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st Do It!

by 고도리 햇반

바야흐로 봄이 왔다. 독일에도 개나리와 벚꽃이 피고, 햇살이 따스해졌다.

거리 곳곳에, 이웃집 마당에, 화사한 꽃과 촉촉한 새잎들이 아름답다.

처음 맞는 독일의 봄이 정답게 느껴지면서도, 우중충한 우리집 마당에는 봄이 왔다가 머물지 않고 도망가 버릴 것 같다. 송충이 같은 개암나무 꽃들로 뒤덮인 이끼 덮인 마당, 곰팡이로 얼룩지고 쓰러질 것 같은 창고와, 부서진 울타리, 그리고 울퉁불퉁 튀어나와 걸려 넘어지기 일쑤인 보도블럭길이 볼썽사납다.

얼마나 오래 방치되어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사택이라 좋을 줄 알았는데, 이번 독일행 최대 뒤통수는 이 집이다.

내 집이 아니다, 3년이면 떠난다는 생각, 회사의 절차를 밟아야 결제가 가능하다는 부담이 사택을 이렇게 귀신의 집으로 만들어버렸다. 불편하고 싫었겠지만 우리 남편 회사분들은 선비들이라, 독특한 초능력을 갖고 있다. 형이상학적 세계로의 유체이탈 능력.

나에게 없는 그 초능력 때문에, 나는 이 집을 뒤집어 엎고 있다.

나는 그 분들에게 없는 능력을 가졌으니까.

내 초능력은 나이키 초능력이다. Just Do it!

그래서 토요일 아침부터 우리 남편은 송충이들을 청소하자는 마누라의 성화에 시달린다.

경영학과를 나온 남편의 사고체계는 나와는 무척 다르다. 일단 효율성, 가성비가 가장 중요한 가치다.

송충이들은 청소해봤자 다시 또 떨어질 것이기 때문에 청소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죽을 건데 왜 사냐”고 응수하는 마누라를 둔 탓에 하는 수 없이 토요일 아침마다 정원 청소에 내몰리게 되었다. 피곤해서 쉬겠다고 말하면, “운동을 안 하니까 피곤하지. 몸 좀 움직여!”라고 구박하는 마누라. “나는 회사 다니니까 주말에 쉬어야지”라고 말하면 “나는 놀았니” 라고 대꾸하는 마누라. 말로는 이길 재간이 없다.

송충이 청소 다음은 재활용 쓰레기장이다. 지하실에 아직도 쌓여있는 20년 묵은 각종 쓰레기들을 버리러 가잔다. 그만큼 치웠으면 이제 된 거 아닌가. 이 정도면 깨끗한 것 같은데, 너무 예민한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내색이라도 비쳤다가는 남의 일인데도 발 벗고 도와준 앞집 트라이슬론 독일아저씨랑 비교 당하며 본전도 못 찾을 게 뻔하다. 마누라가 침을 튀기며, 독일 츤데레 아저씨의 미담을 한국 남자 별로론으로 일반화하기 전에 얌전히 가는 게 낫다. 마지못해 쓰레기를 분류해서 버리고 있자니, 오며 가며 한 소리 하는 마누라. “어이구, 오만상. 어차피 해야 하는 거 그냥 즐겁게 하지.”

쓰레기장이 끝나고도 일정은 계속된다.

이번에는 정원에 심을 식물을 사러 Mauk라는 가드닝 전문 쇼핑센터에 갔다.

아이들 모종삽, 정원용 장갑, 정원용 부츠, 그리고 꽃나무들. 꽃나무가 하나에 80유로?!! 지겨움에 반쯤 감겼던 눈이 휘둥그레해진다.

정당한 짜증포스를 전방위로 뿜어내며 왜 이런 데 돈을 쓰는지 불평하기 시작하는 남편.

정원 가꾸기가 이렇게 비싼 취미(?)노동인 줄 몰랐던 나는, 남편 시스템에 과부하가 오는 것을 보고 일단 꽃나무 예산을 좀 삭감한다. 남편의 피로함+짜증에 아이들이 눈치를 본다. 하지만 나는 나이키니까. 프로젝트는 계속된다.

벌써 늦은 오후시간, 바람도 불고 추운데 아이들은 신났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잡초부터 열심히 뽑는다. 꽃나무가 잘 자라려면 잡초를 싹 뽑아 깨끗하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시간이 넘게 잡초를 뽑으며 지렁이랑 놀고 있다. “안녕하세요, 미스터 지렁이님”이라고 형아가 인사하면 동생이 깔깔댄다. 둘은 지렁이가 모종삽에 다치지 않도록 소중히 옮겨준다. 지렁이 찾다가 땅에 코를 박게 생겼다. 행복의 최고경지라는 몰입이다. 개미굴도 발견하고는 개미집이 무너진다며 한 걱정이다. 구덩이를 열심히 파면서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니 남편과의 신경전으로 쌓였던 피로가 사르르 녹는다. 역시, 내가 맞았어!

집에 들어가 목욕하고 기분이 좀 좋아진 남편이, 아이들이 예쁘게 심어낸 꽃나무를 보고 슬그머니 칭찬해준다. 이미 의기양양한 마누라는 확인사살을 날린다. “토요일은 그냥 정원데이라고 생각해.”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걸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우리 남편, 중년의 나이 탓인가, 아니면 강남출신이라 그런 것인가 나의 연구과제다. 무언가 몰입해서 즐기기 보다는, 항상 한 발 물러서서 “이것을 할 필요가 있는가”를 따지기만 하는 남편. 아이들한테 당연히 재미없는 아빠일 수밖에 없다. 아이들의 즐거움에 공감하는 능력이 0인 남편. 놀기무능력자 아빠를 둔 우리 애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놀기무능력자도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그 다음 날인 오늘 일요일은 클라이밍 센터에 갔다. 일요일에 집에 있지 클라이밍은 뭐하러 하느냐, 너무 멀다(차로 15분), 공원에서 가서 놀면 되지(안 놀아줌), 투덜투덜 짜증짜증이다. 남편의 클라이밍 센터 가기 싫은 심리는 경영학적 관점에서 이해할 만했다. 빵집에서 방금 산 따끈따끈한 4.5유로짜리 빵을 잃어버렸고(귀신이 곡할 노릇), 테니스장 코치가 첫째가 쓸 라켓을 빌려준다고 갔는데(본인 영어 탓) 사실은 매매여서 예정에 없던 35유로가 지출되었다. 오늘 이미 예상지출을 초과한 것이다. 중동전쟁 때문에 환율이 최고점이라 예민모드군. 하지만 이해는 이해고, 아이들은 놀아야 한다. 나이키 마누라는 결국 그를 멱살캐리해서 끌고 갔다. 남편은 본인 빼고 우리 몫을 지불하고는 유체이탈 능력을 시전한다. 하지만 아이들과 내가 서로 질세라 즐겁게 클라이밍하는 모습을 보니, 효용성 측면에서 비용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나보다.

“5회권 가격을 3회권 가격에 살 수 있는데, 첫 방문에만 혜택이 있대”라며 보여주는 남편. 독일어 잔뜩인 안내판에서 대발견을 했다고 좋아하는 남편. 진짜 일관성 있는 남자다. 내가 하고 싶은지 아닌지보다, 굿딜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천상 경영학과 출신, 계산에 강한 강남 남자다. 마케팅에 당하는 거라고 맨날 놀려도 그가 이런 걸 챙기지 않으면 우리집 살림이 안 굴러가겠지. 잘했어! 너무 좋다!!! 아이들은 아빠의 이 숨은 활약을 몰라서, 아빠를 홀대한다. 그래 우리 남편의 초능력은 행정능력인데, 아이들이 알아주기는 너무 어려운 으른능력이다.

그래서 우리 셋은 신나게 클라이밍하고, 우리 남편은 3회권 가격으로 5회권 끊고 모두가 만족스럽게 귀가한 주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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