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와서 3주째 주말이다.
1주째는 임시숙소에서 폭설과 함께 보냈고,
2주째는 게토 같은 집 청소하느라고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도 안 난다.
3주째 주말을 맞이하야 약간의 여유가 생겼는가 더러운 마당이 눈에 거슬렸다.
그래서 아침부터 세 남자에게 마당을 청소하라는 임무가 떨어졌다.
정원가꾸기가 버킷리스트인 첫째는 열정적으로 마당의 더러운 바닥돌을 벅벅 닦았고,
뭐든 형아가 하면 다 따라하고 싶은 둘째도 질세라 벅벅벅 닦았다.
화이트칼라, 금융권, 계산하기 좋아하는 브레인 남편은 조금 하는 시늉을 하더니,
어느 새 도망가 버렸다.
빵을 주었던 앞집 이웃에게 도움을 청했다.
정원은 처음인데, 와서 한 번 둘러보시고 팁을 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웃은 남편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쓰레기 분류하는 법, 못 쓰는 가구 처리하는 방법도 친절하게 알려주었고, 정원 창고의 물건들 중 고장난 것을 버려주었다. 곰팡이 가득 핀 정원 창고는 바꾸는 게 좋겠다고, 총체적 난국인 우리집 정원은 일단 전문가가 밑작업을 해준 후에야 정원가꾸기가 가능할 것 같다고 충고해주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 집안을 들여다보더니,
뭐 필요한 것이 없냐고 가구가 필요하면 빌려주겠단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더니, 귀신의 집에 사는 내가 불쌍해서 천사가 내려왔나보다. 나 인생 잘못 살지는 않은 거야. 다행이다.
난민 신세인 우리집에 원조가 들어왔다.
사택 식탁의자는 쓰레기장으로 직행하고, 멋진 의자 네 개를 빌려왔다.
전등도 두 개 받았다.
러그와 서랍장도 빌려준다고 했는데, 너무 염치가 없는 것 같아 몸둘 바를 모르겠다.
땡큐하고 받으면 되는 건가.
한국사람은 그지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이미지 관리해야 하는데, 나 이사박스 185개 배로 부친 여자인데…
의자 가지러 이웃집 갔다가 너무 구경났네 진상인 것 같아서, 동물원에 간다고 하고 서둘러 나왔다. 독일 동물원에 가니 동물들 먹으라고 3유로짜리 당근봉지를 판다.
와, 동물들도 우리랑 같은 걸 먹는구나.
코끼리한테 당근을 던져주니 코끼리가 능숙하게 땅에 떨어진 당근들을 흡입한다.
3유로 순삭이다.
심지어 래서팬더는 마트에 파는 연두색 포도를 사육사가 진상해드린다.
독일 동물 복지 수준이 인간보다 나은 것 같다.
집에 오니 옆집 작은 아들이 모닥불을 피우고 있다.
우리 첫째가 신이 나서 구경하러 갔다.
나나 남편이나 캠핑 사양족이라 한국에서 캠핑 한 번 데려간 적 없다.
우리 아들 생전 처음으로 불멍을 했다.
형아가 마쉬멜로우를 구워보라고 꼬챙이에 끼워준다.
어떻게 구운 마쉬멜로우가 완벽한 마쉬멜로우인지 소상히 설명해주는 옆집 작은 아들이 참 참하다. 잘 구워진 마쉬멜로우를 크래커 사이에 초콜릿과 함께 끼워 먹는다고, S’more라고 한단다.
우리 아들은 따뜻한 모닥불 앞에 앉아 쫀득한 머쉬멜로우와 달콤한 초콜릿과 바삭한 크래커의 환상 콜라보를 맛보았다. 독쫀쿠라고나 할까.
첫째가 TV로만 보던 걸 처음 해본다고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보니 살림한다고 쩌들어 있던 엄마 마음도 사르르 녹았다.
마당이 있으니 이런 낭만이 가능하구나.
꿈 같은 봄밤이다.
그래, 이런 거 해보려고 우리가 닭장 같은 아파트 숲을 떠나 독일로 온 거지.
옆집 마당에 놀러도 가고,
밤새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머쉬멜로우도 굽고,
반짝이는 별도 보고 저녁 바람 냄새도 맡아보려고,
지구 반대편으로 왔음을 새삼 생각했다.
우리 아이는 이제 옆집 형아랑 놀고 싶어서 영어를 말하고 싶어지겠지.
마당에 꽃도 심고, 텐트도 치고, 동생하고 둘만의 캠핑을 하겠지.
마당 청소랑 정원 가꾸기는 멀고 먼 여정이지만,
3년 후 우리가 떠날 때 쯤에는
우리 집 마당도 친구를 초대해서 불멍할 수 있는 아기자기 예쁜 정원이기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