛰디앙트》(L'Etudiante, 1988)의 촬영지로도 알려져 있었다. 그녀는 1980~90년대 프랑스를 대표하던 배우로 당시 대중적 인지도가 매우 높았다. 국내에서는 이 영화의 OST 제목인《유 콜 잇 러브》(You Call It Love)로 개봉되었다.

팡테옹 광장 10번지, 생트 즈느비에브 도서관 출입구


소르본 광장을 뒤로하고 작은 길을 따라 팡테옹과 생트 즈느비에브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소르본 광장은 어찌 보면 차라리 작은 공간이다. 그러나 지난날 삶의 무게와 시간의 두께가 스며들어, 이곳은 단순한 크기로는 가늠할 수 없는 세월의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때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눴던 오귀스트 콩트 동상은 여전히 소르본 광장을 내려다보며, 아무 말 없이 무심한 세월을 지켜보고 서 있었다.


소르본 광장, 그곳은 내 삶이 머물렀고 지금도 마음속에서 가장 크게 남아 있는 광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