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잃어가는 날들》

#4. 시키면 다 하는 애가 되다 ▶ “웃으며 끌려가는 법을 배웠다.”

by 익명

군대엔 하나의 진리가 있다.

“나다씹.”


“나다 싶으면 해라.”

그 말의 줄임말이다.


공식 지시가 없어도,

선임이 흘리듯 말하면

스스로 움직이라는 뜻이다.


나는 그 말을

정말 잘 따랐다.

그리고 그게

군대에서의 센스,

예의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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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점호가 7시라면,

나는 6시 45분이면

이미 생활관을 나와

복도에 서 있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누가 칭찬해 준 적도 없었다.

그냥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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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들보다 먼저 나와

인원 파악을 도왔고,

대열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정리하며 시간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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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집합 방송이 나오면,

누구보다 먼저 반응했다.


“○○○ 생활관, 식사 집합!”


방송이 나오기도 전부터

복도에 나가 대기했다.


선임들 인원 파악을

내가 가장 먼저 했다.

그게 당연한 일인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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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일도 마찬가지였다.


선임 한 분이

배고프다고 말하면,

나는 내 사물함에서

과자를 전부 꺼내 보여줬다.


"여기서 골라서 드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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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르다고 하면

“음료수 사 오겠습니다!”

바로 매점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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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살 인원을 모집할 때도,

발이 세모였지만

제일 먼저 뛰어들었다.


“저 하고 싶습니다!”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나다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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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힘들었던 건

‘근무’였다.


누군가

“아... 오늘 근무 너무 귀찮은데.”

“누가 좀 대신 서주면 안 되나?”

라고 슬쩍 말하면


나는 그걸

눈치채고 바로 말했다.


“제가 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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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남들보다

더 자주,

더 많이 근무를 섰다.


비 오는 날도,

새벽바람 부는 날도

다른 사람 대신 서는 일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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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명백한 ‘짬’이었고,

부조리였다.


하지만 그땐

그게 맞다고 믿었다.

그게 후임이 해야 할 일이라고

정말 진심으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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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살이 끝나고,

선임들이 땀에 절은

형광 조끼를 벗어

대충 한데 모아 내게 건넸다.


“이거 좀 빨아놔.”


나는 아무 말 없이

조끼를 정리해

세탁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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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게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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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들은

하루에도 여러 번 있었다.


부식이 나오면 서서 받아오기.

당직실 청소.

개인 물건 심부름.


말로는 부탁이었지만,

실은 무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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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일들은

버틸 수 있었다.


불만도 있었지만,

‘군대니까’라는 말로

넘길 수 있었다.


선임들이 시킨 일이니까,

시간 지나면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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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진짜로 힘들었던 건 따로 있었다.


그건,

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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