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호러의 특징과 그 역사
링, 주온, 어떻게 떠올랐고 어떻게 무너졌나.
한 때 일본 공포영화가 주목받던 시기가 있었다. 링, 주온 등등의 작품이 나온 이 시기는 일본 공포영화 최고의 황금기였다. 이 작품들은 모두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된 것은 물론 최근까지도 시리즈가 계속되고 있는 등 지금까지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만, 사실상 J 호러는 몰락했다고 봐야 한다. 우선 몰락한 이유를 알기 위해선 J 호러가 떠오르게 된 이유와 그리고 어떻게 인기가 식어갔는지를 알아봐야 한다.
J 호러의 대표작은 누가 뭐래도 링이라 할 수 있겠다. 링은 1999년에 개봉한 공포 영화로 내용물을 보면 7일 내로 사망하게 되는 비디오와 그 비디오를 탄생시킨 야마무라 사다코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링의 결말은 꽤나 충격적인데 야마무라 사다코의 저주를 풀었음에도(정확히는 풀었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저주를 받고 남주인공이 죽게 된다. 그리고 밝혀지는 진정한 저주를 푸는 방법은 바로 비디오 내용물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준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주온의 스토리를 봐보자. 주온의 스토리는 저주받은 집을 둘러싸 계속해서 사람들이 죽어나간다는 이야기이다. 주온 또한 집에 걸려있는 저주를 결국 풀지 못하고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다는 식의 결말로 시청자에게 큰 공포를 선사했다.
J호러의 대표 격인 이 두 영화를 중심으로 보았을 때 J 호러의 가장 큰 특징은 부조리에 있다. 링이나 주온의 등장인물들은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자신이 알지 못하는 저주나 귀신 때문에 죽어나간다. 또한 주온을 보면 누군가는 저주를 받고 누군가는 저주를 피한다. 그리고 이 기준은 굉장히 모호해 부조리하게까지 느껴진다. 이는 들어가선 안될 곳에 들어가 저주를 받거나 귀신들에게 원한을 사 공격당하는 한국이나 다른 국가의 공포 영화들과는 많이 다른 부분이다. 또한 링과 주온 모두 아직도 저주는 계속되고 있다는 암시를 넣으며 끝난다. 이처럼 J 호러의 가장 큰 특징은 부조리함, 모호함이다. 이는 일본의 자연환경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일본은 과거부터 지진, 화산 등의 자연재해가 많았고 이러한 자연재해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죽였다. 그래서인지 일본의 귀신들을 잘 살펴보면 자신과 상관없는 사람들도 무차별적으로 죽이고 다니는 우리나라 귀신들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면이 일본 공포 영화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J 호러의 특징에 대해선 알아보았고 그렇다면 J 호러는 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많이 리메이크되고 시리즈화가 된 것일까? 그리고 그렇게 나온 작품들 대다수는 왜 맥을 못 쓰고 망해버리는 걸까?
우선 J 호러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이유는 우선 신선함 때문이다. 당시 미국의 공포 영화들(약 1980~90년대)은 매너리즘에 도달해 있었다. 당시 미국 공포 영화들은 외계인, 살인마, 늑대인간, 드라큘라 등의 소재를 주로 썼다. 살인마를 공포에 중점으로 둔 슬레셔 영화는 할로윈을 시작으로 할로윈 시리즈, 13일의 금요일 시리즈, 나이트 메어 시리즈 등 여러 작품들이 나왔지만 악령을 소재로 한 나이트 메어, 역대 슬레셔 영화들을 신선하게 패러디한 스크림 등을 제외하면 점점 신선함이 사라지고 있었고 외계 생명체를 중점으로 한 공포 영화는 존 카펜터의 더 씽, 리들리 스콧의 에이리언 시리즈, 프레데터 시리즈를 제외하면 그다지 대중에게 큰 인기를 끈 작품이 적었으며 늑대인간, 드라큘라 관련 영화도 런던의 늑대인간처럼 호러와 코미디를 섞은 영화를 제외하면 그렇게까지 대중들에게 큰 어필을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공포영화들에 대한 피로함이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약 10년간 쌓여왔고 동양의 귀신, 저주 등이란 소재를 사용한 j 호러에 관객들의 관심이 많이 모인 것이다. 그렇게 링, 주온, 착신아리, 검은 물속에서 같은 일본 공포 영화들이 미국에서 리메이크되고 나름대로의 흥행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J 호러에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었다. 바로 일본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일본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즉 일본에서 쓰이는 소재들이 신선했기 때문에 흥행할 수 있었던 J 호러가 일본어라는 점 때문에 흥행에 발목이 잡힌 것이다.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을 받았을 때 했던 말을 생각해보자. 봉준호 감독은 그때 1인치(자막)만 뛰어넘으면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은 미국 영화시장이 얼마나 다른 나라의 영화에 배타적인지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미국 관객들은 우리나라와 달리 영어가 아닌 다른 나라 언어가 나오는, 즉 자막을 읽어야 하는 영화들을 기피한다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J 호러 대다수의 영화들은 공포 팬들이나 평론가들로 인해 발굴되어 미국에서 리메이크가 되는 과정을 밟아왔다. 그렇게 리메이크가 된 J 호러 작품들을 보자면 흥행에선 새로운 소재와 동양적 신비함 덕분에 성공하였으나 평가는 링의 할리우드 리메이크작을 제외하면 하나같이 모두 낮았다. 주온의 할리우드 리메이크작인 그루지는 흥행에 성공하여 시리즈로 나왔지만 모두 평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며 독창성 없이 붙어 넣기만 했다는 평을 들었고 착신아리의 할리우드 리메이크판은 표지만 무서울 뿐 영화는 그저 그렇다는 평을 받았다. 이처럼 일본어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 과정을 겪으며 망가지게 된 경우가 J 호러에는 많다.
제대로 된 계획 없이 한 시리즈화 또한 문제이다. 링은 1편은 괜찮았지만 계속해서 속편이 나오며 평가가 내려갔고 주온 또한 최근에 나온 넷플릭스판 주온 드라마를 제외하면 평이 모두 박하다. 이처럼 계획 없이 시리즈화를 하면서 작품의 질을 낮추어버린 경우 또한 J 호러의 문제점이다. 대표적으로 링의 사다코와 주온의 카야코가 싸우면 누가 이길지, 상상력으로부터 시작해 상상력으로만 끝난 사다코 vs카야코가 있겠다.
그리고 일본 영화계 자체의 퀄리티 하락도 문제로 뽑힌다. 일본의 영화계는 현재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상황이다. 인기 있는 만화 실사화나 애니메이션 극장판, 인기 있는 드라마의 영화판 등 흥행이 잘될만한 작품을 제외하면 영화를 안 만드려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J 호러의 상황은 어떨까. 지금 J 호러의 상황은 매우 나쁘다고 볼 수 있다. 곡성, 셔터 등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도 질 좋은 공포 영화가 나오면서 J 호러의 위상은 낮아졌고 최근에 나온 헌티드 파크란 영화는 J 호러의 관짝에 못을 박았을 정도로 최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저주를 받아 누군가 죽는다, 그 저주를 풀려고 한다. 저주를 풀었다고 생각하나 결국 저주는 풀리지 않았고 저주는 지금까지도 계속된다는 식에 구조가 너무나도 반복되며 자극적인 장면을 많이 넣어 무서운 장면 없이도 무서운 분위기를 만드는 J 호러의 특징을 파괴하는 것도 J 호러의 몰락을 가져온 문제점이라 생각한다. 현재 J 호러는 망했다. 오죽하면 케빈 인 더 우즈란 영화에서 일본 유령이 봉인당하고 이제 미래는 미국 공포영화밖에 없다는 식으로 묘사되었겠는가. 그래도 나름 볼만했던 주온 드라마 판과 온다를 생각하며 한 때 J 호러를 좋아했던 사람으로서 화려한 부활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