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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

2부 장사의 시작 007) 사장을 꿈꾸다

by 우상권

군 전역을 한지 2년이 지났을 쯤에 나도 어엿한 브랜드 매장의 점장이 되어있었다. 그 당시 내가 근무했던 브랜드매장은 디○○라는 브랜드였다. 1020세대들에게 신드롬을 이끌어가던 브랜드였다. 그 당시 내가 운영하던 동성로점이 전국에 1등을 단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전국 2등 매장과도 거의 두배 가까운 매출차이가 날정도로 압도적으로 1등을 했다. 나는 날마다 매장 진열과 판매 그리고 매장 직원들의 판매교육을 철저히 시켰다. 이런 나의 노력과 성과가 본사대표님에게까지 소문이 났었는지 어느 날 본사에서 나를 초청하였다. 어떨결에 본사에 초청되어 본사 대표님과 인사를 나누는데 나에게 부탁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다름아닌 신상품 개발하는데 나의 의견을 듣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너무나 갑작스럽고 특별한 기회였던 것이다. 그날 2시간정도 샘플실에서 원단부터 로고위치까지 함께 본사 디자이너들과 함께 의논하였다. 나는 익숙함보다 새로움에 의견을 많이 제시하였고 로고위치도 평소 했던 것이 아닌 색다른곳에 두는 것과 티셔츠에 같은 원단이 아닌 면소재와 우븐소재를 복합적으로 해서 디자인하는 것과 후드티셔츠에 모자모양이 쳐지지않게 캡모양을 좀더 하드하게 만드는 것도 건의 하였다. 예상외로 나의 의견에 디자이너 분들께서 귀 기울여 주시고 최대한으로 반영해주셨다. 본사 디자이너 분들은 거의 대부분이 서울대나 홍대를 졸업한 대한민국 최고의 스펙을 가진분들 이었지만 현장의 의견을 많이 수렴해주셨다. 그리고 몇 달 후 신상품이 생산이 되어 매장으로 입고가 되었는데 나는 나의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의견을 제시한 것들이 실제로 너무나 많은 제품에 반영이 되어 제품으로 생산되어 나온 것이었다. 정말이지 너무나 신기하고 기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의 의견이 반영되어 나온 제품들이라 판매가 안 되면 어떻하지 라는 걱정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돌아온 첫 주말이 되자 여느 때처럼 동성로 거리에는 1020세대들로 가득차기 시작 했고 하나둘씩 매장으로 들어왔다. 맨 앞에 걸린 내가 직접 디자인한 제품들을 맨 먼저 보여주기 시작했고 고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너무나 다행이었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내가 디자인에 참여한 제품 중 거의 90프로가 단 일주일 만에 완판 되었고 한 시즌에만 3차생산과 완판의 기적을 이루어냈다. 그 당시 디○○의 브랜드 호감도가 최고였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겠지만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보람된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주말 바쁜 저녁 어느 날 바쁜 타임이 끝나고 소강상태의 잔잔한 분위기에 남자 어른과 여자아이가 손을 잡고 매장에 들어오셨다. 딱 보아도 엄마가 없어서 아빠랑 함께 쇼핑을 나온 것 같았다. 여자아이는 초등학교 6학년정도 되어보였고 아버지는 옷에 대해 무지한 것처럼 보였다. 우선 인사를 반갑게 하고 아이 옷을 보러 왔다는 아빠의 말을 듣고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서 아이가 좋아할만한 옷을 다정다감하게 골라주고 옷을 갈아입을때는 여자직원에게 에스코트하게 하였다. 그리고 아이에게 어울릴만한 옷을 차근차근 여러 벌 보여주었고 내가 골라준 모든 옷을 구매하셨다. 조금 먼발치에서 내가 아이와 대화를 나누며 장사를 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아이의 아빠의 눈빛이 조금 깊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계산을 하면서 아버지께서 낮고 정중한 목소리로 나에게 물으셨다. “혹시.. 여기 사장님이신가요? 라고 물으셨다. 나는 ” 아닙니다. 저는 여기에 점장으로 일을 하고 있는 직원입니다..“라고 말하며 애써 수줍은 웃음을 지었다. 아버지께서는 사실 아이 엄마가 일찍이 헤어져서 늘 아이 옷을 살 때면 내가 함께 따라왔었는데 여자아이라 참 쇼핑하기가 힘들었다며 점장님 같이 장사 하시는 분 처음 봤다면서 진심 가득한 칭찬을 해주셨다. 그러고는 자신의 매장을 운영하는 사장님이 아니면 이렇게 친절하고 열정있게 할수없겠다는 마음에 사장님인지 물었다고 말씀하셨다. 아마도 내가 장사를 25년동안 하면서 그때의 그 아버지의 칭찬이 가장 값지고 큰 칭친 이었다. 그 칭찬 때문에 그때부터 ”나도 어쩌면 이런 브랜드의 사장이 될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나만의 환상을 꿈꾸게 되었고 내 삶의 새로운 목표와 동기 부여가 생겨났던 것이다. 그리고 문득 장사를 처음 했던 19살 때 사장님과 카페에서 면담을 나누던 중 나의 꿈이 부자가 되겠다고 결심하게 된 그때의 다짐이 다시 나의 가슴에 진하게 새겨졌다. 그리고 그 순간 이후로는 나는 사장이었고 모든 것이 내 책임이라는 마음으로 열정을 다했다.

매출도 직원들도 고객님들도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스트레스가 넘쳐날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사장은 이모든 것을 감수하는 자라가 아닌가..라는 생각에 참고 또 참고 했다. 사장이 되겠다는 다짐을 하고난 이후는 관리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 책 구절의 한 글귀처럼 “자신이 가진 물건도 관계도 나의 삶도 이모든 것이 관리하면 그 가치가 올라가고, 관리하지 않으면 그 가치가 떨어진다” 는 것을 명심하며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직원을 관리하기 시작했고, 고객관리를 하기 시작했고, 재고 관리를 하기 시작했다. 직원관리는 각자의 역할을 직책별로 분명하게 정해주고 그 역할을 더욱 전문성 있게 하기 위해서 교육을 시켰다. 고객 관리는 자주 방문하시는 단골고객님과 한 번씩 오시는 고객님 중 큰 금액을 쓰고가시는 vip고객님과 머리부터 발끝까지 우리 브랜드만 구매하시는 충성고객까지 3분류로 나누고 수첩에다가 고객명단과 최근 구매하신 제품명과 싸이즈 그리고 구매금액과 그날 입고오신 인상착위까지 적어두었다. 그리고 리스트에 있는 고객님들을 신상이 들어올 때마다 신상제품이 어울릴만한 분들에게 개인적으로 사진을 보내드리고 입점을 유도했다. 반응은 너무나 좋았고 사진 문자드린 고객님들의 대부분이 흔쾌히 방문해주셨고 구매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재고관리는 그 당시 디○○라는 브랜드는 100%사입에 반품이 1도 되지 않는 유통구조였다. 재고관리를 잘하지 못한다면 판매매출을 많이 올리더라도 재고로쓰에서 손실을 보게 될 수도 있었기에 재고 관리에 더욱 힘쓰게 되었다. 재고가 많은 제품 상위5가지를 선정하고 그것을 하이라이트로 디스플레이를 하고 가장 먼저 그 제품을 권하고 판매하였다. 그리고 싸이즈가 깨진 제품들은 동일한 싸이즈끼리 행거에 모아두고 고객의 싸이즈를 체크해보고 싸이즈 행거에 가서 제품을 권하고 판매를 하였다. 그렇게 하다 보니 재고 관리는 대성공이었고 한 시즌이 지날 때 쯤이면 창고 안은 늘 텅텅 비울 수가 있었다. 그렇게 나는 어느 날 부터 사장처럼 일하는 직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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