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온 지 한 달이 되었다. 긴급했던 항공화물 구호물품도 다 조달되고, 이삿짐이 오는 5월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없다. 변기교체나 가구구입은 독일스럽게 하세월이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는 수밖에. 일단 급한 청소는 다 했고, 배고프다고 삐약거리는 아들 두 놈 입에 뭐라도 넣어주느라 도시락도 싸고 요리실력 강제 업그레이드 중인데, 그것도 이제 좀 할 만하다 싶어 한숨 돌렸다. 심지어 어제는 현장학습 가는 첫째를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김밥도 쌌고, 손목 수술한 천사이웃 빵여사를 위해 잡채도 했다. 나 요리 좀 하네? 하면서 오버우어젤 지역에 한국의 맛을 좀 전파해야 하나 자뻑에 빠졌다. 지난 주 시작한 독일어 강좌 친구들도 마음에 들고, 매일 하던 운동도 재개하고, 집수리나 하면서 이제 좀 평온함을 누려볼까 했는데,
하늘에 지나가는 비행기를 볼 때마다 첫째가 운다.
“엄마, 나 한국 가고 싶어.”
생활이 겨우 안정되니, 꾹꾹 눌러 놨던 정신적 위기가 수면에 올라온 것이다.
아이의 눈물을 보고 나는 당황했다.
오마이갓…
그 동안 첫째는 학교에서도 한국친구들과 놀고 싶어서 목 마른 사슴처럼 헤매였다. 한국 친구랑 같이 등교하거나 놀이터에서 만나면 너무 행복해하고, 학교에서 외국 여자애들이 호기심에 쫓아다니면 부끄럽고 싫다고 질색했다(대체 왜?). 학교 점심도 맛없다고 불평하며, 도시락 싸달라고 졸라댔다. 한국음식을 보면 이모님의 음식이 더 맛있다고 투덜댔고, 다정했던 한국 선생님들이 보고 싶다고 종종 말했었다. 그럴 떄마다, 할 일 많아서 비상모드인 목표지향-과업달성우선주의 엄마는 귓등으로 들어 넘겼다.
하지만 자고로 감수성이 예민한 첫째에게 향수병이 온 것이다. 쉬는 시간에, 놀이터에서, 한국 친구들과 놀아서 즐거웠던 하루를 엄마에게 이야기하면 엄마는 왜 외국애들하고 안 놀았냐고 핀잔만 준다. 한국 친구들과 주말에 놀고 싶어서 계획을 세워달라고 요청할 때, 나는 한숨이 나왔다. 내가 너 독일 와서 한국친구들하고 놀라고 이 고생 중이겠니. 하지만 나의 한숨과 못마땅한 말투가 아이에게 생각보다 더 큰 상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다.
“엄마도 옛날에 미국에 유학 갔을 때 할머니할아버지 보고 싶어서 울었어”
그래, 나도 그랬었지. 당장 비행기 예약해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이 들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 때 엄마는 혼자 있어서 가족들이 보고 싶었어. 그런데 기특이는 엄마, 아빠, 다행이랑 같이 있잖아. 그리고 한국 돌아갈 때쯤에는 한국 가기 싫다고 울 껄? 이렇게 마당도 있는 집에 살고, 자연에서 뛰어 놀다가, 시멘트숲에 공기도 안 좋은 서울 가서 학원 가면 싫을 텐데.”
아이를 안아주고 달래주었지만, 섬세한 아이 마음을 보듬기에는 내가 턱없이 둔감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잖아도 귀신의 집에 들어와 살면서, 툭하면 무섭다고 다른 층에 갈 때 같이 가자고 하는 3학년 아들에게 “뭐가 무서워”라고 핀잔만 줬던 나.
나도 기특이처럼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였었다. 어린 시절, 집안 곳곳에 걸린 거울이 무서워서 바닥만 보고 화장실에 갔었고, 계단의 어두컴컴한 구석에서 뭐가 튀어나올까 두려워하며 올라갔었다. 미국에 처음 여름방학 어학연수 갔을 때 미국 아이들이랑 놀면서도 어설픈 영어가 부끄러워 말 한 마디 못하고 앉아있었고, 이후 대학교에 다닐 때는 문득 문득 찾아오는 외로움에 고통스러워했었다. 센치해지는 저녁나절에 엄마나 친구들에게 연락하면, 바쁜 아침인 서울에서 일상에 쫓기고 있는 그들에게 서운함만 느끼고 전화를 끊었었다.
그래도 이겨내야 해. 경험해 본 입장이라 더욱 이런 생각이 드는 걸까? 아니면 엄마가 되어 외국에 왔기 때문에 마음가짐이 다른 걸까?
3년이라는 주어진 시간 내에, 아이들이 영어와 독일어를 장착하고, 유럽 곳곳의 문화유적지를 탐방한 후, 글로벌 시민의식과 자연 속에서 운동하는 건강한 생활습관을 함양해서 돌아가야 한다. 엄마는 향수에 젖어있을 틈이 없다. 3년이 길어보이지만, 짧다고 하면 짧은 시간인 것이다. 우리가 독일에 있는 기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우리가 독일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은 다 누리고 돌아가야 한다는 엄마의 마음이 향수병을 금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비행기만 보면 눈물이 나는 아이 마음에 공감해주기가 김밥도시락 싸기보다 더 힘들다. 귀신의 집에 살면서도 유령보다 더러운 세탁기가 더 무서운 엄마에게는.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에 씁쓸함이 차오른다. 나도 우리 아들처럼, 초봄에 싹트는 새싹 같은 촉촉하고 여리여리하고 싱그러운 마음을 가졌었더랬지. 세월과 경험과 함께 닳고 닳은 이 어른의 마음으로 아이 마음의 새싹을 짓밟으면 안 되는데. 새싹을 소중히 가꿔줘야 한다는 과업이 귀신의 집 전면 재수리업무보다 더 무겁게 느껴지는 새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