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 콘텐츠 기획자가 바라보는 메타버스 플로우
이전에 소설 등 서사 구조를 지닌 콘텐츠를 감상할 때면 빼놓지 않고 등장하던 말이 '메타'였다. 내 기억 속에 흔히 메타라고 표현하는 것은 '작품 속의 요소가 작품 감상자가 존재하는 실제 현실 세계와 연관되어 있는 것'을 말했다.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마블 코믹스 속 캐릭터 데드풀이다. 데드풀은 신기하게도 자신이 코믹스 속 캐릭터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만화 칸 사이를 누비거나 대사 풍선과 생각 풍선을 바꿔 쓰는 등 기기묘묘한 재미를 자아낸다. 이런 재미난 에피소드를 읽고나면 "우와, 나 이런 메타 좋아해!" 이렇게 외치게 된다. 만화책 속의 '가상 공간'과 만화책을 읽고 있는 '현실 공간'이 연관되는 것, 그래서 메타라고 표현한 것이다.
'메타버스'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보통 아직 정확히 사전적 정의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나온다. 어디에서는 이렇게 쓰였고, 또 어디에서는 저렇게 쓰인 단어라는 해설이 줄줄이 뒤를 잇는다. 대개 '확장 가상 세계'라는 의미로 통용되는 듯하다.
실무를 진행해 본 입장에서 느끼기엔, 우리가 실제 소비하고 있는 메타버스 관련 기술은 생각보다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AR 콘텐츠의 대명사처럼 되어 버린 '포켓몬GO'도 단지 캐릭터가 서 있는 배경을 현실 세계로 불러들였을 뿐, 현실과 상호작용하는 요소는 위치 정보(GPS) 정도다. 기존에 포켓몬스터라는 만화 및 애니메이션을 통해 스토리라는 맥락을 사전 공유한 유저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덕을 본 것도 있다. 이런 게 IP의 힘인가?
메타버스로 신설되는 여러 팀을 기웃거려도 보고 면접도 보며 느끼는 바는 이렇다. 많은 기업들이 메타버스 팀을 신설하긴 하는데, 이걸로 우리 기업에서 뭘 해야 할지 마일스톤을 아직 못 잡았다.
당연한 일이긴 하다. 아직까지 AR, VR 혹은 제페토와 로블록스 만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메타버스"라는 기술은, 좁은 의미에서 보자면 활용성이 낮다. 넓은 개념의 메타버스라면 이미 많은 SNS 업체들이 '온라인 상의 나의 공간을 기반으로 소통한다'는 점에서 이미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몰입형 경험이라던가 가상 공간의 구체적인 시각화 등을 통해 조금 더 좁은 개념의 메타버스를 활용하기 위한 각축전이 벌어지는 형국이다.
많은 기업들은 이미 자신들의 니즈를 해소하던 창구를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프로모션을 대대적으로 해야 하는 기업은 이미 여러 광고 채널을 가지고 있고, 구독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은 신규 유저를 창출하기 위한 여러 도구를 확보해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서 메타버스 서비스를 어떤 방향을 확충해야 기존 기업의 니즈를 더 확실하게 채울 수 있는가? 이를테면 F&B 업체는 메타버스를 활용해 어떻게 매출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 당근마켓도 좁은 의미에서의 메타버스 기술을 기어코 도입해야 할까? 모든 기업들에게 메타버스란 정말 효율적인 툴인가? 어쩌면 그냥 '메타버스가 흥한다'는 흐름 때문에 등 떠밀려 팀을 신설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해야 하는 게 아닐까?
길고 긴 산업 발전의 역사를 나는 잘 모르지만, 매체와 소통 기술의 혁명이 불어닥칠 때마다 기업들은 맨땅에 머리를 박고 죽거나 구멍을 뚫고 솟아오르는 등 사생결단을 겪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온라인 매장으로 이동할 때, 그리고 PC에서 모바일로 구매 환경이 옮겨올 때에도 그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한 기업은 모두 나자빠졌다. 후발주자로 뛰려면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니 그것도 운이 좋은 몇몇 기업에게나 통용되었으리라.
때문에 꼭 신설 팀으로서 메타버스 플로우에 대응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이 기술과 흐름에 대해 공부를 하긴 해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미래 장터가 그리로 송두리채 옮겨가면 어떻게 하려고? 물론 이 대규모 이사가 하룻밤 사이에 이뤄지진 않겠지만, 페이스북도 '메타'로 이름을 바꾼 마당에 빨리 발이라도 담궈두면 나쁠 것 없지 않겠는가.
이런 상황이니 나는 모기업에 메타버스 팀이 신설되었고, 모기업은 제페토에 입점했다는 다양한 뉴스에 가만히 고개나 끄덕일 뿐이다. 그러나 이렇게 생겨난 많은 중장기 목표와 단기 목표들 중, 실제 효과를 입증하고 기업 내의 소통 창구 혹은 메인 전략으로서 '메타버스' 기술이 살아남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그 와중에 나는 어떤 방향으로 커리어를 키워야 하는 걸까.
다양한 기술이 득세하는 메타버스 난세에 기획자의 고민은 깊어져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