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와 천사

by 고도리 햇반

독일에서 쓰레기 버리기란 쉽지 않다. 일단 분류가 까다롭다. 파란통은 종이, 회색통은 일반쓰레기, 갈색통은 음식물과 정원쓰레기인데, 뚜껑이 안 닫히면 안된다. 쓰레기 처리비용(세금)을 낸 만큼만 배출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노란색 봉투에는 플라스틱과 포장용지들을 버릴 수 있다. 이 봉투만 양이 제한되어 있지 않다. 배출 날짜가 정해져 있는데 2주에 한 번 정도라서 집안에 쓰레기가 쌓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내가 사는 귀신의 집에는 쓰레기가 지층을 이루고 있다. 20년동안 안 버린 쓰레기들이 지하실에, 정원에, 집 곳곳에 가득하다. 부서지고 때에 쩔은 다이슨 청소기, 대가리가 부러진 잔디깎이, 송아지를 넣고 끓여도 될 솥단지, 곰팡이 냄새 그윽한 이불, 기름때와 먼지로 코팅된 냄비며 후라이팬 더미, 1990년대산 밥솥, 손잡이가 녹은 물병, 잘 보존되었으나 쓸 수 없는 샹들리에, 엉덩이받이가 다 찢어진 의자…어떻게 이런 것들하고 같이 살았었는지, 앞서 거주했던 전임자들이 이상한 것인가, 이걸 다 들어내고야 말겠다는 내가 이상한 것인가 혼란스러운 지경이다.


EMS로 온 한국에서의 박스와 포장재까지 더해져 정원도 쓰레기장이다. 뒤꼍에 가득 쌓인 박스와 포장재, 넘쳐나는 쓰레기들이 나의 신경을 계속 긁어댔다. 심지어 비까지 온다. 박스가 물을 잔뜩 먹어서 못 쓰게 되었다. 비 오니까 다이슨을 정원창고에 가져다 놓으라고 남편에게 말했더니, 어차피 버릴 건데 그렇게까지 신경 쓸 필요 있냐고 한다. 아, 내가 과민한 것인가.


천사앞집(빵과 소금을 가져다주신 이웃집을 앞으로 이렇게 부르기로 하자) 아저씨 말로는 다이슨 같은 전기제품이나 못 쓰는 의자 같은 것은 가까운 재활용센터에 갖다 주면 된다고 한다. 그런데 토요일에 비가 오니, 남편은 다음 주말에 하자고 한다. 으으, 몸 속에 쓰레기독소가 쌓여가는데!!!!


그런데 천사앞집 아저씨가 오늘 자기가 시간이 있으니, 같이 재활용 센터에 가자고 한다. 죄송스러워서, 우리 차로 가면 된다고 사양했는데, 자기가 큰 밴이 있으니 걱정말란다. 진짜요? 정말요? 이렇게 도움 받아도 되는 건가 싶다. 아침 9시에 아저씨가 나오시더니, 이따 11시에 만나자고 한다. 출근 전 남편더러 지하실에 있는 솥단지랑 램프가 든 상자들을 올려다 놓으라고 했다. 남편은 이렇게 많이 부탁해도 되냐고 걱정하며 출근했다.


11시에 아저씨랑 뒤꼍의 의자들, 고장난 다이슨 등을 옮기기 시작했다. 솥단지랑 램프도 아저씨가번쩍번쩍 들어 옮겨주신다. 트라이슬론을 즐겨하시는 몸짱이다. 비에 옴팡 젖은 상자도 갖다 버리잔다. 아저씨 차가 더러워질텐데요. 괜찮아! 부지런히 날랐다. 지하실에 더 있어? 네, 근데 너무 많아서요. 저희가 나중에 할게요. 지금 갖고 와, 차에 자리 남으니까. 지, 진짜요?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커다란 밴에 쓰레기를 가득 채웠다. 무거운 냄비랑 후라이팬이랑 옹기를 옮기다가 미끄러져서 옹기도 깨졌다. 하지만 발딱 일어났다. 독일 와서 제일 신났다.


그렇다, 깨끗한 걸 좋아하는 내가 쓰레기랑 동고동락이라니, 그 동안 잠이 왔겠는가. 내 인생에 이런 더러운 시절이 있었나, 내가 미국집, 일본집도 살아봤지만 이 귀신의 집은 내 인생 최악의 집이다. 이 정도면 치웠으면 되지 않았냐고, 남편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자꾸 나를 과민증 환자로 만들었는데, 나만큼 깨끗한 걸 좋아하는 천사가 내려와 이렇게 나를 도와주니까 얼마나 감사하고 기뻤는지!! <사운드 오브 뮤직>의 노래가사가 생각났다. “I must have done something good”


아저씨랑 쓰레기장에 가서, 한 차 가득한 짐을 종류별로 분류해서 버렸다. 젖은 상자를 커다란 컨테이너에 버리면 기계가 콰지직 눌러준다. 그 쾌감이란!!!! 말모말모. 냄비뚜껑이 떨어지면서 유리가 와장창 깨지는 소리, 후라이팬이 시끄럽게 부딪히는 소리가 음악처럼 감미롭다. 나 변태인가. 그 와중에 65살 먹은 우리 이웃집 천사 아저씨는 전기밥솥도 박력있게 휙 던져 버린다. 너무 멋있다. 역시 트라이슬론 금메달 수집가는 달라~~ 눈에서 하트가 나온다.


내 인생 최대의 위기는 이렇게 인생 최대의 인연이 되었다. 아저씨랑 오늘 같이 쓰레기 옮기고 버리면서 오가는 길에, 독일 사람들이나 사회에 대해서 아저씨의 생각을 듣고, 운동을 어떻게 하는지 서로 이야기 나누면서 친해지니, 전화위복,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등 아는 말 다 생각났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으면 좋을까? 아저씨에게도 우리 가족이 소중한 인연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열망이 마음 속에 피어났다.


아저씨한테 무한감사를 표하고 쿨하게(이것도 멋있따) 헤어진 후, 누가 봐도 우리 블록에서 가장 잘 가꾸어진 집주인하고 마주쳤다. 그 부부를 깔끄미 이웃이라고 하자. 이미 한 번, 그 집의 청소상태와 정원관리상태에 대해 내가 칭송을 한 적이 있는지라, 깔끄미 이웃이 반갑게 말을 건다. 아침에 봤는데, 뭐 버렸어요? 네, 앞집 아저씨가 도와주셔서 많이 갖다 버렸어요. 그 집은 20년 동안 아무도 관리를 안 했나봐요(20년이라고 먼저 말함). 집이란 건 매일매일 관리를 해줘야 하는 건데. 제가 열심히 하고는 있는데, 저더러 너무 요구한다고 하네요. 아니에요, 더 요구해야 돼요!


그렇다, 다른 이웃집들도 우리 집 상태를 싫어했던 것이다. 엉망인 정원, 꾀죄죄한 창문, 쓰러져가는 창고 이런 것들이 이 블록의 티였겠지. 그렇지만 친하지도 않으니 뭐라고 하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나타난 내가 계속 뭔가 쓸고 닦고 버리니 궁금하기도 하고 앓던 이가 빠진 듯 시원하기도 한 것 같다. 아마 나는 이미 우리 구역의 스타인지도 모른다. 저 집이 드디어 관리 좀 받겠네. 저 여자가 집 하나 살리는 거야.


오늘 이렇게 뿌듯하고 행복한 와중에, 딱 하나 아쉬운 점은 아저씨랑 기념사진을 못 찍었다는 것이다.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은 오늘인데, 뻔뻔하게 사진 찍자고 요청을 할 걸 잘못했다. 현장감 있는 사진을 남기지 못한 것에 대해 PD로서 자격미달이라며 마음 깊이 반성하며 잠을 청해본다. Gute Nacht, Bernh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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