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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훈 Aug 20. 2021

은하영웅전설:SF에서 철학, 정치가 차지해야 하는 범위

feat: 한 때 은영전에 열광했던 사람들은 보세요

은하 영웅전설, 나의 중2병 시절을 채워준 소중한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민주주의와 군국주의 국가들의 대립, 여러 신념을 갖고 행동하는 캐릭터들, sf 버전 삼국지라 부를 수 있는 장엄한 스케일, 무엇보다도 한 번 빠지면 빠져나올 수 없는 양 웬리라는 캐릭터 등등 중2병 시절의 나의 허영심을 채워주기에 충분한 소설이었다. 그런 은하 영웅전설을 21살 먹고 다시 1권을 읽는 순간 가끔 몇몇 소설들은 특정 나이대에 읽어야만 명작이라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인간실격 이후로 다시 한번 깨달았다. 장대한 스케일에 비해 말이 되지 않는 설정들 지나칠 정도로 없다고 느껴지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성의 변화, 지나치게 말이 되지 않는 양 웬리의 전략 등등 다시 읽어본 은영전(지금부터 줄여서 은영전이라고 부르겠다.)은 그렇게 열광할 수준이었나 싶은 수준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은영전의 주제라고 부르는 민주주의와 군국주의와 대립 그리고 민주주의의 가치라는 부분도 잘 쳐봐야 똑똑한 고등학생, 혹은 대학생들의 토론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러 SF들이 정치나 철학 등등을 주제로 끌고 온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물론 예외도 있지만 작품의 재미를 침범하지 않은 수준에서 가볍게 끌고 온다. 만약 스타워즈에서 (물론 스타워즈를 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민주주의의 붕괴하는 과정이나 군국주의의 문제점이라는 정치 부분을 더 확대시켜 라이트 세이버 전투씬이나 우주전보다도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한다고 치자. 그렇게 한다면 스타워즈란 작품의 평이 더 올라갈 수는 있다. 하지만 스타워즈란 작품의 본질인 화려한 우주전, 거대한 스케일 등등이 붕괴되고 무엇보다도 스타워즈가 현재만큼 거대한 인기를 끌 수 있었을까? 이는 비단 스타워즈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스페이스 노이드와 어스 노이드의 갈등을 다룬 건담도, 문화의 위대함이란 주제를 다룬 마크로스도 결국 화려한 우주전, 거대한 로봇 등등의 가장 중요한 본질을 침범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여러 철학들을 다룬다. 몇몇 사람들은 2001 스패이스 오디세이나 솔라리스 같은 작품들은 뭐냐라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스패이스 오디세이 시리즈나 솔라리스 같은 작품들은 대중성, 오락성 보다도 작품성에 치중한 작품이다. 은하 영웅전설은 작품성보다도 대중성, 오락성에 더 치중한 작품이다. 그런 은영전이 철학, 정치 부분에서 리얼함이나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결국 은영전도 우주전, 작품의 스케일에 더 큰 중점을 둔 작품이니깐.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은영전이란 작품에 실망을 품고 더 이상 읽지 않을 필요는 없다. 은영전은 민주주의와 군국주의에 대립이라는 정치적 주제를 빼고도 나름 뛰어난 SF 소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바로 캐릭터성 때문이다. 방금 전에 은영전의 캐릭터성의 변화가 적다고 깐 주제에 갑자기 캐릭터성을 칭찬하느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은영전은 캐릭터를 만들 때 캐릭터성을 잘 잡은 좋은 경우중 하나이다. 물론 은영전에도 겹치는 캐릭터성은 있다. 대표적으로 은영전의 캐릭터들은 애처가 혹은 비혼 주의자로 나뉜다는 점등 등이 있긴 하지만 은영전의 캐릭터들은 다양한 인간군상들을 보여준다. 또한 캐릭터성의 변화가 적다는 것이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천재 전략가이나 승진에는 관심 없고 역사가를 꿈꾸며 여러 명대사를 남긴 양 웬리, 자신의 누나를 데려간 황제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자기 스스로가 황제가 된 천재 라인하르트 폰 로엔 그람, 라인하르트의 영원한 벗이자 라인하르트를 위해 죽은 지크프리트 키르히 아이스, 동맹군의 에이스이자 최고의 격추왕 그리고 많은 여자들을 홀린 올리비에 포플렝, 백병전의 달인이고 양 웬리에게 황제가 되라고 계속해서 유혹했으나 결국 양 웬리의 심복이 된 발터 폰 쇤코프 등등 매력적인 주연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캐릭터성이 어디 주연뿐이겠는가. 은하 제국의 황제 라인하르트의 항복 제의를 거절하며 민주주의는 좋은 친구를 만드는 것이지 좋은 충신을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명대사를 남긴 알렉산드르 뷰 코크, 서로에게 라이벌이었던 미터마이어와 로이엔탈, 그야말로 기생충 같았던 정치인이면서도 마지막에 반전을 선사해준 욥 트뤼 니히트, 평소에는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꾼이었으나 나라에 위기가 찾아오자 전시 지도자로 각성한 월터 아일 렌즈, 지구를 위대한 어머니로 모시고 다시 지구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지구교도들, 페잔 자치령의 정치가이자 여러 가지 모략을 펼친 아드리안 루빈스키 등등 얼마든지 쓸 수 있을 정도의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은영전에는 존재한다. 


 내가 은영전에 열광했던 이유도 은영전의 정치적, 철학적 부분뿐만 아니라 이런 캐릭터성도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내가 은영전을 꽤 괜찮은 소설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설정이 조금 말이 안 되면 어떤가. 사람이 만든 창작물에는 결국 설정 오류란 게 존재할 수밖에 없다. SF라면 더더욱. 대표적으로 스타워즈만 보더라도 루산 리포메이션이란 땜빵 설정이 존재하고 건담에도 건담의 화력이 말이 되지 않아 팬들이 직접 만든 단위가 존재한다. 결국 SF, 특히 스페이스 오페라에서 철학은 작품의 스토리를 돋보이게 하는 존재이지 작품의 존재 의의가 아니다. 은영전 또한 작품의 스토리를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철학을 넣은 나름대로 잘 쓴 소설이라고 볼 수 있겠다. 


번외

 몇몇 사람들은 은영전이 여성 캐릭터의 등장 비율이 적어서 여성 차별적이라던가 엘리트들만이 활약한다는, 민주주의의 기반인 서민들의 활약상이 적다는 비판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은영전에서 여성 캐릭터 비중이 남성 캐릭터 비중보다 적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은영전에도 멋진 여성 캐릭터들은 등장한다. 그것도 5명씩이나. 우선 라인하르트가 우주를 정복하는 동기를 주고 라인하르트가 끝까지 의지한 안네로제, 라인하르트의 개혁 1등 공신인 힐데가르드, 양 웬리 함대의 홍일점인 프레데리카 그린힐, 발터 폰 쇤코프의 사생아나 당당한 카테로제 폰 크로이처, 마지막으로 반전활동을 하고 구국 군사회의 쿠데타에서 끝까지 저항하다 죽은 제시카 에드워즈 같은 멋진 여성 캐릭터들이 존재한다. 이렇게 은영전에는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 또한 등장한다. 그리고 여성 캐릭터들의 비중이 적어서 여성 차별적이란 논리는 스타워즈 4,5,6에 흑인 캐릭터가 한 명밖에 나오지 않아서 인종차별적이란 태도랑 똑같은 것이다. 오히려 스타워즈에 흑인 캐릭터였던 렌도 칼리 시안은 사연 있는 악역에서 선역으로 변화하였다. 만약 은영전이 여성 차별적인 작품이려면 여성 차별적인 대사가 나오는 등의 장면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은영전에 그런 장면은 눈씼고도 찾아볼 수 없다. 

 

 또한 은영전에 엘리트들만 활약하다는 비판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런 사람들은 은영전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경우이다. 은영전에서 구국 군사회의가 권력을 잡을 때 끝까지 맞서 싸운 것은 다름 아닌 평범한 서민들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라인하르트가 자유 행성 동맹을 점령했을 때 끝까지 라인하르트에게 반기를 든 것도 서민들이었다. 은영전에 라인하르트가 황제의 특권으로 자유 행성 동맹의 국회에 들어가려 하자 한 관리자가 서류에 작성한 글이 있다. 

 '라인하르트라는 황제를 자칭하는 자가 허락도 없이 민주주의의 기본을 무시하고 의회에 함부로 들어오려 한다.'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글이었다. 이처럼 끝까지 군국주의에, 황제에 대항하여 민주주의를 쟁취한 것은 양 웬리뿐이 아니라 역사의 숨겨진 민중들 덕분도 있다는 것을 은영전은 강조한다고 본다. 엘리트들(양 웬리, 라인하르트 등)의 인물의 비중이 큰 것은 장르 소설의 한계라고 볼 수 있다. 스타워즈도 결국 선택받은 자들의 이야기인 것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은영전은 장르소설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민중의 활약과 역할을 잘 그려낸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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